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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자랑스럽고 명예로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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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되었다.이 상은 서울대학교 동문이나 학교에 장기 봉직한 사람 중에 인격과 덕망을 겸비하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서울대학교를 빛낸 사람에게 수여됨을 원칙으로 한다.그런데 91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21명의 수상자를 배출해온 과정에서 그 수상자들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이 상은 서울대학교 동문이나 학교에 장기 봉직한 사람 중에 인격과 덕망을 겸비하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서울대학교를 빛낸 사람에게 수여됨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91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21명의 수상자를 배출해온 과정에서 그 수상자들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의심스럽다. 우선 따져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상을 받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역대 수상자의 나이를 따져 본다면 출생년도가 1930년도 이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올해 수상 예정자인 안철수(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씨의 경우는 예외적인 케이스이고, 역대 수상자 대부분은, 소위 말해 각 분야의 ‘원로’들이고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수상자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권력’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랑스런 서울대인’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사회 정의와 역사 발전,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수많은 동문들은 단 한번도 선정된 적도 없으며, 후보 추천조차도 받지 못한다.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한’ 서울대인이 이 상을 받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또 학생들에게 정말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선배들인지 따져볼 문제이다. 자랑스러운 친일파 서울대인?수상자 중에는 실제로 수상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96년도 6회 수상자인 故 장발(전 미대 교수)씨 같은 경우 친일 행적과 독단적 학사 행정 운영, 교수들간의 파벌 형성 등으로 학교 발전을 오히려 저해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장발 전 교수의 친일 행적을 논문으로 발표한 김민수 전 미대 교수는 “그 사람의 어디가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현재의 몇몇 미대 원로 교수들이 ‘학은(學恩)’이라는 명목하에 상을 수여한 것 뿐”이라 밝혀 공동체의 합의가 없는 현재의 ‘자랑스런 서울대인’ 상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장발 전 교수 같은 경우 학장으로 재직중인 1960년도에 미대 학생들이 “과도한 간섭과 독선으로 학생의 인격과 자주성을 무시해 오던 장발 현 학장을 규탄하며 사퇴할 것을 학생총회의 명의로 결의”했을 정도로 학원민주화에 크게 저해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서울대학교 교수민주화운동오십년사 41p 참조) 이에 대해 본부 기획실 한 관계자는 “친일 경력을 포함한 개인적인 문제들과 그 사람의 업적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판단해 수상 자격을 고려할 때 업적이외의 문제들은 사실상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밝혀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또 후보추천위원회의 모 교수 역시 “후보를 추천할 때의 기준은 해마다 다르고, 후보자의 공개된 업적 외에는 엄정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 고 말하며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보다는 업적 위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별다른 업적이 없는 사람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 제 10회 수상자인 이희호 영부인은 어떤 명목으로 상을 받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성운동을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 부인이라는 명목 외에는 뚜렷이 내세울 만한 업적은 없다. 본부 출입 기자 한 명은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에 상을 받은 것뿐이다. 만약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다면 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해 대통령 부인이 서울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서 상을 수여했을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실제로 어디에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 기준은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학원민주화에 흠집을 냈던 인물, 친일 경력이 의심스러운 인물, 남편이 대통령인 서울대 동문이 자랑스런 서울대인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기 때문에 선정한다’ 라는 명시적인 선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기획실 관계자는 ‘실제로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그러나 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매해 나름대로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후보추천위원회의 한 교수는 ‘그런 기준을 마련하기보다는 신문이나 각분야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정보에 많이 의존해서 선정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수상자에 대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는 결여된 채 자랑스러울 것 ‘같은’ 서울대인을 선정하는 것이다. 김민수 전 교수(미대)는 이에 대해 ‘국립서울대학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이 어떻게 종합적인 평가와 공동체 일원들의 합의 없이 수여되는지 모르겠다’며 상의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독재자의 명예 = 서울대 명예박사사실 이러한 관행 아닌 관행은 명예박사 학위에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규정집 5장 29조를 보면 ‘명예박사학위는 우리나라 학술과 문화발전에 특수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지대한 공적을 나타낸 자에게 수여한다’고 나와있다.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어도 인류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적을 나타낸 자에게 수여해도 된다. 그래서 그런지 명예박사 1호는 48년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었고 60년도 이승만 정권까지 주한미군사령관, 주한미국대사, 상원의원들이 줄줄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70-80년대에는 제 3세계국가들의 수상들을 초청해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그 때까지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한 4명의 한국사람만이 명예박사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대부분 서울대학교의 심사를 거쳐 학위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입김에 따라 학위를 수여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모두 98명의 명예박사가 서울대에서 탄생했지만 서울대가 자체 심사를 거쳐 수여자를 선정한 것은 사실상 99년도 김수환 추기경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유명한 사람이 오면 으레 서울대학교의 명예박사를 쥐어주고 보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 명예박사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그 한 예로 82년도에 라이베리아 국가 원수인 새뮤얼 카논 도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수년간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지만 당당하게 서울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얻었다. 1달 후에는 또다시 콩고(자이르) 국가 원수인 모부투 세세 세코가 방한하고 명예박사를 받았다. 이 사람 역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던 사람이었지만 서울대학교 명예박사를 받고 떠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시기임을 감안하고 당시의 억압적 사회분위기를 생각해 보더라도 쿠데타의 장본인, 독재자에게 명예박사로 선정한 이유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돈 ↔ 명예본부의 한 관계자는 ‘사실 김수환 추기경 이전에는 모두 정부가 주라고 하면 주는 분위기 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98년도에 처음으로 명예박사추천위원회가 구성되어 자체 심사를 거쳐 명예박사를 수여하기 시작했지만 원칙과 그 선정과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0년 1월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당시 경영대의 일부 교수들은 “경영학명예박사임에도 경영대 교수들에게 의견한번 묻지 않고 선정하였다”고 반발하며 선정 과정의 비전문성, 객관성 결여를 꼬집었다. 또 당시 사회대의 정운찬 교수(경제학)는 “10년 동안 1000억의 돈을 받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돈과 명예를 바꾸었다”는 비판을 하였다. 명예박사 역시 학내 공동체의 합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학의 명성과 명예에 걸맞는 사람을 명예박사로 선정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국가, 사회, 인류 발전에 공헌하지 않았더라도, 서울대인으로서 또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랑스런 서울대인’이든 ‘명예박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선정하는데 몇몇 사람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고, 서울대 공동체의 암묵적인 동의가 되지 않는 사람이 선정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서울대인들의 투표를 통해서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 후에 서울대 공동체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자는 것이다. 서울대가 몇몇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공간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국립서울대학이라는 이름이 독재자나 거액의 기부자, 비민주적 인사에게 명예라는 이름으로 수여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은 당연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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