누구나 자신이 쓴 글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좀 더 잘했더라면 좋았을터라는 막연한 후회감에 얼굴을 붉히기 마련이다. 아닌가? 설사 아니더라도 이번만큼은 맞다고 멋대로 생각하련다. 나 혼자 뒤늦게 막막한 창피함을 겪는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조금 처연하니까 말이다. ‘이번 시험은 생애 최고로 잘쳐야지!’하고 생각하면 예외없이 망쳐버리는 것처럼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걸고 시작한 일들이 오히려 부담으로 변해 발을 걸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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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빠지는 함정 중 위와 비슷한 구조로는 또 이런 것이 있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거나 관심사임에도 불구하고 표피만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실상 아는 것은 없으면서 잘 안다고 착각해버리는 경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번 호의 새만금은 이 두가지에 모두 해당되고 말았다. 새만금 사업의 시작이 1991년이고 내가 1987년에 태어났으니 나는 새만금의 그 구구절절하고 긴 역사를, 어쨌든 계속 ‘접하기는 했던 셈이다’. 서울대저널 기사를 꽤 유심히 살펴보는 독자라면 눈치채겠지만, ‘특집’이나 ‘기획’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사는 주로 세 꼭지로 구성된다. 그리고 더 꼼꼼히 읽는 몇몇 독자들만 알겠지만 이 꼭지 구성은 대개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주로 역사적 원인 혹은 실태 – 현재의 상황 – 앞으로의 전망으로 구성되는데, 사실 완결된 기사 형태로 어떤 사안을 전달하기 위해 가장 알맞은 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틀에 충실하게 기사를 기획하고 르포 날짜를 잡고 동선을 짜고, 적합한 인터뷰이를 선정해 인터뷰 날짜를 잡는 취재의 정석(?)을 따라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학생회관에서 밤을 새는 마감과 지루한 교열이 지나가고, 개강이 오면 학내 곳곳에 배포될 약 오천권의 서울대저널을 따라 이 기사도 밖으로 뛰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의 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구겨넣기 힘든 틀과 분량에 커다란 이야기를 구깃구깃 집어넣은 듯한 죄책감이 들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물론, 어떤 복잡한 사안이라도 독자의 머릿속까지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기자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 새만금을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구조, 지난 12월호에 실렸던 빈민주거를 양산해 낸 구조와 꼭 닮은, 꼭 같은 자본주의와 개발의 패러다임 앞에 어쩐지 자꾸 막막하고 무력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처였던 환경운동연합에서 ” 누구나 마음 속에 ‘더 잘 살고 싶어하는’새만금을 키우고 있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을 지나 돌아오는 길에 하이닉스 공장 증설과 관련한 데모를 위해 상경한 이천 시민들의 버스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더랬다. 족히 몇십대는 되어 보이는 버스들은 ‘하이닉스 죽음으로 맞바꾸자’는 섬뜩한 문구를 새기고 있었다. 긴 버스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마침 라디오에서는 시대극의 배경으로 새마을 운동 찬가가 흘러나왔다. 순간 왠지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훌라 훌라, 춤이라도 추고 나면 그 잠잠한 무력감을 떨칠 수 있었을까. Shall we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