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창(窓)

현재 시각은 새벽 4시.나는 뚱뚱해진 기사를 다이어트 시키는 중이다.괜히 있어 보이려고 쓸데없이 갖다붙인 말이 왜 이렇게 많은지.불필요한 말들을 다 뺐더니 기사가 한 페이지나 줄었다.『서울대저널』기자지만 글쟁이가 못 되는 나는 마감 때마다 같은 고민에 빠진다.어떻게 하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맛깔스러운 표현을 어디서 찾지.개요는 준비됐는데 글이 안 써지는 날은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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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은 새벽 4시. 나는 뚱뚱해진 기사를 다이어트 시키는 중이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쓸데없이 갖다붙인 말이 왜 이렇게 많은지. 불필요한 말들을 다 뺐더니 기사가 한 페이지나 줄었다.『서울대저널』기자지만 글쟁이가 못 되는 나는 마감 때마다 같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맛깔스러운 표현을 어디서 찾지. 개요는 준비됐는데 글이 안 써지는 날은 더하다. “창내고저 창내고저 이 내 가슴에 창내고저”답답할 때 여닫아 볼 창을 내고 싶다던 이름 모를 조선 사람도 나 같은 심정이었을까. 창이라도 하나 뚫어 공기를 통하게 하면 기사가 물 흐르듯 써질 지도 모를 일이다. 창(窓) 얘기를 하니까 저널에 처음 들어오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수습 면접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창을 갖고 싶다 말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세상과 소통 불능 상태였다. 몇년 간을 텔레비전 없이, 심지어 한 학기는 인터넷도 없이 지냈기에 대통령 탄핵도 뒤늦게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저널은 그런 내게 소통의 창이 돼 주었다. 나는 여기서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요즘따라 그때의 나처럼 창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장애인교육권연대에서 만난 이들은 FTA에만 관심을 쏟는 기성언론에 서운함을 표했다. 중학교 특수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은 학교 측과 특수교사 간의 의사소통 부재를 아쉬워했다. 교수학습개발센터 e-learning 지원부와 그동안 소통해 본 적이 없기에 마냥 OTL 상태인 줄 알았던 e-TL 시스템은 알고 보니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 비판하러 갔다가 그들의 항변(抗辯)에 수긍(首肯)을 하고 돌아왔다. 학관 공사가 늦어져 피해를 입은 동아리들은 공사 담당 측의 일방적인 통보에 불만을 토로했. 이들에게도 소통의 창(窓)이 필요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다는 고(高)학번에게도 소통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본디 소통은 상대방과 나눌 이야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은가. 기사 아이템 편식이 심한 문화부 기자에게 맡겨진 학원부 기사는 고(高)학번을 고(苦)학번으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소통을 바라는 이들에게 작은 창이 됐다면 과정이야 힘들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 자리를 빌어 기사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전직 기자분께 감사를 표한다.내게 『서울대저널』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窓)이 되었듯,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소통의 창이 됐으면 좋겠다. 학보사도 아닌 열악한(?) 학생자치언론의 특성 상 거창한 창(窓)이 되진 못하겠지만, 환기를 위한 작은 창(窓)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창을 부드럽게 여닫을 수 있도록 기자들과 독자들이 노력과 관심이라는 기름칠을 창틀에 계속 더했으면 한다. 加油! 마지막 기사를 끝내자 방 한 켠에 난 창 밖으로 해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오늘도 밤을 샜구나. 마감 완료 버튼을 누르려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엉뚱한 한 구절. “창 되고저 창 되고저 저 당신 가슴에 창 되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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