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은 국가 안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집에 걸린 노란깃발이 펄럭이고 있다.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환경 중에서도 제주 남쪽 에 있는 올레7코스는 관광객들에게 빼어난 경관으로 소문난 명소다.해안 길을 따라 걷다보면 구럼비바위가 펼쳐진 강정해변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강정마을이 있다.450년가량 집성촌을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강정마을에 2007년 4월 갑자기 건설이 확정됐다.하지만 정부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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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집에 걸린 노란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환경 중에서도 제주 남쪽 에 있는 올레7코스는 관광객들에게 빼어난 경관으로 소문난 명소다. 해안 길을 따라 걷다보면 구럼비바위가 펼쳐진 강정해변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강정마을이 있다. 450년가량 집성촌을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강정마을에 2007년 4월 갑자기 건설이 확정됐다. 하지만 정부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족처럼 지내던 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성하는 사람들로 갈라서 얼굴을 붉혀야 했다. 해군기지 항만 건설부지에 포함된 강정 해변의 구럼비바위는 발파됐고, 이에 반대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묵살됐다. 한때 언론과 시민단체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강정마을은 구럼비 발파 후 어느새 잊혀가고 있다. <서울대저널>은 8월 20일 강정마을을 찾았다. 해군기지 건설 논란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강정마을에 뚜렷이 남아있었다.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집은 태극기를, 반대하는 집은 노란깃발을 걸어놓은 것이다. 수백 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하나의 마을 공동체는 해군기지 논란을 겪으며 두 개로 쪼개져버렸다.

입지선정부터 공사강행까지, 문제투성이

4월 26일, 87명의 주민이 참석한 마을 임시총회에 상정된 안건은 ‘강정지역 해군기지 관련의 건’이었다. 세 시간여의 임시총회 후 의장은 어느새 회의의 안건을 ‘강정 해군기지 유치의 건’으로 바꿔 놓았다. 천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임시 총회는 87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하는 사람들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있었던 반대의견들도 회의과정에서 묵살됐다.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반대위) 고권일 위원장은 “임시 총회의 경우 1주일 전에 공고를 해야 하고 마을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려야한다”며 “하지만 해군기지 건의 경우 3일 전에야 공고를 했고 마을 방송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아 주민 대다수가 임시총회가 개최되는 줄 몰랐다”고 밝혔다. 또한 고 씨는 “과거 풍림콘도 유치를 결정할 때는 여덟 번의 총회와 여러 번의 설명회와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사업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했지만 이번에는 단 한 번도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전에 주민들이 의견을 수렴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강정은 해군기지 후보 마을이 아니었다. 강정이 해군기지 건설 부지로 결정되기 전 해군은 서귀포시 소속의 화순, 위미 등의 후보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해군은 해안 구조가 만 형태를 띠고 있어 항만 건설 부지로 적합한 화순이나 위미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계획이 무산된 해군은 13일 만에 강정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졸속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졸속 진행에 반발한 주민들은 임시총회를 열어 윤태정 전 강정마을회장을 해임하고 강정마을 주민 1,200여 명을 대상으로 해군기지 사업 추진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찬성 측 주민 300여 명이 투표에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725명의 유권자가 투표하여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한다는 투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총투표였음에도 제주도와 해군 측은 이 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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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위 고권일 위원장은 “해군기지는 정작 강정주민들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은 사업이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해군기지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항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구럼비바위가 있던 해안이다. 구럼비바위는 그 자체로도 보존가치가 높다. 뿐만 아니라 강정해안에는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연산호군락, 제주새뱅이 등 수많은 멸종위기종과 희귀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는 2004년 10월 구럼비 해안 일대 10만5295㎡를 경관보전지구 1등급 및 생태계보전지구 1등급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제주특별법상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절대보전지역에서는 자연환경보전을 위해 건물 신축 등 모든 개발행위가 금지된다. 그러나 2009년 12월 한나라당 소속 제주도의회의원들이 구럼비 해안 일대의 절대보전지역 해제를 날치기로 처리했고, 김태환 전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강정해안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지정을 해제했다. 강정해변이 절대보전지역에서 해제되자 해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사를 진행했고 2011년 10월, 구럼비바위에 대한 발파를 실시했다. 2013년 8월 현재 구럼비바위는 그 크기가 수십 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해군은 환경파괴논란을 의식해 구럼비 해안에 사는 멸종위기종들의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반대위 고권일 위원장은 대체 서식지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들의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군은 붉은발말똥게가 대체 서식지에 탈피한 껍질을 세 개발견한 것이나, 대체 서식지에서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등의 정황 증거만으로 멸종위기종들이 대체 서식지에서 번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해군이 멸종위기종을 대체 서식지로 옮겨만 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해양부착생물들의 대체서식지로 마련한 인공물에도 3년째 부착생물이 서식하지 않고 있어 해군의 대체서식지 계획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야기된 해양오염도 심각한 수준이다. 시공사는 공사현장에서 흙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오탁방지막을 설치해야한다. 게다가 공사현장인 강정 앞바다는 문화재청이 지정한 연산호 군락지로 흙탕물이

흘러들어갈 경우 자연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시공사는 오탁방지막이 상당부분 찢어져 있거나 말려 올라가 제 구실을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번 공사를 강행했다. 이 때문에 해군기지 건설 중 발생한 오염물질들이 강정해안 뿐 아니라 인근의 법환동, 월평동 해안을 오염시켰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공사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태도를 보여줬다. 해군기지 환경영향평가서가 지정한 규격(해수면에서 수중까지의 막의 길이가 1공구는 2m, 2공구는 5m)을 무시하고, 실제 길이가 1m도 채 되지 않은 오탁방지막을 설치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강정에 가해진 폭력

해군은 해군기지 공사 예정지의 토지 매입 과정에서부터 주민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고권일 씨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토지보상금액을 찾지 않는 등 집단 저항을 벌이자 해군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일정기간동안 받아가지 않으면 양도소득세를 가산할 것이고 3년 후까지 찾지 않으면 전액 국고로 환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찰은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의견표출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고 씨는 “마을 전체 주민을 상대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할 때 골목마다 경찰이 늘어서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해군 기지를 찬성하는 마을 해녀회가 투표함을 가지고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수수방관했을 뿐 아니라 해녀회의 행동을 돕기까지 했다. 고 씨는 “해녀회가 지나갈 땐 길을 터주던 경찰들이 해녀회를 쫓는 주민들을 막아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과 해군 등의 국가 권력은 반대 운동을 하는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벌금, 구속, 연행 등의 사법조치를 내리는 방식으로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고권일 위원장은 “경찰의 무차별 사법 제재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무리한 집회 진압은 아찔한 상황들을 연출했다. 해안 방파제에서 집회를 하던 문정현 신부가 7m 정도의 높이에서 추락한 사건이나, 반대주민들의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경찰이 6m다리 아래로 추락한 사건 등은 과잉진압의 대표적 사례다. 강정마을에서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은 UN인권 특별보고관마저도 우려하고 있다. 한국에 방문한 마가렛 세카기야 UN인권 특별보고관은 인권상황에 대한 1차 조사내용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막대한 벌금이나 소송 제기도 심각한 수준” 이라며 국가 권력이 강정주민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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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공사중단을 기원하며 천주교에서 기도를 올리던 곳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던 문정현 신부가 7m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보수세력의 낙인찍기, 평화를 해치는 집단으로 내몰리는 주민들

보수 단체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짓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세력” 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나가는 첫 걸음이며 중국과의 이어도 분쟁 발생 시 해군력을 빠르게 투입하고, 남방수송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는 반드시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이 ‘평화의 섬’ 이미지를 구축해 온 제주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고, 제주도를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장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제주도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이 열려 동북아 냉전 종식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고, 1996년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미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하는 등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던 땅이다.

현재 해군이 해군기지 건설 목적으로 내세운 ‘이어도 수호’ 또한 중국과의 분쟁 빌미를 제공해 ‘평화의 섬’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현재 한국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짓고 연구원들을 일정기간 머물게 하는 등 이어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분쟁지역이 아닌 이어도를 거론하며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양 국가가 해군력을 전진배치한 채 이어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양 국가의 해군력이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고권일 씨는 “제주 해군기지를 지어 이어도를 분쟁지역화 하는 것은 ‘평화의 섬’을 선언한 취지에 맞지 않다”고 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분명히 해군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공군이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군기지도 건설되는 것 아니냐”며 “결국 제주는 군사기지들로 가득한 섬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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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정문에는 주민과 활동가들이 만든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제주에서 또 다른 현대사의 비극은 막아야

제주는 4.3 사건을 겪은 아픔을 가진 땅이다. 4.3사건 당시에도 정부는 공권력을 남용해 주민들을 학살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지금의 제주에서도 무차별적인 공권력 사용으로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반대 운동을 하던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과도한 벌금과 신체적 상해, 정신적인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450년을 이어오던 마을 공동체는 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갈라져 동창회, 계모임 등도 이뤄지지 않는다. 4.3 당시의 공권력이 공동체를 파괴했듯이, 지금의 해군기지 또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공권력에 맞서 공사강행과 경찰의 연행을 막기 위해 쇠사슬을 몸에 감는 위험을 무릅썼다. 강동균 마을회장은 쇠사슬을 목에 걸고 공중에 매달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왜 목숨까지 걸면서 6년이 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한 주민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해군기지 건설을 무산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4.3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에서 제2의 현대사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주를 비무장 · 평화의 섬으로 만들고, 강정마을을 평화의 마을로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가 국가 안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6년 4개월의 기나긴 투쟁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강정마을의 주민들. 정부가 주민들의 아픔을 보듬어 안을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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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강정 주민들은 이 마을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싸울 것이며, 후대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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