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이 빚어낸 퀴어한 풍경

성소수자의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기리려면
▲떠난 이를 온전하게 기리기 어려운 성소수자 ⓒ송나윤
▲떠난 이를 온전하게 기리기 어려운 성소수자 ⓒ송나윤

  A와 B는 연인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건 오직 서로뿐이었다. 여느 연인처럼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낼 수 없었던 건 물론, 함께하는 미래를 쉽사리 기약할 수도 없었다. 둘은 성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B가 죽었다. 원가족에게 본인의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밝히지 못한 채였다. A는 B와 어떤 사이였는지 말하지 못했다. 자신의 발화가 곧 B의 아웃팅이 될 수 있을 거란 우려에서였다. 어쩌면 A는 B에 대해 원가족보다도 훨씬 많이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례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A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장례를 주도한 원가족에게 A는 그저 B와 무척 친했던 친구로만 기억될 뿐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겹지만, 성소수자에게 유독 더 버겁다. 삶을 살아내고, 온전하게 죽으며, 떠난 동료를 기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성소수자가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따라가 봤다. 더불어 그럼에도 함께 추모한다는 것의 의의도 담았다.

길을 잃는 성소수자

  적지 않은 성소수자가 사는 내내 원가족과 불화를 겪는다.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인정받는 것부터 난관이다. 애써 커밍아웃을 해도 원가족의 지지로 이어지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청년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다움)’이 발간한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들이 본인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얼마나 지지해주는지 묻는 질문에 조사 대상의 약 15%가 가족이 자신을 반대하거나 무시했다고 답했다. 반대하거나 무시하진 않았지만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응답도 약 20%에 달했다.

  삶의 기본 전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상담심리학회 김진이 상담심리사는 「가족의 거부로 인한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 합의적 질적 연구」(2017)에서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 후 대상의 수용 정도가 낮을수록 우울과 자살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움의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1.5%는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했고, 8.2%는 실제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구성권연구소(가구연) 이유나 공동대표는 성소수자의 자살 충동이 높은 수치를 보이는 건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러 사회 집단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울타리인 원가족에서의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체계가 정의하는 가족에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떠올리기 어렵다. 민법은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또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가족정책의 근간이 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한다. 현실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어려운 성소수자들은 가족을 구성하거나 가족에 소속될 수 있는 주체로 호명되지 못한다.

  2019년 가구연이 발간한 연구 보고서 「법이 호명하는 가족의 의미와 한계」에 따르면 가족이 언급되는 법률은 240여 개다. 해당 법률들이 관여하는 질병부터 사회보장, 조세, 교육에 이르는 삶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소수자가 충분하게 고려되지 못하는 셈이다.

  생애 전반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각종 조직과 사회 제도 또한 성소수자들에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남웅 활동가는 “성별을 지정받은 채 학교와 직장에 갈 때 아웃팅을 당할 수도 있고, 트랜스젠더는 성별 불일치를 느끼거나 성별 정정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어 빈곤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웅 활동가는 성소수자의 생애를 “매 단계가 문턱으로 작용해 계속 벽을 뚫고 길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했다.

  결국 성소수자가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과정은 비(非)성소수자에 비해 몇 배는 수고롭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사라 아메드는 저서 『행복의 약속』(2021)에서 ‘이성애의 역사는 그 마음들을 사회가 이해하는 역사이며, 개인이 가진 상처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역사’라고 말했다. 반면 성소수자의 삶은 사회의 정상성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까닭에 한층 번거로워진다.

죽어서도 발목 잡는 ‘정상성’

  취약한 삶의 구조는 곧 죽음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유나 공동대표는 “죽음은 삶의 여타 조건들과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당사자가 어떤 구조 속에 놓여있는지를 더 잘 드러내는 생애의 일부”라고 말했다. 죽음의 조건과 이를 둘러싼 논의가 “고인의 생을 판단하는 사회 규범과 맞닿아” 있기에, 특히 성소수자의 죽음과 애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성격을 띤다는 설명이다.

  성소수자가 고인을 기리고 애도하는 주체로 서기 위한 과정은 녹록지 못하다. 우선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을 때부터 제약이 생긴다. 사망진단서는 시신 인수, 매장, 화장, 사망 신고 등 사후 절차를 수행하기 위해 필수로 요구되는 서류다. 의료법 제17조는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을 때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교부할 수 있는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철저하게 환자와 사실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국한된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7조 역시 연명 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때 환자의 가족으로 배우자, 직계비·존속, 형제자매만을 언급한다. 고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이라고 하더라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둘러싼 법 전반에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2조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를 규정한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총 여덟 항목의 지위가 있다. 앞 항목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해야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고인이 생전에 원가족과 불화를 겪었더라도 실질적으로 마지막 항목인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 즉 앞서 명시된 모든 이들을 거친 뒤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고인의 원가족에게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셈이다.

▲여러 법조항들이 가족을 다양하게 정의하지만 혼인·혈연·입양에 기초한다. ⓒ송나윤

  한편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사 업무 안내』 개정을 통해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의 기준과 장례 진행 지침을 구체화했다. 이로써 사실혼 배우자나 동거인, 고인이 생전에 유언장 등을 통해 장례주관자로 지정한 사람이 장례를 진행할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이는 행정 규칙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법률상 연고자의 지위는 여전히 사실혼과 혈연가족 중심으로 부여된다. 이유나 공동대표는 “비혼 동거 파트너, 공동체 구성원, 가까운 지인, 성년후견인, 고인이 지정한 사람 등 고인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법률상 연고자의 지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장사 업무 안내』가 개정돼 장사법 제2조 제16호 아목이 구체화됐다. ⓒ보건복지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장례에 참여한다 해도 고려할 요소가 많다. 조문객의 정체성이나 고인과의 관계성을 드러내면 의도치 않게 고인의 아웃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홀릭 대표는 재작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차별을 넘어 우리답게 보내주기 – 성차별적 장례문화 타파하기 교육’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로 알려져 있어 장례식장에 가도 될지 점검하는 게 버릇이 됐다”고 말했다. 또 소속 단체명만으로 성소수자임을 짐작할 수 있어 화환이나 조의금을 보낼 때 난감하다는 일화도 전했다. 홀릭 대표는 “성소수자들은 나를 어느 때 드러낼 수 있고 또 숨겨야 하는지를 계속 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는 고인과 함께 지낸 시간이나 고인과의 관계를 밝히지 못해 슬픔을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아주대 고선규 교수(상담심리학과)는 저서 『여섯밤의 애도』(2021)에서 ‘박탈된 애도’ 개념을 소개한다.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사별 후 충분히 애도할 필요가 있는 관계들을 사회가 외면해, 슬픔을 느끼는 자신을 비정상으로 여겨 애도를 생략하거나 회피한다는 의미다.

  설령 고인이 성소수자임을 원가족이 이미 알더라도 원가족이 주도하는 장례에 친구나 연인의 자격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남웅 활동가는 알고 지내던 레즈비언 커플의 사례를 들려줬다. 고인의 병간호를 파트너가 도맡았지만, 고인의 원가족은 파트너에게 매정했다. 파트너는 연인의 장지를 지금도 모른다. 장례의 전 과정을 원가족이 독점해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웅 활동가는 “설령 고인과 제일 친밀했더라도 성소수자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가족이라는 걸 이러한 상황에서 피부로 실감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 의도와 상관없이 장례 절차에서 성별 고정관념에 입각해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장례 주관자가 판단한 고인의 성별에 따라 바지 수의와 치마 수의 중 하나를 입게 되고, 피부 화장 여부가 결정된다. 지정성별과 다른 성별로 본인을 정체화했던 트랜스젠더임에도 원가족에 의해 원치 않는 성별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설령 뜻이 존중되더라도 이는 철저하게 원가족의 관용에 의존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남웅 활동가는 원가족이 고인의 의사를 존중할 때 “성소수자들은 고마워하면서도, 너무 당연한 일인데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의심하는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함께 추모한다는 것

  현행 장례와 애도의 문화는 법적 가족주의와 이성애 중심적인 가부장제적 질서로 공고히 짜여 있다. 그럼에도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적 형태의 추모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가구연이 지난해 발간한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는 죽음을 호상과 악상으로 구분하는 전통을 언급한다. 자손과 친지가 지켜볼 때 죽는 건 호상이지만, 결혼하지 않거나 자식 없이 죽으면 악상이다. 악상은 식이 간소하게 치러지거나 여러 제약이 부과된다. 따라서 전통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죽음은 악상이 대부분이므로 많은 절차가 생략되거나 금기가 붙기 십상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대안적 애도’를 통해 동료의 죽음을 온전하게 기린다고 말한다.

  행성인은 매년 4월 추모 주간을 기획한다. 단체가 만들어지고 활동을 이어온 세월 동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사진과 유품을 진열하고 함께했던 경험을 나눈다.

▲지난 4월 진행된 행성인 추모주간 행사 ⓒ행성인

  추모의 의의는 단순히 고인을 기억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집단적 추모는 그 자체로 단체의 역사와 당시 배경을 되새기는 장이 되기도 한다. 남웅 활동가는 “개인이 살아온 역사와 궤적이 그 사람의 면면을 이루듯 단체 역시 마찬가지”라며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지금의 행성인의 모습을 만들었고, 이를 기억함으로써 단체의 역사를 환기하는 자리가 된다”며 추모 행사의 의의를 짚었다.

  추모는 소수자들끼리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장으로도 기능한다. 성소수자 의제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연대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남웅 활동가는 “빈곤, 장애 운동 등도 저마다의 추모 주간이 있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 노들장애인야학과 같은 단체들과 공동으로 추모 문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작용해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언급했다.

  성소수자의 죽음은 그 사회적 의미를 고려했을 때, 다른 사회적 참사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남웅 활동가는 “사회적인 재난으로 누군가를 잃었을 때 드는 상실의 감정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는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웅 활동가는 “상실의 아픔은 아픔대로 있겠지만 죽음을 있게 한 위계나 구조를 인식하게 된다”며 그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때 어떻게 같이 싸울 수 있을지 얘기하며 공동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추모 행위가 그 자체로 돌봄이 되기도 한다. 가구연 이유나 공동대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애도는 죽은 사람에 대한 돌봄인 동시에 자기 돌봄”이라고 말했다. 고인과의 관계성을 밝히지 못하거나 친구나 파트너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는 “소외의 경험이 집단적 추모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약성이 빚어낸 기이한 투쟁

  성소수자로 온전하게 살아내려는 과정은 가히 투쟁에 비견될 법해 보인다. 온갖 형태로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는 죽음 이후에도 성소수자에게 끈질기게 따라붙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故 이은용 작가의 희곡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에서 한 사람이 유언장 쓰기 모임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낭독한다.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닌 방식으로 죽는다면,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낸다고 함께 화내지 마세요.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고 그래서 평생 모든 것을 회피하며 살았으니, 죽음 앞에서는 당당하길 바랍니다.’

  여기, 아무리 세상이 부당해도 굴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기이하다(queer)고 일컬어지던 이들이 기어코 그 의미를 재전유해 스스로 퀴어라 명명하고 자조했듯,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기리기 위한 기이한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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