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헌장, 얼마나 알고 있니?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의 발자취 돌아보기

  대학은 교육, 연구, 노동 등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진보적 담론이 형성되는 사회의 실험실 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하기에 대학에서도 인권은 당연히 중요한 가치이고, 대학이 선도적으로 인권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간 서울대를 인권 친화적 대학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인권을 규범으로 명문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2020년 그 일환으로 인권헌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최초 등장 이후 3년간 인권헌장은 제정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며, 그 내용과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학내 구성원 역시 많은 상황이다. 학내 인권규범 제정 타임라인, 인권헌장의 내용과 연구 과정, 인권헌장을 통해 서울대가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촘촘히 살펴본다. 

서울대학교 인권 타임라인

  인권규범이란 인권 친화적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규정하는 성문 규범이다.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인권헌장(안) 연구)에 참여한 인권센터 강효원 연구원은 대학 내 인권규범을 “학내 구성원들의 권리와 책임을 규정하는 통합적이고 명문화된 규범”이라고 설명한다. 인권규범은 학내 구성원이 합의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선언함으로써 이후 정책이나 규정을 마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인권규범이 특히 대학에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송지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진 대학 역시 학문의 자유, 사상의 자유, 교육 관련 권리가 특히 중요히 존중돼야 할 공간”이라며, “공동체의 공통된 인권규범을 숙의·공유하며 지켜보는 것이 구성원의 사회화에 있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20년 등장한 인권헌장 역시 대학 내 인권 존중을 위한 인권규범의 일환으로 연구·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서울대 인권 담론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인권헌장이지만, 그 이전에도 학내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규범을 제정하려는 노력은 존재해왔다. 

인포그래픽 시작. 2013년 이후 학내에서 일어난 인권 논의를 타임라인으로 정리한 인포그래픽이다. 이후 인권 가이드라인 논의 타임라인 순서대로 설명이 이어진다. 2013년 10월 인권센터 주관 인권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개 토론회 개최, 2015년 2월
▲2013년 이후 학내 인권 논의 타임라인

  그 시작은 인권센터 설립 1년 후인 2013년 인권센터 주관으로 개최된 ‘인권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개 토론회였다. 인권센터 이주영 연구교수는 “‘인권 가이드라인’은 인권의 기본적인 가치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구성원 간에 공유하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며 그 의의를 설명했다. 

  포괄적인 제안 수준으로 존재하던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5년 ‘인권센터 운영위원회 논의안’, 2016년 9월 서울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회의, 2016년 11월 대학원총학생회에서 문서화됐다. 이를 기반으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내 단체들이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평의원회 심의에서 부결되며 서울대학교 공식 규범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서울대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논의는 이 때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한편 2019년 인권센터를 중심으로, 대학원생이 경험하는 인권 문제에 대한 구체적 인권 지침을 확립하기 위한 대학발전기획과제 「대학원생 인권보호 지침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학생, 연구자, 노동자 등 대학원생이 가지는 다양한 정체성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안들에서의 인권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다”며 연구 목적을 설명했다. 이어 대학원총학생회 차원에서도 2021년 「대학원생 성폭력,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개선안 및 피해 조력자를 위한 행동지침 제안」을 만드는 등 학내 개별 단위 수준에서는 인권규범 제정 노력이 지속됐다.

  ‘인권 가이드라인’ 심의 부결 이후 다소 침체됐으나 꾸준히 축적되어 온 학내 인권규범 논의가 다시 물살을 탄 것은 2020년이다. 2020년 서울대학교 기획연구과제로 진행된 「인권헌장(안) 연구」 보고서는 전문, 조항을 포함해 학내 인권규범으로서 보다 구체화된 형식을 갖춘 인권헌장(안)과 그 제정 방식을 제시했다. 학내에서 통용되는 ‘인권헌장’이란 바로 이 보고서에서 등장한 인권헌장(안)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인권 가이드라인) 부결 후 여러 인권 문제가 다시 발생하며 서울대가 인권문제 발생을 방지하고 구성원 공통의 인권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인권헌장(안) 발표 이후 학생사회에서는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학추위)가 구성됐고, 총학생회 차원에서도 인권헌장 홍보를 위한 ‘인권열차’ 사업을 진행하는 등 인권헌장 제정에 관한 관심과 제정 노력이 지속됐다. 2020년 10월에는 인권센터에서 ‘인권헌장·대학원생 인권지침에 관한 공청회’를 통해 인권헌장에 관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후 유의미한 진척은 없었고, 코로나19로 인해 학내에서 인권헌장에 관한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도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인권헌장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오세정 전 총장은 구성원 담화문을 통해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으며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에서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인권헌장 인식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인권헌장에 대한 학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인권헌장 인식조사」는 인권헌장 전반 및 개별 조항에 관한 찬반과 개인의 차별 경험 등을 묻는 문항으로 구성됐으며 이를 통해 학내 인권 현황을 종단적으로 비교했다. 조사를 진행한 고길곤 교수(행정대학원)는 “코로나19를 거치며 낮아진 학내 인권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고자 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인포그래픽 시작.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 중 인권헌장 조항별 동의 수준에 관한 부분을 표로 나타낸 인포그래픽이다. 각 조항별 찬성률은 제2조 99.2%, 제3조 제1항 97.2%, 제3조 제2항 95.2%, 제4조 97.8%, 제7조 제1항 98.7%, 제7조 제2항 98.3%, 제14조 98.7%, 제16조 98.2%로 나타난다. 인포그래픽 끝.
▲인권헌장 조항별 동의 수준

  「인권헌장 인식조사」 결과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헌장에 관한 관심도는 2021년 27%에서 2022년 52.4%로 약 25%p 증가 추세를 보였고, 인권헌장(안) 전반과 개별 조항에 관한 찬성률도 95% 이상으로 높았다. 구성원들이 인권헌장 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권헌장 인식조사」 이후, 2년 전과 마찬가지로 학추위 등 학내 단체들이 인권헌장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인권헌장을 제정하라는 요구는 이어지고 있다. 

인권헌장, 연구 과정과 제정 방안

  인권헌장은 어떤 목적으로, 누가, 어떤 방향으로 만든 것일까. 인권헌장 전문은 “구성원의 인권 존중은 서울대학교가 학문공동체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조건”이라며 “보편적 인권의 보장과 증진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세계 지성계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인권헌장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인권헌장은 서울대가 표방하는 인권 원칙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의도 가진다. 「인권헌장(안) 연구」에서 연구 책임자를 맡은 송지우 교수는 “인권헌장은 서울대 인권 관련 가치를 체계화해 선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표현했다. 송 교수는 “인권헌장은 학내 길라잡이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사회 인권규범 추세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이며 대학 인권규범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권헌장(안) 연구」는 인권센터를 중심으로 교원, 학생, 직원 및 인권 전문 연구자의 참여로 진행됐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인권헌장에 대한 학내 공감대 상승을 기대했다”며 연구원 구성 이유를 설명했다. 기관 주도에 그치지 않고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인권헌장에 대한 구성원들의 논의를 활발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권헌장은 학내에서 어떻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현재 학내 규범 체계는 정관-학칙-규정-세칙 순서의 위계로 구성돼 헌장에 정확히 부합하는 단계는 없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인권헌장이 담고 있는 내용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인권헌장은 정관 혹은 학칙 수준으로 제정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인권헌장(안) 연구」 보고서에서 연구팀은 학교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안을 다루는 ‘정관’에 ‘서울대학교 구성원의 인권보호를 위한 사항은 인권헌장으로 정한다’는 위임규정을 두고, 인권헌장을 학내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지니는 ‘규정’으로 제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가장 상위 규정인 정관에 인권헌장에 대한 위임규정을 둬 그 지위와 정당성을 확보한 뒤, 규정의 지위로 학내 규범체계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규정 제정을 위해서는 총장의 공고와 학사위원회 및 평의원회 심의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안이 채택될 경우 평의원회에 인권헌장이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편 이주영 연구교수는 “인권헌장은 구성원 사이에서 지속해서 논의되고 교육, 연구, 행정 등 학내 다양한 영역에서 내재화돼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제안이었다”며 “규정 제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권헌장이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실제로 적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헌장, 조항 단위로 톺아보기

  그렇다면 인권헌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각 조항은 국제규범과 헌법을 포함한 국내 법규범이 보장하는 권리 존중 및 보호 기준을 근거로 한다. 서울대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의 내용을 담은 인권헌장의 18개 조항 중 연구 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4가지 조항을 톺아본다.

① 인격권

  제2조(인격권)는 구성원들의 존엄성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학내 구성원과 서울대 본부 차원의 의무를 서술한다. 제2조의 제2항, 3항은 각각 학내 구성원이 학내외 모든 사람을 대등한 존엄을 지닌 주체로 대할 책무와 서울대가 인격권 침해 상황을 인지할 시 묵인하지 않고 대응해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 이주영 연구교수는 “인격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권리와 존엄성이 존중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항의 의의를 설명했다.

② 차별금지와 평등권

  제3조(차별금지와 평등권)는 구성원의 차별금지사유를 밝히고 혐오표현에 대한 금지를 규정한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3조의 목적은 국제 인권규범상 인정되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함이다. 국제 인권규범에 없는 새로운 권리나 의무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권리와 의무가 학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중 제1항은 성별, 국적, 인종, 장애, 출신 지역과 학교, 연령, 종교, 임신과 출산,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차별금지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송지우 교수는 “해외 유수 대학과 인권 선진국 등 서울대가 준거집단으로 삼는 집단의 비차별 원칙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에 포함하고 있다”며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이 대표적인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인권헌장 제1항에 명시된 차별금지사유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차별의 목록에 불과”하며, “그 외의 어떤 이유로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3조의 궁극적 의미”다.

③ 대학 내 인권규범

  제6조(학업, 연구, 교육에 대한 권리)는 학생, 교원, 연구자의 권리와 이를 보장할 서울대의 의무를 규정한다. 특히 대학의 본질적인 기능인 학업, 교육, 연구의 분야에서 구성원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제7조(연구, 교육, 직무 수행 조건에 대한 권리)는 구성원이 인간다운 조건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함을 규정한다. 제7조에서 규정하는 구성원에는 근로자 지위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대학 내 연구, 교육, 직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송지우 교수는 “대학에서 침해될 수 있는 인권 관련 상황을 가시적으로 규정하는 데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며 “교육과 연구 기관이라는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해 특히 교육과 연구에 관한 권리를 중요하게 포함하도록 해당 조항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설명 시작. 행정관 앞에서 학추위가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한 줄에 약 8명의 사람이 3줄로 서 있으며, 사람들은
▲학추위 인권헌장 제정 촉구 기자회견 현장

  인권헌장은 서울대가 연구, 교육, 생활 측면에서 학내 모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규범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인권헌장은 연구가 시작된 2019년부터 공청회, 인식조사 등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학내에서 그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얻었다. 코로나19로 대학사회가 오랜 침체를 겪고도 논의가 재개된 후 인권헌장이 여전히 그 필요성을 인정받은 만큼 인권헌장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인권헌장 제정을 통해 인권 보장의 중요성을 드높일 의무가 있는 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을 다해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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