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학기부터 서울대학교의 학칙이 상당 부분 개정된다. 광역화 모집에 따라 학칙 개정이 불가피 해졌기 때문인데, 우선 학칙 개정의 과정을 통해 서울대학교의 의사 결정구조를 잠시 살펴보자. 학칙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 후 가안을 만드는 과정은 각 담당부서에서 결정되고, 이후 간부회의, 학사운영회의를 거쳐 시안이 결정된다. 이후 기획위원회, 규정심의위원회, 학장회, 평의원회를 차례로 거치면서 심의를 받게 되고 최종적으로 총장이 의결·확정하게 된다. 학칙과 같은 경우는 이런 과정을 거쳐 개정·보완 되지만, 그 이외의 사안들, 예컨대 계절학기 연장, 제적학생 사면, BK21 사업 등과 같이 학칙과는 거리가 먼 사안들은 심의를 거치지 않 고 곧바로 총장이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 즉 학교와 관련된 모든 사안들에 대해 심의 기구들(대표적으로 학장회의와 평의원회)의 심의를 받는 것은 아니며, 총장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도 매우 많다. 본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인 것처럼 서울대학교도 총장 중심제”라는 말을 하며, 모든 사안의 최종 결정은 총장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사실 총장의 절대적 권한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권은 서울대학교 규정집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학칙 제 4장과 5장을 보면, ‘학장회는 본교의 중요사항을 종합심의 하기 위한 곳’, ‘평의원회는 대학발전과 교육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한 곳’ 이라고 규정하여, 학장회와 평의원회는 심의기관이지 의결기구는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서울대학교에는 의결기구는 없으며, 모든 사안은 총장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학장회의 VS 평의원회 그렇다면 학장회의나 평의원회는 모두 심의를 목적으로 존재하는데, 굳이 두 개의 심의 기구를 둔 목적은 무엇일까? 우선 구성을 보면, 학장회는 총장, 부총장, 각 단과대학의 학장, 처장급 행정직원으로 구성되고 의장은 총장이 된다. 매주 1회 소집되며, 학칙· 고사· 장학·연구 등에 대해 심의한다. 평의원회는 좀 특이한 구성인데 교수와 사회 저명 인사 40인 이내로 구성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2001년 현재의 평의원회 구성을 보면, 교수 23명과 처장급 행정직원 6명(이들도 모두 보직 교수)으로 구성되어있다. 외부인사는 단 한 명도 없으며, 규정과는 달리 학장회에도 소속되어 있는 행정직원(보직교수) 6명이 동시에 평의원회의 의원으로 임명되어 있다. 평의원회는 학기초에 한번 소집되며 학장회와 비슷한 내용을 심의한다. 교무처의 한 관계자는 ‘형식상으로 볼 때 학장회의 심사를 거친 후 평의원회의 심사를 받지만, 실질적 권한은 사실상 학장회가 쥐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평의원회는 형식적인 심의 기구임을 말했다. 평의원회의 임원 구성이나 역할을 보았을 때 굳이 그 존재가치를 알기 어렵다. 본부의 한 관계자는 ‘평의원회는 교수들과 외부 인사로 구성되어 사안들의 심의보다는 총장의 독단을 견제하고, 자문역할을 하는게 더 올바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서 ‘현재의 평의원회는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게 사실이다’고 말해 설립취지는 좋으나 현실적으로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혔다. 평의원회는 현재 한학기에 한번 소집되는 것만 보아도 심의 기구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보고를 받고 도장찍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 많은 사안들을 단 하루만에 심의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구성원들 역시 외부 인사는 단 한 명도 없고 절반 이상을 총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총장을 견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평의원회는 있어야 한다? 1955년도에 처음 설치된 평의원회는 지금까지 그 운영과 구성에 대해 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5월에 발표된 ‘서울대학교 특별법 수정안’에는 평의원회를 대학 구성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직원들의 참여를 보장하며 순수한 심의·의결기구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 발표된 특별법 수정안 제 12조를 보면 ‘선임직 평의원은 교수 12인, 교외인사 5인이내, 교직원 대표 2인 및 학생대표 2인으로 한다’라고 정해 그동안 대학 사회에서 학생, 직원을 배제해 왔던 의사 결정, 심의 과정에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서울대 특별법이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 끝나는 바람에 평의원회는 지금까지도 교수들과 일부 직원들로 구성된 형식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부의 관계자는 ‘평의원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교수, 직원, 학생, 지역인사, 외국인사 등이 모두 모여 민주적인 토론을 함으로써 학교 발전에 다같이 이바지 할 수 있는 심의결정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교수들은 학생들을 교육의 대상, 직원들은 도우미 정도로 인식하고 있어 사실상 이런 이상적인 모습은 바라기 어렵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학생 대표가 학우들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난상토론을 벌일 수 있는 구조가 없기 때문에 학생측과 본부측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98년도에 나왔던 학사관리엄정화 방안도 몇몇 교수들의 생각을 그대로 학칙에 반영함으로써 학내 구성원들간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만약 학칙 개정에 앞서 학생대표자와의 충분한 사전토의가 있었다면 본부점검과 단식투쟁이라는 극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합시다! 현재 학생대표자들이 본부의 심의과정이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 학기초에는 기성회 이사회에 참관하겠다는 총학생회의 의견도 거절당했으며, 광역화 투쟁당시에는 총장과의 면담을 여러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대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학생들을 철저히 배제시켜 왔다. 그렇다고 해서 본부 직원들 역시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장회의나 평의원회에 행정직원들이 포함된 것처럼 보이나, 이들은 모두 보직교수로서 엄밀히 말해 오리지날 행정직원이라 보기 어렵다. 학장회의나 평의원회는 거의 100% 교수들로 구성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 때문인지 심의 과정에서 총장과의 커다란 의견차이는 없다고 한다. 본부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총장과 심의 기구들이 충돌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학기에 있었던 인문,사회,자연대 학장들의 선언문 발표정도가 대립되었던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외국대학에서는 학생, 직원, 교수, 지역 인사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 정도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민주적 대학운영과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신대학교에 4자 협의회가 있어 본부직원, 교수, 학생, 노조 등의 대표들이 모여 학교 예산, 등록금 산출, 총장 선출 방식, 학칙 관련 사항 등을 자율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의 4자 협의회 역시 의결기구가 아닌 협의기구이기 때문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학교 총학생회 정책국장 정성훈(국문4)씨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학교측과 학생 대표가 토론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협의기구라는 한계 때문에 결국에는 학교측의 요구가 무리하게 채택된다. 4자 협의회가 아닌 4자 의결기구로 전환되지 않는 이상 학교측과 학생들과의 갈등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한신대 역시 학생들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재의 서울대학은 한신대 같은 협의기구가 없을 뿐더러 비공식적인 대화 채널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학생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본부측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야 한다. 학사 관리 엄정화 방안, BK21 사업, 서울대학교 장기 발전 계획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발표될 때마다 본부측과 학생들 사이에는 갈등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볼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 운영의 주체로써 학교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학생 대표가 포함된 의결기구나 협의 기구는 총장과의 면담조차 불가능한 서울대학교의 현실을 비춰볼 때 먼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서울대학교에 작은 민주주의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기가 과연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