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의 대학, 국제화에 감염되다② 영어강의 확충이 전부가 아니에요③ 외국 대학에서 배운다 “2025년까지 외국인 학생은 전체의 30%, 외국인 교원은 900명까지 확충한다. 영어 또는 제2외국어 강의를 전체의 50%로 확대한다.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를 구축해 영어캠퍼스 이외에 전략적 교육을 위한 거주대학을 설치한다.”지난 3월 28일 발표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의 일부다. 국제화는 현재 서울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제다. 정운찬 전 총장 시절부터 적지 않은 노력이 있었고, 양적인 지표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서울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좋은 대학?2006년 2학기 기준으로 서울대 학사과정에 재학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249명, 교환·방문학생은 81명이다. 이들은 왜 서울대에 오기로 결정한 것일까? 한국의 대학 중에서 서울대는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지만, 구체적 정보는 부족하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 주연(정치학과 석사과정) 씨는 “한반도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국 유학을 결심했고, 서울대가 한국에서 제일 이름난 학교일 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면서도, “그 이상 알고 있던 특별한 정보는 없다. 특히 학과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온 유학생 야우스 셀림 카차르(외교 07) 씨 역시 “고려대와 한양대에도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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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외협력본부가 발간한 외국인 생활 안내서. 풍부한 생활정보가 수록돼 호평받고 있다. 하지만 교과과정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
두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제공했지만, 서울대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 해서 여기를 골랐다”고 했지만 “학교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털어놨다.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교환학생 사이먼 깁슨(사회 07) 씨는 “대학과 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오기 전에 서울대 홈페이지, 홍보책자를 살펴봤지만 내가 속할 학과의 특성과 커리큘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높은 인지도에 비해 내실있는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영어강의가 부담스러운 외국인 학생영어강의는 외국 학생들의 수업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개설되고 있지만, 외국 학생이라고 모두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비영어권 국가, 특히 동북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영어 강의에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사사노 후미(정치 07) 씨는 “한국어도 배워야 하는데 영어강의까지 들을 여유가 없다”며 “영어공부하러 서울대에 온 건 아니다. 영어강의를 수강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주연 씨도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가르치는데 영어로 수업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표했다.셀림 씨도 “고려대나 한양대에 입학하지 않은 건 내가 합격한 과가 국제학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강의가 모두 영어로 돼있어서 한국어를 배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서울대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물론 영어강의는 필요하다. 특히 영어권 국가 출신 교환학생이라면 한 학기 체류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영어강의가 무리하게 확대되면서 수업의 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필리핀에서 온 교환학생 제롬 림(영문 07) 씨는 “교수가 영어로 잘 표현을 못할 땐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럴 땐 주로 리딩에 의존한다”고 밝혔다. 교수와의 소통이라는 수업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잃는 것이다.깁슨 씨는 “몇몇 선생님은 영어 때문에 수업 진행에 방해를 받는 것 같다. 수업 진도를 맞추기 어렵다. 또 한국 학생들은 영어 수업으로 인해 흥미를 잃거나 깊이있는 토론을 못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느낌을 말했다.다 같은 외국인이 아니랍니다보통 외국인 학생이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이들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영어권 국가 출신과 비영어권 국가 출신, 유학생과 교환학생은 서로 처지도 다르고 필요한 것도 다르다. 특히 대외협력본부에서 상당한 지원을 해주는 교환학생과 달리, 유학생들은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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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4일 서울대 학생대사(SSA)가 개최한 ‘I Love SNU’ 페스티벌에 참여한 외국인 학생들. 대외협력본부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이 한국 학생들과 소통할 기회는 여전히 그다지 많지 않다. |
대외협력본부는 한국 학생이 교환학생을 1대 1로 맡아 한국 생활 적응을 돕도록 하는 ‘SNU 버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환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깁슨 씨는 “버디가 도와준 덕에 기숙사 신청도 편리했고, 수강신청 변경도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러나 유학생들에겐 이 프로그램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유학 온 다니엘 리(국제대학원 석사과정) 씨는 “학부도 여길 나왔지만, 입학하고 나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버디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교환학생은 출신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개 장학금을 지원받고, 기숙사 역시 우선 배정된다. 유학생들은 이 역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 정위(언론 04) 씨는 “서구 출신 유학생은 다르겠지만,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은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학비는 매년 오르는데 바뀐 건 없다. 방 계약도 처음 온 외국인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상식적으로 학교에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으며 “유학생이 교환학생보다 수도 더 많은데 왜 챙겨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현재 장학금 지급은 내외국인 모두 동일한 수혜율을 갖도록 돼있다. 대외협력본부 관계자는 “외국인이라고 특혜를 주는 것도 어렵겠지만, 학사과정에는 장학금이 거의 없어 안타까운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외국에 나가려 해도 정보가 없네외국 대학 수학을 원하는 한국 학생들도 불만은 있다. 본부측에서는 수학 예정 학교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 해외연수로 독일에 다녀온 김현주(외교 04) 씨는 “외국에 갔다온 학생들은 방 구하기, 비자, 수업 방식 등 자신이 경험한 학교 생활의 보고서를 본부에 제출하는데, 이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며 “본부가 내용을 정리해 후배들에게 제공하고 선배도 소개시켜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학점 인정은 또 다른 고비다. 교환학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에 다녀온 김성은(영문 04) 씨는 “해외 이수 학점을 인정받으려면 출국 전에 수학계획서, 성적증명서, 지도교수 추천서를 제출해야 하고, 귀국 후에도 서류 처리를 위해 약 5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캠퍼스와 건물보다 컨텐츠를 채워야이상과 같은 문제점은 학교측도 이미 공감하고 있다. 대외협력본부 송호근 본부장은 “교환학생들의 보고서를 정리해 정보를 수집하고, 해당 국가에 다녀온 선배 학생과 후배 지원자를 연결해주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지금은 인력이 부족해 손을 못 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외협력본부 직원은 15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국제 교류협정 체결, 외빈 접대, 교환학생 관리, 정책 개발 등의 업무를 모두 관장하다보니 일손이 모자라다는 것이다.교환학생 중심의 지원정책 역시 송 본부장은 “자비 유학생까지 대외협력본부에서 챙기기는 어렵다. 해당 학과에서 특별히 챙겨주고 버디를 지원해줘야 하는데, 학과에서는 자기들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해서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송 본부장은 “서울대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대외협력본부에서 다 할 수 없다. 각 학과별로 영문 자료집을 내고 유학생을 접수하면 기초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과·단대 수준에는 영어가 유창한 직원이 적으니 정보가 부족해진다”고 말했다.영어강의 확충에 대해 송 본부장은 “현재 영어강의의 비중은 11%이고, 그나마 경영대와 공대에 편중돼있다. 외국인이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업을 확충해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송 본부장은 “영어수업은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학교의 역량을 외부로 알리기 위한 수단이다. 시행 초기라 강의 질 하락과 같은 부작용은 있지만, 그 충격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클 것”이라고 밝혔다.국제화를 위한 정책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해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학생들이 생각하는 국제화란 무엇일까? 학생들은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이슨 호웰(지학교육 04) 씨는 “실험 실습을 위한 시설이 안 좋다. 실험을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고, 주연 씨는 “수업에서 이론은 많이 다루는데,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에는 관심이 없다. 이론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리 씨는 “수업 분위기가 너무 경직돼있다.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독일에서 유학 온 강미노(한국명, 정치학과 박사과정) 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대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열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듣는대로 외우고 시험보는 식으로는 창조적 아이디어에 접근할 수 없다. 낡은 교육방식은 그대로 두고 대학에서 국제화‘시키는’, 말 그대로 시키는 거면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