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기공식이 시작된 이후 새만금은 언제나 사람들의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4월 대법원 판결로 새만금 간척 사업의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이 물막이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의 15년간 이어졌던 새만금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은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서해안 시대의 청사진이라는 화려한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새만금이 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땅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땅이 되는 것일까. 새만금을 둘러싼 비극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이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은 선거 필수 공약? 새만금 간척 사업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태우 후보 측의 선심성 전략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전까지 새만금 공사는 1970년대부터 진행된 서남해안 개발 공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후 새만금 간척 사업은 다양한 변화를 거쳐 1987년 지금의 김제, 부안, 군산을 포함하는 형태가 됐고, 이름도 지금의 ‘새만금 간척 종합 사업’으로 바뀌게 되어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처음에 새만금 간척 사업은 노태우측의 대선 전략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새만금 사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부부처의 경제관련 인사들이 대부분 회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북의 도민들은 상당히 큰 실망감을 가지게 됐고, 이를 의식한 노태우 후보측은 선거를 엿새 앞두고 가진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간척 종합 사업을 공약에 포함시키고 기자회견을 연다. 많은 경제인사들이 재원조달과 경제성을 이유로 사업 추진 불가를 선언하며 포기한 이 사업이 선거 엿새 전 선심성 공약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1991년 11월 28일 새만금 간척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이 시행됐다. 전북 부안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당시의 기공식에 대해 ” 대통령이 온다는데 헬기가 착륙할만한 곳이 없어서 변산해수욕장에다 하루만에 콘크리트를 붓고 착륙장을 만드는 난리를 쳤다” 며 당시 새만금 사업이 얼마나 긴박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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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11월 28일 시행된 새만금 기공식은 새만금의 비극의 역사를알리는 기공식이었다. |
이후 새만금 간척 사업은 각종 선거에서 승리를 위한 공약으로 쓰이게 된다. 199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러 후보들은 자신이 새만금 간척 사업을 시행시킨 공로자이며 또한 자신이 이 사업의 적임자임을 주장한다. 이는 1995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그대로 되풀이 된다. 심지어 1992년 대선에서 한 후보는 새만금 공사를 2년 안에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까지 한다. 노태우 정권이 물러나고 들어선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또한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태우 정권과 다를 것이 없었으며 새만금 간척 사업을 자신들의 공약에 포함시켰다. 친환경적인 개발이라는 단어를 은근슬쩍 공약 중간에 집어넣었지만 사업의 큰 틀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으며 새만금 간척 사업의 핑크빛 미래가 허구였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는 상황에서 공사를 그대로 추진시키기까지 한다.새만금 간척 사업은 포기할 수 없는 거대한 돈줄새만금 간척 사업은 33km의 방조제를 세우고 4만 1000ha의 해수면을 메워 각각 육지와 담수호로 만드는 대사업이다. 이러한 대사업에 빠질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로비’와 ‘유착’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업’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새만금 간척 사업은 이후 정치권의 가장 큰 돈줄로 사용됐다. 많은 파문을 일으켰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에 있어 큰 부분을 자치했던 것이 새만금 간척 사업이었음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여억원이 공개되었을 때 재임 5년간에 실시된 주요 국책 사업에 대한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으며 입찰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각종 비리들이 물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정치권의 마르지 않는 돈줄로 그 비극적인 태동을 시작하게 된다.노무현 정부의 새만금 그렇다면 현재 노무현 정부의 새만금 정책은 어떠한가. 2001년,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총리실에 제출한 검토의견서를 바탕으로 정부가 시행하는 새만금 사업에 유보입장을 표명한다. 갯벌이 가진 가치를 인정하며, 갯벌이 창출하는 경제성이 새만금 간척 사업이 가져다줄 경제성보다 크다는 이유였다. 또한 새만금 간척 사업에 재고가 필요함을 주장하고 새만금 간척 사업을 찬성하는 지역 언론들의 의견에 반론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나서 해양수산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그는 전북 익산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새만금, 확실히 밀겠습니다” 라고 약속한다. 1년 사이에 간척 사업의 경제성이 갯벌이 가져다 주는 경제성보다 커졌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또 한번 새만금이 정치권의 희생양이 돼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