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비건 살아요

서울 밖 비거니즘의 현실과 지속가능성
▲지역별 비건 전문 메뉴 제공 식당 분포 그래프 ©빈채현

※ 서울과 비서울의 위계가 생긴 현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이번 호 기사에선 ‘지역’이란 표현 대신 ‘지방’을 사용합니다.

  비건. 비거니즘. 더 이상 이 낱말들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하지만 왜 비건 맛집은 여전히 서울에만 있을까? 왜 비건 식품을 구입하거나, 맛있는 비건 외식을 한 끼 하기 위해서는 여행자가 돼야 할까? 지방은 비건의 ‘불모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서울 바깥에서 비건을 지향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려운지, 과연 어렵기만 한 것인지, 서울 밖의 비거니즘의 현실과 그 전망을 들여다봤다.

한국의 비거니즘, 서울이라는 영토성

  비거니즘은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에 반대하는 하나의 주의(-ism)이며,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그치는 개인적 활동이 아니라 인식과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인 움직임이다. 사람들이 비거니즘에 참여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동물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해서, 누군가는 기후 위기가 해결되길 바라서, 또 누군가는 개인의 건강을 제고하기 위해서 비거니즘에 뛰어든다.

  비거니즘이 나타나는 양상 또한 다양하다. 식문화에서 동물 유래 식품을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동물로 만들어진 의류나 화장품 사용을 지양하는 것 역시 비거니즘의 형태들이다. 식문화 내에서도 갈래가 세세히 나뉜다. 되도록 채식을 지향하지만 특정 고기까지 먹는 부류는 세미 베지테리언이다. 이 안에는 우유·달걀·어류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그에 더해 조류까지 먹을 수 있는 폴로 베지테리언 등이 속한다. 육류를 아예 섭취하지 않는 이들은 베지테리언으로 불린다. 베지테리언 중에서도 유제품이나 달걀 섭취의 여부에 따라 락토·오보·락토오보 등 명칭이 갈라진다. 육류도, 유제품도 달걀 섭취도 하지 않는 단계가 곧 비건이다.

  이 기준은 완고하지 않다.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단계를 조정한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도 존재하며, 세미 베지테리언 내부에서 스스로 단계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경우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플렉시테리언도 있다. 그러므로 비거니즘은 유동적인 스펙트럼으로 다양한 함의를 포괄하는 동시에 새로운 참여자를 유연하게 환영하며, 하나의 물결로써 인간 중심적인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려 한다.

  한국에서도 비거니즘 논의가 빠르게 구축됐다. 1998년 인터넷 채식 동호회에서 출발한 한국의 비거니즘 인구는, 2022년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한국 고유의 맥락에서 생겨난 비거니즘 풍경도 돋보인다. 예컨대 원래부터 내려온 절밥 문화가 비거니즘의 맥락에서 재해석되기도 한다. 한국에만 있는 ‘비덩주의’ 문화도 특별하다. 비덩은 덩어리 고기만이라도 끊자는 주의로, 국물류 문화가 발달해 육수를 모두 피하기 어려운 식문화 속에서 생겨났다.

  점차 비거니즘은 무시할 수 없는 논의로 성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다른 문화 활동처럼 수도권에 편향돼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2020년 한국채식연합에서 공개한 비건 식당 목록에 따르면, 최소한 달걀과 유제품까지 섭취하는 락토오보 이상의 비건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은 전국에 325군데다. 그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148군데가 수도권 소재인데, 이 중 107곳이 서울에 있다. 한 도나 광역시에 비건 전담 식당이 30곳을 넘는 지역은 없으며, 특히나 강원도는 전체를 따져봐도 9곳밖에 없었다.

▲지역별 비건 전문 메뉴 제공 식당 분포 그래프 ©빈채현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은 점차 확대되는 반면,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구조가 부족한 문제는 지방에서 두드러진다. 서울대학교 이호영 석사과정생(소비자학과) 외 1인의 「광주·전남권 비건 소비운동 발전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 따르면, 광주·전남권 지역에 거주하는 소비자 120명 중 90%가 비거니즘을 알고 있는 반면, 해당 지역 비건 전문 음식점은 합해서 10곳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른 많은 문화적 불평등의 양상처럼, 비거니즘 역시 서울과 비서울 사이에 격차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도 비건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비건을 실천하게 됐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지방에서 비건을 한다는 것

  올해로 만 22세가 되는 아영 씨는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영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비건을 시작했다. 계기는 책이었다.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2018), 멜라니 조이의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2011) 등. 멜라니 조이를 읽으며 육식이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영 씨는, 바로 그날 점심부터 고기를 모조리 끊었다.

  충주에서, 그것도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비건을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급식에서 비건 식단이 제공되지 않으니 밥만 받아서 먹거나 김에만 싸 먹어야 했다”고 아영 씨는 말했다. 아영 씨가 선택한 ‘유별난’ 길에는 항상 시선들이 뒤따랐고, 주위에 아영 씨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 안과 마찬가지로, 밖에서도 비건을 실천하긴 어려웠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학생 신분에, 기숙사 생활까지 했던 아영 씨로서는 마음껏 재료를 구해 조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학교 밖에서 비건식을 사 먹기도 쉽지 않았다. 아영 씨는 “검색을 정말 잘해서 찾아내거나 직접 가게에 가서 사장님께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일일이 따지지 않으면 비건 메뉴인지 알 수 없었다”고 불편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아영 씨는 한정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영 씨는 편의점에서 파는 비건 삼각김밥 같은 즉석식품을 자주 먹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충주에는 재고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혹은, 롯데리아에서 2020년 식물성 대체육으로 출시한 ‘리아미라클버거’와 같이 한 번 발굴한 메뉴를 계속 먹기도 했다. 그마저도 어려우면 “상대적으로 재료를 빼기 쉬운 김밥집”을 자주 갔다.

  지방에서의 비건 실천을 어렵게 만드는 실질적인 문제는 식당이나 식단의 가짓수보다도, 함께 활동을 실천할 사람들의 존재다. 대전광역시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진영 씨는 작년 중순 플렉시테리언으로 비건을 시작해, 지금은 폴로 베지테리언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전에 있을 때부터 진영 씨는 “비인간 동물이 경험하는 고통이나 환경 문제 차원에서 비거니즘에 심정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전에 살 때는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웠다. 주위에는 진영 씨의 의견과 결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그런 논의를 꺼내면 주위에서 ‘유난 떤다’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진영 씨는 말했다. 아영 씨도 충주에서 비건을 실천할 때 겪는 주요한 어려움을 “정서적 외로움”이라고 꼽았다. 아영 씨는 “지역에 있을 때 비건 지향을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고 털어놨다. 마땅한 네트워크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 공유 역시 쉽지 않았다. 

▲메뉴 선택의 난처함이나 고립감을 겪는 비건 ©빈채현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비건이 겪는 고립감의 패턴을 언급했다. 멜라니 조이는 ‘비건이 된 후 비-비건들과의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 사례들을 발견하며, 이로 인해 ‘비건들이, 나아가 비건 운동 전체가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고립은 지정학적 차원에서 더욱 강화된다.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지역에서 비건을 실천하기란 개인으로서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는 길을 뜻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대학 생활을 위해 올라간 서울에는 “비건 지도가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고 아영 씨는 말했다. 또한 아영 씨가 활동하는 동아리는 절반 정도가 실제로 비건 실천을 했고, 자연스레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게 됐다. 진영 씨도 비로소 행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생활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아영 씨도, 진영 씨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본가에 내려갈 때면 각각 비거니즘의 ‘시차’를 겪곤 한다. 아영 씨는 “충주에 내려갈 때는 비건을 하면서 갈 수 있는 식당이 한 곳밖에 없어 친구들에게 그곳만 가자고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친구들에게 무조건 맞춰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불편해질 때가 있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특히 서울에 올라와서 비건 실천을 시작했던 진영 씨의 경우, 고향 친구들은 진영 씨의 변화를 더욱 낯설게 느끼기 쉬웠다. “친구들은 자신이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고 하면 웃기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고 진영 씨는 말했다. 진영 씨의 선택을 존중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의 선택지는 확 줄어드는 불편함이 뒤따랐다. 서울과 비교했을 때 지방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기란 여건상 어려운 일이었다.

가로막는 겹겹의 벽

  그렇다면 이러한 격차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지방에서 비거니즘 논의가 충분히 무르익지 못한 상황을 단지 ‘낙후성’으로 치부하고 편하게 불평해도 좋을까? 그럴 수는 없다. 이 현상에는 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논의를 어렵게 만든다. 서울과 지방 사이의 고질적인 격차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지역 간의 비균질성들이 뭉뚱그려진 채 ‘지방’이라는 큰 범주에 손쉽게 포섭되기도 한다.

  담론 형성의 차이는 교육, 특히 대학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영 씨는 “대학 진학 여부에 따라 비거니즘에서도 정말 다른 인프라가 펼쳐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대학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교내 구성원들은 동아리·학생회·세미나·수업 등을 통해 평소에 품던 다양한 문제의식을 대학에서 공유할 수 있다. 나아가 하나의 대학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대학의 구성원들이 함께하는 연합동아리는 이러한 만남의 기회를 더욱 확대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대학이라는 공간은 비거니즘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2018년 출범한 후 2022년 활동을 종료한 연합동아리 ‘비거니즘을 온 대학에(비온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비온대는 비거니즘을 고취하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각 대학에서 비건 메뉴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 바 있다. 그러나 비온대에 함께한 12개의 대학교에서도 수도권 밖 대학은 전북대학교와 부산대학교 두 군데뿐이었다.

▲공장식 축사에서 구조된 돼지들 ©Anima International

  한편 비거니즘은 단순히 개인의 생활 측면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주의적 산업 구조와 자본주의에 대한 전격적인 성찰과 비판을 요구한다. 채효정 사회학자는 웹 매거진 〈OFF〉에 투고한 ‘탈육식과 동물행방운동’에서 ‘자본주의적 육식 산업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고기에 중독되도록 만들어놨다’고 말한다. 오늘날 육식에 집중된 식습관은 결코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며, 육식 산업에 의해 교묘하게 포섭되고 내면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멜라니 조이는 육식 산업이 ‘광범위한 폭력 위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울과 지방 간 산업 지형의 차이는 지역 내 비거니즘의 정착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만다. 폭력적인 공장식 축산업과 참혹한 도축의 과정은 소비자 앞에서 감쪽같이 은폐되기 때문이다. 지방에 외주화된 도축장에서 도려내지는 것은 살점뿐이 아니다. ‘고기’에 가해진 폭력의 이력 역시 모조리 잘 손질된 채 완벽히 포장돼 상품으로써 우리에게 제공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문제의식을 마비시킨다.

  폭력은 지정학적으로 비가시화된다. 육식 산업의 실체를 도시에서는 감추고, 지방에 몰아넣는 것이다. 호남 지역을 둘러싼 차별을 분석한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의 『전라디언의 굴레』(2021)는 이렇게 시작한다. ‘코를 찌르는 닭똥 냄새.’ 조귀동은 전라북도가 전국 시·도 가운데 닭의 사육 개체수가 가장 많은 현실을 지적한다. 198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한국의 치킨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형 양계 산업이 전라북도에 외주화됐다는 것이다. 치킨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지역은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양계장과 같은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대표적인 기피 시설’은 지방으로 위탁된다.

  비단 전라북도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가축동향 조사」에 따르면, 돼지의 경우에는 충청북도에, 소의 경우에는 전라남도에 각기 가장 많은 개체수가 집중된 상태다. 충청북도에 전체 돼지 수의 약 20%에 해당하는 226만 5,153명(命)이, 전라남도에 전체 육우 수의 약 17%에 해당하는 62만 6,190명이 분포해 있다. 그에 반해 서울에는 돼지가 단 한 명도 없다. 소는 2개 농가에 16명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방은 수도권의 육류 수요에 부응하는 생산지인 동시에, 그 소비에 뒤따르는 죄책감의 매립지라는 이중적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비거니즘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방에서도 공장식 축사는 혐오시설로 배척된다. 따라서 지방 거주민들 역시 동물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참혹하게 죽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문제의식은 외면되는 가운데, 경제적인 이해관계만이 연루된다. 

  결국 지방에는 축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육식 산업이 곧 생계인 사람들에게 비거니즘이 함의하는 ‘탈육식’이라는 논의는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다. 실제로 정은정 농촌사회학자가 〈한겨레 21〉에 기고한 ‘생명이고 상품이면서 생존, 고기는 복잡하다’에 따르면, 공공기관과 지자체에서 채식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짐에 따라 축산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지방 사이에 존재하는 각각의 상대성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지역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지방’이라는 명명을 통해 평탄화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각 지역이 지닌 소비력과 사회 기반 시설의 차이다.

  같은 광역시급의 단위 내에서도 관광 자원이 풍부한 제주특별자치도와 부산광역시는,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에 비해 더 많은 수의 비건 식당을 보유하고 있다. 소비의 힘은 곧 문화를 정착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한옥마을과 비빔밥 등 관광 테마가 확고한 전주시 역시 비건 메뉴를 지원하는 식당이 지도로 정리됐으며, 총 139군데가 등록된 상태다. 그에 반해 인근의 도시인 익산시, 구례군, 남원시 등에는 등록된 비건 식당이 5곳도 넘지 않았다.

  접근성을 보장하는 사회 기반 시설의 차이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 광역시는 한 개 이상 노선의 도시철도를 운영한다. 그러나 광역시 이하의 단위에서는 대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다. 원하는 비건 식당이 있더라도 접근하기 무척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영 씨는 “충주에는 비건 식당들이 시 외곽에 있어 두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거의 만 원이 나오는” 상황에서, 맛있는 한 끼를 원할 때 먹으려면 택시비를 지불할 수 있거나 자가용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적인 여유가 뒷받침돼야만 했다.

  결국 교육, 산업, 계급 등 수많은 요인이 교차하면서 서울과 지방 사이에 간극을 형성하고, 같은 지방이라는 범주 내에서도 파열을 만든다. 지방에서 비거니즘의 정착과 지속 가능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막막할 정도로 많은 문제를 호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천은 계속된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는 서울 바깥에서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이 행여 무력하고 힘들지라도. 채효정 사회학자는 

‘탈육식과 동물행방운동’에서 ‘나는 나의 채식이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할 수 있는 것이 한계 속에 갇힌 실천일지라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채효정 사회학자가 주문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큰 우리가 돼가기 위해 함께할 동지’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 연대가 느슨하다 할지라도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척 중요하다. 아영 씨 역시 “트위터 비건 계정 등 인터넷에서의 느슨한 연결과 네트워크가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지방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실천을 이어가는 데 큰 구심점이 된다.

  지방에서도 이런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광주광역시의 광주비건탐식단(비탐)이다. 비탐은 “비건 불모지인 광주광역시를 비건 비옥지로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2021년 4월부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온 시민모임이다.

  ‘광주 동물권 단체 성난비건’의 찡찡이 활동가는 비탐 운영을 도맡고 있다. “비탐은 비건 외식할 곳이 전혀 없던 광주광역시에서 비건 옵션 가능한 식당을 100개 찾는 것을 목표했다”고 찡찡이는 밝혔다. 비탐의 주요 활동은 광주광역시의 식음료점에서 비건 지원 메뉴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발굴된 식당 정보를 지도로 정리하는 한편, SNS를 적극 활용해 발굴에 함께할 새 참여자를 매월 혹은 격월로 적극 모집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광주비건탐식단 단원 모집 공고 ©광주비건탐식단

  어느덧 4년을 넘어선 활동에 대해 찡찡이 활동가는 “극적인 인식 개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식음료점과 라포(rapport) 형성이 되고 인식이 확장되는 지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질문해도, 차츰 요식업자들은 거부적인 반응 대신 친절한 답변을 내놓기 시작했다. 비건 메뉴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했을 때는, 신청한 식음료점의 숫자가 선발 인원보다 두세 배를 웃돌기도 했다. 한 중식 요리 전문점에서는 고기를 빼면 비용 할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비탐이 변화를 주는 것은 광주광역시의 외식업 지형도뿐만이 아니다. 비탐은 고립된 지방 비건들에게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찡찡이 활동가는 “한국에서 비건을 선택했을 때 그 막연함과 막막함으로 인해 고립을 선택하기 쉽다”고 지적하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립은 비건을 지속할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말했다.

  이때 비탐은 고립된 비건들을 위한 비건 식료품점 정보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제공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비탐이 

‘함께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일상 비질*, 독서 모임, 요리 강좌 등 비건을 주제로 한 참여 정보를 공지한다”고 찡찡이 활동가는 설명했다. “지역에서 비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한번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상 비질Vigil은, 쉽사리 상품으로 진열되는 동물들이 고기가 아닌 생명이라는 사실을 일상에서 자각하고 기억하는 일련의 활동을 뜻한다.

  비단 광주광역시뿐 아니라, 비건 실천자들의 네트워킹 사례는 다른 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에서는 ‘탕라마’라는 이름으로 개인 블로그에 비건 식당을 맵핑하는 사례가 있었으며, 전주의 시민 네트워크인 제로불모지는 달마다 ‘비건위크’를 진행한다. 매달 1일부터 7일까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비건식을 해 먹고 그 결과물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과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 찡찡이 활동가는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에서 최소한의 인건비 지급, 마음 돌봄 지원, 의료 지원 등 다양한 범위로 응원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전혀 지원이 되지 않아 개인이 지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체하는 방식이라 아쉽다”고 설명했다. 대안적인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원과 다수의 따스한 관심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네트워크와 지속되는 활동이 있다면, 분명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진영 씨는 얼마 전 있었던 추석 명절 풍경을 떠올렸다. “가족들이 다 해산물로 음식을 준비했다”고 진영 씨는 웃으며 회상했다. 진영 씨가 먹을 수 없는 고기 대신, 진영 씨의 실천에 맞춰 가족들 역시 해산물 요리를 준비한 것이다.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란 막막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한 힘을 가지고 의미와 변화를 만들어낸다.

  아직 서울에서도 불충분한 비거니즘 담론을 지방에서 찾기란 성급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도 안 되는데 지방에서는 가능하겠냐는 의문만으로 그친다면, 서울과 지방 사이에 놓인 단차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인정하고 손을 놓는 셈이니까. 물론 현실적인 차이로 인해 아직 어떤 지역에서는 비거니즘 논의가 무르익기에는 어려움이 분명 많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곳에는 비건을 실천하고자 하지만 갖은 제약에 의해 발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안담 작가의 『엄살원』(2023)은 여성, 장애인, 성노동자, 퀴어, 동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들을 초대해 맛있는 비건 만찬을 대접하며 나눈 대담집이다. 엄살원은 어디일까. 이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건 식사를 나눌 때, 이곳이 서울인지 여부는 명시되지 않고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먹고, 목소리를 내고, 함께 존재하는 공간에 지역적인 구속이 개입하지 않는 미래. 지방에서 비거니즘을 하는 모든 움직임은, 엄살원처럼 탈영토화된 비거니즘의 미래를 미미하게나마 현실에 더 근접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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