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언어성폭력, 우리가 잊고 있던 물음표

지난 9월 한 법대 교수가 강의 중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한 이후로 강의실 언어성폭력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다.9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해당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할 당시 동성애가 감염될까봐 학교를 옮겼다”고 말했고, 이는 동성애를 일종의 ‘전염병’으로 비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9월 한 법대 교수가 강의 중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한 이후로 강의실 언어성폭력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다. 9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해당 교수는 “미국에서 연구할 당시 동성애가 감염될까봐 학교를 옮겼다”고 말했고, 이는 동성애를 일종의 ‘전염병’으로 비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의 시간의 성차별적 발언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 동안 교수나 강사의 수업 중 발언이 문제가 되는 상황은 공공연히 존재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수의 문제적 발언과 이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가 반복되는 동안 학생 사회에서,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강의실 언어성폭력 문제를 두고 얼마나 많은 소통과 고민이 있었는지는 회의적이다. 끊이지 않는 논쟁, “성폭력이다” vs “그 정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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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내에서 교수가 무의식적으로 한 발언이 강의실 언어성폭력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어떤 발언을 성폭력적으로 느끼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박현(역사교육 05) 씨는 “언어성폭력에 관한 자보를 보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신규원(사회 04) 씨는 “(특정 발언을 성폭력이라 느끼는 것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런 발언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폭력적 발언에 대한 민감성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때문에 언어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된다 해도 학생들이 쉽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관악여성주의자모임(관악여모)이 지난 2005년 발간한 성폭력적 발언 자료집 에 대해 학생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 이러한 인식차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 자료집에서는 ‘외모는 수준 이상인데 발표 한번 해 봐라’, ‘상표법은 처녀인 줄 알고 같이 잠을 잤는데 처녀가 아닐 때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 등과 같은 발언을 성적 폭력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스누라이프(www.snulife.com)의 ‘공사게’에서 논쟁이 오갔다. 한 학생은 ‘폭력으로 다가올 만큼 상처를 주는 말들이기 때문에 성폭력이라 볼 수 있다’고 댓글을 단 반면, ‘별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다’, ‘피해의식의 발로일 뿐이다’와 같은 댓글을 단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를 관악여모가 발간한 것을 비롯, 여러 언어성폭력 사건에 학내 여성주의 자치단위가 주축이 돼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성별 대립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흔하다.성폭력적 발언의 모호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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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여학생 전용 커뮤니티 ‘수다다’가 주최한 생리공결제 정책포럼에서 강의실 언어성폭력에 관한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사실 어떤 말을 언어성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다. 여성운동 단위에서는 이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관악여모의 열라(필명) 씨는 언어성폭력을 “개인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하나로 획일화하고, 자기 생각을 폭력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똑같은 발언이라도 듣는 사람의 정체성에 따라 성적인 폭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제의 발언이 “폭력인지 아닌지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는 수 년간 토론이 거듭돼 왔음에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이다.과반 또는 동아리 내에서 발생하는 언어성폭력은 반성폭력 내규 등을 통해 최소한의 대응이 가능하다. 반면 강의실 언어성폭력에는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 마땅치 않아 학생들이 대응하기 어렵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학생끼리의 관계와 다른 권력 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에, 학생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더욱 힘들다. 관악여모의 열라 씨는 “교수에게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발언권이 있고, 학생은 그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 있다”며 “강의실 안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불평등한 관계에 놓인다”고 강조했다. 성희롱 성폭력상담소의 이원이 전문위원은 “학생들이 교수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할 때 ‘찍히면 나중에 불편해진다’, ‘학점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등의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의 발언이 불쾌해도 쉽게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방적 자보보다 강의실 내 토론을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성폭력적 발언을 접했을 경우 주로 대자보나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해 공론화를 시도한다. 특히 자보를 통한 문제제기는 학생들이 자기 신상을 보호하면서 다수의 학생들에게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온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 모(인문대) 씨는 “자보를 보면 (피해 학생) 한 쪽의 의견만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된다”고 지적했다. 이원이 전문위원 역시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성폭력적 발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대자보를 게시하는 것 역시 일방적인 입장 표명”이라며 “다른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보를 먼저 게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정원규 교수(사회교육과)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학생들이 문제를 느꼈을 때 강의실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토론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 질서를 완화하고, 서로 대등하게 토론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이 전문위원 또한 “학생들이 교수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강의실의 위계적인 분위기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강의실의 위계적 분위기 바꿔야물론 문제를 제기한 학생이 이후에 학점상 불이익 등 보복 조치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열라 씨는 “학생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원규 교수 역시 “학생들이 학점상 불이익 등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강의실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교수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볍게 던진 교수의 말 한마디가 학생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고,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로 교수는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서로의 진정한 대화는 없이 일방적 발언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강의실 언어성폭력에서 교수와 학생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교수와 학생이 서로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내에서 서로 소통하며 답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강의실의 언어로 인한 논란은 언제까지고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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