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다 읽은 책을 다시 온라인 중고서점에 등록한다. 디지털 행정 서비스를 이용해 행정 서류를 발급받고, 정부 지원금을 신청한다. 식당에서는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이다. 편리해 보이지만, 이 디지털 세상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디지털 기술이 가정하는 사용자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없을까?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 실태에 대해 알아봤다.
디지털로 이동한 한국 사회
이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해 상품을 구매하거나 정보를 접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디지털 전환을 더욱 가속했다. 사람 간의 직접적인 대면이 치명적인 위험 요소가 되면서, 은행들은 오프라인 점포를 줄였고 식당에서는 점원을 디지털 키오스크가 대체했다. 2022년 기준 국민의 98%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카드 결제의 40%가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은 편리, 위생, 진보를 의미한다. 정부는 지난해 ‘디지털 대한민국 추진 전략’을 발표하는 등 정책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 오고 있으며, ‘정부24’ 등의 디지털 행정 서비스를 확대해 각종 행정 서류 발급, 정부 사업 신청, 복지 제도 신청 등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이 편리가 아니라 장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노인 세대다. 노인 세대는 디지털 기기의 이용 능력, 활용 정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낮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2019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을 100으로 두고 측정한 노인 세대의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은 51.6에 불과했다.
더 많은 서비스가 디지털로 이뤄질수록, 노인 세대는 더 다양한 영역에서 불편을 겪는다. 행정 사무를 온라인상에서 처리하지 못해 관공서에 헛걸음을 하거나, 차표가 온라인으로 빠르게 매진돼 오프라인 매표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노인 세대가 불편한 이유
노인 세대는 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는 것일까? 아직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지만, 현재의 디지털 환경이 노인의 신체적 조건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 세대가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적응도 필요하지만, 노인 세대에 불리하게 설계된 디지털 환경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통틀어, 디지털 접근성의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디지털 접근성은 누구나 동등하게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디지털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서비스의 설계 과정에서 연령대, 장애 여부, 성별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디지털 접근성은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과기정통부의 「2019 웹 접근성 실태조사」 결과,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이용률이 높은 8개 업종의 웹사이트 1,000개 중 666개가 웹 접근성이 ‘미흡’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무인정보단말 정보접근성 현황조사」에서 키오스크 800대를 조사한 결과 정보 취약계층의 접근성 수준은 평균 59.8점이었으며 음식점·카페·패스트푸드 단말기의 접근성 수준이 50.5점으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인권으로서의 디지털 접근성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 격차는 다른 차원에서의 인권 문제로 이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디지털 격차 해소는 보호와 시혜적 차원이 아닌 마땅히 누려야 할 노인들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격차가 일상에 필수적인 다양한 영역으로의 접근을 제한하기 때문에, 보건 격차·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의 격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이뤄지는 일상의 영역이 늘어남에 따라,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노인 세대는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실시한 「키오스크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1주일에 1회 이상 키오스크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60대 이상 응답자 수는 20대와 3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또한 60대 이상 이용자들은 키오스크를 이용하다가 도중에 그만둔 경험이 많았으며, 그 이유로는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세대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선택권이 제한되며, 키오스크를 이용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한 장안식 외 연구진 또한 노인 세대의 정보 격차가 ‘일상생활에서 높은 불안과 스트레스 수준을 경험’하게 한다며, 이는 노인 세대의 우울과 고립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디지털 접근성은 단순한 편리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는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디지털 환경에서 이뤄지는 서비스를 노인 세대만을 위해 오프라인으로도 병행하는 것이 디지털 접근성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접근성의 의의는 동등한 경험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온라인 창구와 오프라인 창구를 병행하는 것 또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동등한 경험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면 민원 창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행정 서비스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프라인 예매를 위한 기차표를 남겨 두는 것도 좋지만, 노인 세대도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예매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디지털 환경 자체를 노인 세대가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을 위한 세부 사항
국내에서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웹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정리한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KWCAG)’이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2005년 제작됐고, 해당 지침을 활용해 접근성 평가 등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KWCAG는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중점적으로 포함하고 있어, 노인 세대를 위한 내용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2020년에는 서울디지털재단이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을 발표했다. 2020년에 모바일 웹·앱 표준과 영상 콘텐츠 디지털 접근성 표준이, 지난해에는 키오스크에 적용되는 키오스크 적용 가이드가 발표됐다.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은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된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을 위한 표준이라는 의의가 있다. 모바일 웹·앱 표준과 영상 콘텐츠 표준은 각각 10개의 지침으로 구성됐고, 키오스크 적용 가이드는 3개의 규칙으로 구성됐다.
모바일 웹·앱 표준의 10대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글자는 크고 선명해야 합니다.
2. 필수적인 요소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3. 정보구조는 단순하고 친숙해야 합니다.
4. 용어는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5. 시스템 상태는 가시적이어야 합니다.
6. 조작기능(컨트롤)은 행동을 유발해야 합니다.
7. 조작기능(컨트롤)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8. 조작 결과(피드백)를 제공해야 합니다.
9. 사용자 오류를 예방하고 복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 심리적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은 노인 세대의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노인 세대는 시력이 약화하므로 화면의 글자 크기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하고, 단기적인 회상이 어려우므로 조작기능 선택 시 그 효과와 결과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디지털재단은 ‘정보 소외계층이 없도록 모든 디지털 콘텐츠의 접근성에 대한 공공성을 갖춰야 한다’며 표준의 목적을 밝혔다.

지켜지지 않는 권장 사항
앞서 살펴봤듯이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표준과 가이드라인은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디지털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실제 현장에서 이 기준들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디지털재단의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은 권장 사항의 성격을 가질 뿐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 접근성이 평등권으로서 인권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비강제적인 방식은 인권 보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웹 접근성 준수 의무와도 대비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웹 접근성 준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받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웹 접근성 준수 의무 대상은 공공기관에서부터 의료기관, 법인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됐고, 웹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는 웹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소송 사례가 생기면서 현재는 장애인을 위한 웹 접근성 인증제도가 확산됐다.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과 대비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사례는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 또한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강제력을 갖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의 발간은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성을 위한 체계적인 표준을 처음으로 확립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더 나아가 노인 세대의. 디지털 접근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권리 보장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리는 “웹의 힘은 보편성에 있다.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이 웹, 키오스크 등 디지털 환경에서 이뤄지는 오늘날, 디지털 접근성의 실현은 접근성이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 부재와 표준적인 신체에서 노인의 신체적 특성을 배제하는 차별에 가로막혀 있다.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권리로서의 접근성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