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는 더 이상 대학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세계적 시야를 갖춘 열린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까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세계의 여러 대학들은 자신들의 실정에 맞는 목표를 세워 독자적인 국제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유럽 시민’을 키우는 국제화 민족국가의 틀을 넘어선 지역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는 유럽 연합은 역내 국가 학생들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Erasmus Program)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교원과 학생들의 국제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1987년 11개국의 참여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2007년 현재 유럽 연합 27개국에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터키를 더한 31개국 2,199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은 에라스무스 참여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올 수 있다. 작년 한해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대학에서 공부한 학생은 약 15만 5천명. 지난 20년간의 참여 학생들은 1백만 명을 넘는다. 유럽 연합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유럽적 시각을 갖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학생뿐 아니라 교수 교류도 2004년 기준으로 2만여 명에 이른다. 해외 체류시 부담하게 되는 추가 경비만큼 수당이 지급되므로 학생들은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최근 7년간 유럽 연합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7억 5천만 유로(약 9천 4백억 원)를 지원했다. 학생 선정 과정에서도 계층간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진다. 유럽 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참여 학생의 80%는 자신이 가족들 중 첫 번째로 외국 유학을 경험했으며, 60%의 학생이 저소득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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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시작된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지난해 12월 8일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장 피겔 유럽연합 집행위원. |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유럽 연합의 조사 결과 90%의 학생들이 만족감을 나타냈으며, 외국 수학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됐고, 일부는 제3, 제4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 학생은 불참 학생에 비해 더 일찍 직장을 구했으며, 인사담당자의 50%는 에라스무스 경험자를 국제적 업무에 배치한다고 밝혔다.학생이 학생을 돕는다 – 유럽 통합의 현장, ESN 유럽 연합은 단순히 교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90년 당시 유럽공동체(EC)는 에라스무스 참여 학생들의 평가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필요를 느끼고 재정 지원 하에 에라스무스 학생네트워크(Erasmus Student Network, ESN)를 정식 법적 단체로 출범시켰다. ‘학생을 돕는 학생들’이라는 모토를 가진 ESN은 대학별, 국가별로 지부를 두어 현재 33개국 245개 대학 15만 명의 학생들이 가입해있다. 연례총회 때는 전 유럽에서 500여 명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의장단을 선출하고 활동 방향을 결정한다. 의장단은 브뤼셀에 상근하며 전반적 업무를 조율한다.ESN 공보담당 프란체스카 마르쿠조(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조직커뮤니케이션학부 4년) 씨는 “외국 생활에서 교환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ESN의 역할”이라며 “각 대학 지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교환학생 픽업, 버디 프로그램 운영, 언어 교류, 문화탐방, 현지 학생과의 파티 개최 등의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마르쿠조 씨는 “ESN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며 “이 곳은 유럽 통합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생생한 현장”이라고 평가했다.뿐만 아니라 매년 1만여 명을 상대로 자신의 교환학생 경험을 평가하는 대규모 설문조사도 진행한다. 정리된 설문 결과는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에 보고된다. 마르쿠조 씨는 “설문 결과를 전달하면서 유럽 연합의 정책이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특히 학점 인정 등의 분야가 개선되고 있다”며 “운영진의 활동주기가 짧아 어려움이 있지만, ESN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전국 대학을 아우르는 통합 프로젝트 지역적 협력 외에도 유럽 국가들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국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학술교류처(Deutscher Akademischer Austausch Dienst, DAAD)는 그 중 하나이다. 교류처는 외국 유학을 원하는 독일 학생들, 독일 유학을 원하는 외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학생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교수 및 연구요원의 해외 교류 역시 중요한 업무이다. 서울대에 방문교수로 온 카이 쾰러(독문과) 교수는 “이전에 있던 대학과 서울대 간에는 교류협정이 없지만, 학술교류처를 통해 여기 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별 대학이 추진하는 국제교류보다 효율적이고 폭도 넓어지는 셈이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 일을 하는 기관이 있다. 교원의 국제교류는 학술진흥재단에서 맡고 있으며, 국내외 유학생 지원은 국제교육진흥원이 담당한다. 하지만 규모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06년 기준으로 국제교육진흥원을 통한 내국인 유학생은 310명, 외국인 유학생은 215명 수준이다. 반면 독일학술교류처가 2002년에 지원한 학생은 약 4만 8천명에 이른다(독일 학생 2만 9천명, 외국 학생 1만 9천명). 독일 외에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등이 비슷한 기관을 운영중이다.‘순위의 압박’을 거부한다 – 미국 미국 대학의 국제화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간주하고 있는 터라, 미국에는 계속해서 여러 곳에서 유학생들이 모여들고 미국식 대학 모델은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다만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대학 순위가 중시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최근 미국의 일부 대학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은 참고할만하다. 일부 대학들이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가 매년 발표하는 대학 순위 조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 ‘The Education Conservancy’는 대학 순위가 ‘각 학교의 다양한 교육 목표를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며, ‘학교들은 순위를 올리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으로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각 학교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대학 순위 평가를 위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학교 홍보에 순위 평가 결과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 이 단체의 서한에는 현재 미국 30개 대학 총장이 서명한 상태이다.이 단체의 로이드 대커 대표는 “현재의 순위 평가는 ‘투입’에 초점을 맞출 뿐, 지식과 기술의 습득이나 학습 환경에 대한 접근과 같은 ‘산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의 호기심, 상상력, 모험심, 열정과 같은 필수적인 교육적 자질들이 대학 순위로 인해 훼손된다”고 말했다. 대커 대표는 “학교들을 비교 평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지만, 보다 다양한 평가 방식을 개발하고 교육의 상품화를 막을 때 교육 체제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 대학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고, 특히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른바 명문 대학들의 참여가 없어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등 주목받고 있는 상태이다. 대커 대표는 “다른 많은 대학들이 서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앨버타 대학의 인디라 사마라세케라 총장은 「인사이드 하이어 에듀케이션」 4월 2일자 기고문을 통해 ‘약 1년 전 캐나다 대학들도 비슷한 운동을 벌여 90여개 대학 중 25개교가 참여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실제로는 마케팅을 위해 실시되는 이들 평가에 의문을 던질 시기가 됐다’고 지지를 표했다. ‘The Education Conservancy’가 펴낸 책 College Unranked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외국 학생 지원하는 풍부한 인력 – 중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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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노래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 베이징대 역시 외국인 학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비영어권 국가로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중국에서 유학 온 정위(언론 04) 씨는 “중국 대학, 특히 베이징 시내 대학들은 교환학생이든 유학생이든 모두 입국시 안내, 버디 배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대 국제합작부 국제학생과 관계자 역시 “외국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교환학생과 유학생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제학생과 내에만 15명의 인원이 근무한다고 말했다. 국제합작부에는 이 외에 4개 과가 더 있다. 서울대 대외협력본부 전체 직원이 15명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이다. 도쿄대는 국제화 관련 정책을 입안·기획하고 유학 지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연휴본부를 두고있다. 도쿄대에 등록한 외국 학생들의 지원은 유학생 센터에서 별도로 담당한다. 이 센터는 파트타임 포함 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 외에 각 학부마다 외국 학생 지원 담당자가 따로 있다. 유학생 센터의 오니시 씨는 “센터는 학교 생활 전반적 측면의 지원을 하고, 각 학부에서는 입학·학사 업무 등 보다 실용적인 도움을 준다”며 “각 학부 담당자와 센터는 학생 지원을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대의 외국인 학생들은 출신 지역별로 모임을 만들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오니시 씨는 “일부 단체는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학교 당국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자치조직”이고, “유학생 센터는 최근 유학생들과 일본 학생 간의 교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