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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다양성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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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다양성의 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기

서울대 내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돌아보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규정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홈페이지

  누구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관점이 교류하는 장인 대학에서도 다양성은 중요하다. 그런데 모두가 들어올 수 있다며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은 오히려 의도적이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서울대에선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누가, 어디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그리고 대학에서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대학을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대 내에 다양성이 자리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서울대 최초 총장 직속 자문기구, 다양성위원회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다양위)는 2016년에 출범한 서울대 최초의 총장 직속 자문기구다. 서울대에서 국내 대학 최초의 다양성위원회가 설립된 후, 카이스트, 고려대, 서울과학기술대, 경북대, 부산대에도 다양성위원회와 포용성위원회가 생겼다. 출발은 여교수회였다. 서울대 여성전임교원 비율은 2023년 기준으로 20.6%다. 논의가 시작된 2015년 여성전임교원의 비율은 14.6%로, 당시 전국 대학 여성전임교원비율인 22.3%에도 한참 못 미쳤다. 다양위는 이런 문제의 제도적 개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당시 여교수회에서 구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며 결국 다양성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당시 여교수회 회장이었던 노정혜 교수(생명과학부)가 성낙인 총장에게 다양위 설립을 요청했고,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듬해인 2016년 다양위가 출범했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규정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홈페이지

  다양위는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해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하며, 진행된 연구를 토대로 학내 각 기관에 권고를 하기도 한다. 다양위의 권고를 받은 각 기관이 후속조치를 보고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다양성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의제를 발굴하고 화두를 던지는 활동이 지니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배 책임전문위원은 다양위 출범 단계에서 “여러 대학이 함께 다양성 담론을 생산하는 공론의 장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다양위는 대외 협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에는 6개 대학의 다양성기구가 함께한 ‘대학다양성협의회’가, 올해 6월에는 대학, 기업, 공공기관 등 8개 기관이 참여한 ‘한국다양성협의체’가 발족했다. 

다양성보고서, 다양성의 관점에서 서울대 읽기

▲「서울대학교 다양성보고서 2023」 요약본

  지난 7월, 「서울대학교 다양성보고서 2023」이 발행됐다. 2017년부터 매년 발행되고 있는 다양성보고서는 대학정보공시나 서울대학교 통계연보와는 달리 구성원 분류 체계를 두고 학내 다양성 현황을 살핀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학내 구성을 파악하는 것은 학내에서 제도적·문화적인 고려가 필요한 집단을 적극적으로 통계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다양성보고서에는 교원, 연구원, 학생, 직원 집단별로 성별, 국적, 소속기관, 직급, 출신학교 등을 조사한 통계자료가 실려있다. 이렇게 발행된 보고서는 다양위 홈페이지에 게재돼 각종 연구의 기초자료로 쓰인다. 

  다양위가 다양성보고서 작성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배제되는 집단 없이 모든 구성원을 통계에 포함하는 것이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단과대학과 연구시설 등 서울대 각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한 자체직원을 직원 통계에 포함하고, 연구원과 비전임교원 역시 교원 통계에 포함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다양성 현황 조사가 학내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위는 본부와 단과대학, 부속시설 등 학내 46개 기관에 다양성담당자를 두 명씩 둔다. 현황 파악을 위해 매해 1월 한 달간 다양성담당자에게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그렇게 수집된 자료를 통계 내고 분석해 그해 7월에 보고서를 공개한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서울대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의를 지닐까?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다양성보고서가 “서울대의 구성원이 다양하다는 것을 숫자로 보여주며, 그만큼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다양성보고서의 고유한 지표인 ‘다양성 임용’은 전임교원 중 여성, 타교 학부 출신, 외국 국적 중 한 개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교원의 비율을 보여준다. 배 책임전문위원은 교원의 다양성은 교육과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주목한다고 말했다. 다양성 임용 비율은 2023년 10월 기준 38.3%로, 보고서 발간 첫해인 2016년 10월 기준 29.1%에 비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양성보고서에서 지표를 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범주를 만드는 일은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다양한 지표를 나열하다 보면 그 나머지를 배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배 책임전문위원은 어떤 사안을 중요한 다양성 의제로서 공론화할 수 있기에 지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표를 바탕으로 학내 구성을 살피고, 개선의 방향성을 제안하여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각 사회의 맥락에 따라 선택되는 다양성 지표는 달라질 수 있다. 서울대 다양성보고서는 교원의 출신 대학과 최종 학위 역시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 대학의 보고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표다. 배 책임전문위원은 연구자들 간 이동과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해외와 달리, 일부 대학 출신과 해외 대학 박사를 선호하는 한국의 맥락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지표와 범주를 제시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지만 주목해야 할 지점을 드러내고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위한 인권 규범 만들기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구체적인 언어로 환기하는 일이 수반돼야 한다. 여러 지표를 바탕으로 학내 다양성 현황을 조사하고 학내 기관에 권고하는 다양위의 노력과 더불어, 서로 다른 구성원을 존중하는 공동체 문화를 위한 공동의 규범을 명시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규범을 만드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서울대 내 인권규범을 문서로 구체화하려고 했던 인권헌장 논의는 지난 2020년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인권헌장(안) 연구)」가 나온 이후 오랜 시간 지연되고 있다.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가 2024년 상반기 정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발의한 총학생회칙 개정안도 부결돼 다음 전학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공동체의 규칙을 만드는 일은 구성원이 다양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의의를 지닌다. 인권센터 이주영 연구교수는 헌법이나 국제 조약에서 인정된 가치를 학내 규범으로 다시 제정해 확인하는 데는 “구성원이 지향하는 것을 천명하고, 함께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규범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정 과정 자체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실제로 2020년 인권헌장(안)이 발표된 이후 본격적 논의가 시작되자 대자보와 공청회 댓글 등에서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이 오갔다. 안전장치가 마련돼있지 않다면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위한 규범을 만드는 자리에서조차 혐오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구성원이 ‘성별, 국적, 인종, 장애, 출신 지역과 학교, 연령, 종교, 임신과 출산,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차별금지조항이 자주 논의의 대상이 됐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주요한 차별 양상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예시의 형태든 열거의 형태든 조문화돼 담길 필요가 있다”며 차별금지사유를 나열하는 것의 교육적 효과를 강조했다. 혐오 발언이 공적 장소에서 여과없이 노출되는 상황은 공동의 가치를 확인하고 규범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서울대 차원의 인권 규범이 부재하고 인권헌장 논의는 계류되고 있지만, 공동의 규칙을 만들기 위한 학생사회의 움직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학소위는 지난 5월 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칙 제4조 제5항에 ‘회원은 성별, 국적, 인종, 장애, 출신 지역과 학교, 연령, 종교,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과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사회·경제적 배경,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차별금지 조항을, 제5조 제4항에 ‘회원은 모든 구성원을 동등한 존엄과 인격을 지니는 주체로 대할 의무를 진다’라는 인격권 조항을 추가하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이은세 학소위 위원장(동양사 20)은 “어느 순간 인권에 관한 많은 논의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며, “인권 조항을 다시 논의의 장에 꺼낼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수정안 발의가 지닌 의미를 밝혔다. 그러면서 인권 조항은 처벌 규칙이 아니며 자유로운 학생사회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이 수정안은 지난 2월 열린 임시 전학대회에서 정족수 미달로 계류돼 이번 전학대회에서 다시 논의됐다. 이번 전학대회의 의사 정족수인 75명도 간신히 채워졌다. 앞선 논의가 길어지며 해당 안건은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다뤄질 수 있었다. 대의원이 더 퇴장하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은세 위원장은 발제 시작 전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대의원들에게 자리를 지켜달라는 말을 전했다.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이준협 부위원장(정치외교 23)은 “안건을 시작할 때 76명이었던 대의원이 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 표결까지 해볼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총학생회칙개정안은 재적대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 초과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 안건은 출석 인원 76명 중 찬성 38표, 반대 19표, 기권 19표로 부결됐다. 

  이날 전학대회에서는 안건의 내용과 형식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오갔다. 이은세 위원장은 해당 안건의 부결에 기술적 문제가 미친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측했다. 차별금지조항이 제4조 제5항에 추가될 경우 기존 제5항은 제6항으로 밀린다. 그런데 회칙과 세칙에 기존 제5항을 인용해 휴학생의 선거권 등을 명시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 위원장은 다음 하반기 전학대회에서 수정안이 다시 논의될 수 있도록 안건 상정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번 전학대회에서 논의한 것을 토대로 ‘차별’ 앞에 ‘합리적 이유 없이’라는 표현을 추가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은 왜 다양성을 말해야 하는가

  대학은 학문공동체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이곳에 함께 있다는 이유로, 단지 이곳에 함께 있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나눈다. 대학은 특히 학문의 장이 펼쳐지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숙고하고 받아들이며 숱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장소기도 하다. 대학 공간에 몸담으며 구성원은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소통방식을 배운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학교는 기본적으로는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직장이고, 그러면서 삶이 이뤄지는 곳”이기에 “구성원 안에서 숙의의 힘이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대학공동체의 특수성을 말했다. 물론 학교의 현실이 이상적일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관계하기 위해서 공동의 약속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대학에서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관점은 대학이 사회로 나가기 전 여러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곳이라는 시각이다. 배유경 책임전문위원은 “최근에는 기업 인사과에서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주목한다”며, “기업에서 실제로 다양성이 수익 상승과 연결된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배 책임전문위원은 다양성이 창의성과 수월성의 원천임에 공감하면서도, 다양성은 도구적 차원을 넘어 공정성과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과 특권이 내재화돼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배 책임전문위원은 “남들이 별로 관심 없어하는 자료를 모은다”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그게 매일의 일상에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도실이 어디에 있는지,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은 어디에 있는지 물을 때, 사람들은 다양성위원회를 찾는다. 이처럼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일은 여러 사람이 평범한 하루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와 직결된다.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차별하지 않는 일이라기보다는 평등을 행하는 일에 가깝다.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일은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려는 노력을 통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약속과 노력이 없는 곳에서는 다양성이 다양성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당연한 말을 왜 또 하느냐고,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왜 또 하느냐고 누군가는 묻는다. 그런 말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말을 통해 논의의 장은 열린다. 말하고 또 듣기 위해 사람들이 발로 뛰고, 공부하고, 모인다. 

  보편적 규범에는 먼지가 쌓이기 쉽다. 모두가 동의하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일이 되기 쉽다. 구체적인 언어를 만드는 일은 먼지 터는 일과 닮아있다.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을 살피고 공동의 약속을 확인하고, 말의 의미를 다시금 이해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게 대학에는 다양성을 위한 자리가 조금씩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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