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바깥으로 나온 영화

영화는 현실 정치와 어떻게 만날까

  러닝타임이 끝나면 영화는 입을 다물지만, 사람들은 상영관 바깥으로 나온 뒤에야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가 어땠는지. 얼마나 흥미롭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많은 경우 이런 후일담은 개인간의 대화 속에서 소소하게 돌다가 그친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 공동체, 더 파고들어 정치 공동체의 차원에서 담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난 2월 1일 개봉한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바로 그렇다. 《건국전쟁》은 대한민국 사회와 현실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어떻게 미치게 됐을까?

《건국전쟁》이라는 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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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전쟁》(2024) 포스터 ©다큐스토리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過)를 부각하는 역사 해석에 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공(功)을 조명해 봤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개봉 후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건국전쟁》은 개봉 2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이다. 특정 정치인을 내세운 다큐멘터리 영화로 범위를 한정해 본다면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2017)를 이은 역대 2위의 성적이다. 《건국전쟁》과 비슷한 시기 개봉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12만 명의 관객 수를 달성한 것과 비교해 봐도 상당한 수치다.

  흥행의 원인으로는 여러 측면이 거론됐다. 우선 유명인들의 적극적인 관람 인증 릴레이가 톡톡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 덧붙여 다양한 계층에서 단체 관람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는데, 기독교계의 단체 관람이 특히 두드러졌다. 다수의 대형 교회에서 대규모 단체 관람을 추진하고, 관람 후기를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홍보 효과에 맞물려, 평소 접할 일이 드문 이승만의 일대를 다룬 영화라는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으로 보인다.

  김덕영 감독은 차기작으로 《건국전쟁2》를 기획 중이라고 발표했다. 김 감독은 《건국전쟁》이 이승만의 정치적 치적을 다뤘다면, 속편은 이승만의 인간적 면모를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치 한복판으로 들어선 《건국전쟁》

  개봉 초반 《건국전쟁》의 포스터는 네이버 영화 소개란에 누락된 상태였다. 이 상황은 곧 해결됐지만, 국민의힘 김종혁 조직부총장은 이러한 사건을 “중앙당 비대위 비공개회의 때도 지적했다”고 말했다. 여당이 당 차원에서 《건국전쟁》의 포스터 문제가 해결되는 추이를 지켜봤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덕영 감독은 페이스북에 “기다리던 소식입니다. 정치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감독이 직접 정치와 영화의 협력을 시사한 셈이다. 이는 영화와 정치가 별개의 영역에 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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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념사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건국전쟁》은 실제로 정치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흥행을 이어갔다. 연일 여당 인사들의 활발한 호명이 있었다. 지난 2월 13일, 여당 지도부인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관람을 인증했다. 한 위원장은 관람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되는 굉장히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며 참모들에게 영화 관람을 독려했다.

  야당 측의 부정적 반응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로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에 현직 대통령이 동참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여야가 영화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 역시 정치계로 끌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의 봄》을 인용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신군부 세력에 현 정부와 검찰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투영했다. 총선을 위한 구호인 ‘검찰독재 타도’에 영화를 연결한 것이다. 

  영화는 어느새 정치의 전장이자 무기가 됐다. 한편 《건국전쟁》은 반대로 영화 안에 동시대의 정치 현장을 담아내기도 하는데, 국민의힘의 한동훈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당 대표가 영화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가 영화에 영향을 받고, 영화 역시 현실 정치에 영향을 받는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분의 관계, 정치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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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내부

  ‘20세기는 영화 없이 사유될 수 없다.’ 영화감독이자 비평가였던 장 뤽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와 사회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서원대 박종성 전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저서 『씨네 폴리틱스』에서 ‘영화의 정치적 비중은 대단히 크다’며 영화와 사회 사이의 관련성에서 발생하는 정치성을 강조했다. 영화가 ‘광범위한 문화적 재현 체계 중 한 부분’이며, ‘사회현실을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심리 성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영향력을 실제로 발휘하기까지 한다. 부산대 한주희 교수(교양교육원)는 정치 현상과 영화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에서 영화가 가진 세 가지 특성을 꼽았다. 영화는 특정 인식을 시각적으로 이데올로기화하며, 사적 영역의 사건을 공론화하고, 역사를 재현화한다는 것이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재현해 장애아동 성폭행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도가니법’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영화 《도가니》(2011)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영화들이 좁은 의미의 정치계로 진입하기도 한다. 한주희 교수는 현실 정치인들이 “영화에 직접 개입해 특정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파급력이 강한 시지각 매체이며, 영화인은 정치인들 못지않은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신속하게 정치적 여론을 형성할 잠재력이 있다. 한 교수는 박근혜 정권 시절 존재했던 영화계 블랙리스트가 이를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가진 실질적인 영향력을 염려했기에, 정권이 반대로 영화계 인사들을 견제했던 셈이다.

《건국전쟁》의 정치, 정치의 《건국전쟁》

  그렇다면 영화 《건국전쟁》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서 소환될까?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학살자이자 독재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며 재평가를 시도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승만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제시하기보단, 긍정적 업적을 선택적으로 편집해 또다시 찬양적 편향을 조장하는 자기모순을 보인다. 영화는 이승만이 실질적으로 비판받았던 사사오입 개헌이나 보도연맹 사건 등의 언급은 누락한다. 이 같은 과거사의 각색으로 《건국전쟁》이 겨냥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건국전쟁》이 제목에서 채택한 건국이라는 단어는 2000년대 중반 부흥했던 신흥 우파 세력,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이어진다. 이들은 식민지근대화론·신자유주의 등을 표방한 역사적, 경제적 움직임을 보인 것이 특징이다. 영화에서 자문으로 등장한 연세대 류석춘 전 교수(사회학과)는 신우익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전 대표이기도 했다. 당시 뉴라이트 진영은 1948년 8월 15일 남한의 단독정부가 수립됐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광복절의 명칭을 ‘건국절’로 변경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의 초점을 광복에서 건국으로 옮기는 것은 북한과 차별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출발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로 영화는 초반부에 독재 국가 북한과 경제 강국 남한의 성패를 비교한다. 이 차이를 주도한 인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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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 사진 ©대통령 기록관

  영화는 ‘건국 대통령’을 재조명하기 위해 두 가지 프레임을 제시한다. 이승만이 탁월한 외교가였으며, 공산주의를 저지한 수호자라는 것이다. 이는 곧 친미주의와 반공주의의 성공으로 번역되고,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옹호로 이어진다. 영화가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자본주의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저서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는 한국 근현대사를 자본주의 발전의 단선적 역사로 본다’고 설명하며, ‘그 기준 하나로 일제 통치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도 모두 정당화하려 든다’고 평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점은 영화가 “박정희라는 기관차는 이승만이라는 레일 위를 달렸다”며 국가자본주의를 상찬하는 일면과 이어진다.

  영화에 드러난 뉴라이트적 가치관은 ‘건국 세대’에게 보상적 평가를 내린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과 비교하면 살 만한 자본주의 국가이며, 이것은 과거 세대의 공로 덕분이라는 의미다. 이는 영화에서 “이 영화를 건국 1세대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로 나타난다. 이승만은 이러한 건국 세대를 대변하는 영웅적 인격체로 소환된 셈이다.

  정부 여당은 이 영화를 적절히 활용했다. 현 정부는 누차 공산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이념 대립을 자극적으로 부각했으며,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강경한 대북 정책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정부 입장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실증뿐 아니라, 정치적 행보의 정당성을 대변해주는 기회인 셈이다.

  2024년 2월 5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60대와 70대 이상의 여당 지지도는 62%로 압도적이다. 다른 연령대에서 30% 내외로 일정한 수치를 기록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영화가 이전 세대에 대한 재평가를 함의하는 만큼, 《건국전쟁》의 관람층 역시 50대 이상의 비율이 46%에 육박한다. 여당의 지지층과 영화의 관객층이 서로 맞닿는 것이다. 여당이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연일 《건국전쟁》을 정치의 무대로 불러내는 것은, 영화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각성시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스크린 밖으로 성큼 걸어나온 영화를 어떻게 다룰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영화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인 만큼, 관객은 영화를 통해 정치의 영역에 보다 흥미롭게 접근할 가능성을 얻었다. 하지만 영화가 정치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면, 그만큼 비판적 수용의 필요성도 높아질 것이다. 영화의 전달력에 그대로 휩쓸리기보다 영화가 다루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성찰해야 한다. 이처럼 영화 관람 이후의 탐구와 담론이 더 활발해진다면, 영화라는 복합적인 경험 속에서 보다 풍성한 통찰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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