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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에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히스토리 보이즈」 1등급!
다시 태어나는 죽음

불편함에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히스토리 보이즈」 1등급!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2022)

  1980년대 영국 셰필드의 한 학교, 옥스브리지* 특별반 학생 8명은 대입을 준비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무대 위 아이들은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공부하고, 뛰어놀고, 다투고, 또 고민한다. 학생들, 문학 교사지만 인생을 가르치고 싶은 교사 헥터, 역사 교사 린톳의 교실은 새롭게 고용된 교사 어윈의 등장으로 미궁에 빠진다.

*영국의 명문대학교이자 극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꿈의 대학교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총칭하는 말

사진 설명 시작. 칠판 배경에 「히스토리 보이즈」 포스터가 빨간색 핀으로 꽂혀 있다. 포스터는 교실을 배경으로 피아노, 책상, 의자, 책장 등이 높여 있고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다. 포스터 오른쪽으로는

헥터: 문학 교사로, 학생들과 함께 문학을 외우고 영화 장면을 따라하는 등 다소 체계가 없고 시험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낭만적인 교사 같지만 학생들을 오토바이 뒤에 태워 성추행해왔다. 어윈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다 사고가 나 사망한다.
어윈: 학생들의 옥스브리지 합격을 위해 새롭게 고용된 젊은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 교사로, 역사적 사건들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시험 답변을 작성하기를 요구한다.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중에서도 데이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학생들의 대입이 끝나고 사실 옥스퍼드 출신이 아님을 데이킨에게 들켜 성적 의미가 담긴 술자리 제안을 승낙한다. 그러나 헥터의 오토바이를 함께 탔다 사고를 당한 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게 된다.
포스너: “저는 유대인이에요. 키도 작고 동성애자인데다가 셰필드에 살아요.” 18세인 옥스브리지 특별반 학생들 사이에서 유일한 17세로, 영리한 학생이다. 데이킨을 좋아하지만 데이킨과 어윈이 서로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케임브리지에 입학했지만 자퇴하고 옥스브리지 특별반 학생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쓴다. 그러던 중 어윈에게 직접 데이킨과 어윈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을 인정받고 싶어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헥터의 가르침을 심장에 새기고 글을 쓰며 살아간다.
데이킨: 옥스브리지 특별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킹카. 어윈에게 본능적인 끌림을 느껴 옥스퍼드에 합격한 뒤 술을 마시자는 핑계로 그를 성적으로 유혹한다. 어윈이 사고를 당해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헥터, 어윈, 린톳, 교장과 <옥스브리지 특별반> 포스너, 데이킨, 스크립스, 크라우더, 럿지, 팀스, 악타, 락우드의 이름이 써있다. 옥스브리지 특별반 학생들 이름은 노란색 분필로 그린 네모칸 안에 묶여있다. 헥터와 포스너는 서로 화살표로 연결돼있고, ‘문학으로 연결’이라는 글이 써있다. 포스너에서 나와 데이킨을 향하는 화살표에는 ‘짝사랑’이라고 써있다. 어윈에서 나와 데이킨으로 향하는 화살표에는 ‘끌리지만 마음 숨김’, 데이킨에서 나와 어윈을 향하는 화살표에는 ‘동경 or 사랑’이라는 글씨가 써있다. 인포그래픽 설명 끝.” width=”1200″ height=”1021″ style=”height:1021px;vertical-align:middle;” />

▲「히스토리 보이즈」(2022) 인물 관계도 ⓒ강다겸

  관객은 누구나 학교에서 경험해봤을 일들에 공감하며 극에 한껏 가까워졌다가도 거리를 두게 된다. 「히스토리 보이즈」가 곳곳에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를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양면적 인물, 역사를 자기만의 잣대로 해석하려는 태도, 차별받는 약자 등, 불편한 장면들을 곱씹다 보면 그 찝찝함이 이 극의 매력임을 깨닫는다. 세 기자가 모여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가 남긴 불편함을 논했다.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극은 어윈의 “패러독스는 학교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는 대사로 시작된다. 작품에서 학교와 패러독스는 어떤 의미일까?

김유민 기자 (김) 젊은 선생님에 대한 호기심, 입시 경쟁, 짝사랑 등 누구나 겪어 봤을 학창 시절을 담고 있어 매우 친숙하고, 몰입하기 쉬운 극이다. 극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보호하긴커녕 성추행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관객이 목도하게 한다. 학교라는 배경은 효과적으로 불편함을 자아내는 공간적 장치로 사용됐다.

박선윤 기자 (박) 학교는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가 명확한 공간이다. 셰필드라는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묘사된다. 학생들은 옥스퍼드를 나온 어윈과의 지식, 경험 차이에서 오는 권위를 느끼고 그를 추종한다. 스스로 굉장히 잘났다고 생각하는 데이킨도 어윈에게서 처음으로 타인의 우월함을 느끼고 그에게 끌리지 않았을까. 교사가 권위를 가지는 학교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이, 특히 데이킨이 어윈에게 과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을까? 아마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윤성은 기자 (윤) 인물도, 사건도, 배경도 이 극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역설적이다.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하는 어윈부터가 역설의 의인화다. 어윈은 자신은 아이들을 성추행한 헥터와 다르다면서도, 학생 신분의 데이킨이 제안한 성적 의도가 담긴 술자리를 승낙한다. 극은 역설의 연속이고,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학생들은 ‘이게 잘못됐나?’라는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패러독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 패러독스의 중심인 어윈이라는 인물과 ‘역사에 다른 관점을 적용해 본다’는 그의 테크닉을 평가해보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영국이 군비확장 경쟁을 조장했다”와 같이 역사적 사건의 정설을 뒤집어서 생각하자는 것이 어윈의 테크닉이다. 그런데 어윈의 의도가 과연 그의 말대로 순수하게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전쟁의 승자인 영국의 입장에서 ‘논제를 한번 제시해 본다’는 시혜적인 태도이자 전형적인 기득권의 시각이 느껴진다. 

어윈이 그의 테크닉을 신념, 역사 서술의 방향, 또는 하나의 이론이 아닌 ‘테크닉’이라 명명하는 순간 그가 역사를 그저 논쟁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에서 데이킨도 지적하지 않나.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러시는 거예요?”

초반에는 어윈의 테크닉에 거부감을 가지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업에 참여하고, 시험 답변을 작성한다. 유대인이고 다른 학생들보다 어린 포스너와 무슬림인 악타 외의 학생들도 따지고 보면 완벽한 기득권은 아니다. 기득권에 목마른 미성숙한 아이들이 어윈의 옥스퍼드라는 이름표와 그의 테크닉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체화한 것은 아닐까.

사진 설명 시작. 학생들과 선생님이 교실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다. 맨 뒷 줄에는 왼쪽부터 스크립스, 크라우더, 데이킨, 팀스, 락우드가 교복을 입고 서있다. 중간 의자에는 왼쪽부터 단발에 카키색 블라우스,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린톳 선생님, 회색 정장을 입고 팔장을 낀 교장선생님, 하늘색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안경을 쓴 어윈 선생님이 앉아있다. 맨 아랫 줄에는 왼쪽부터 포스너, 럿지, 악타가 교복을 입고 아빠다리를 한 채 앉아있다. 그 앞에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리고 사진을 찍는 헥터의 뒷모습이 보인다. 학생들의 뒷배경으로는 칠판에 수많은 사진이 붙어있고 그 옆으로는 영국 지도와 국기가 걸려 있다. 칠판 위 빈 공간에 극 대사가 써있다.
▲「히스토리 보이즈」(2022) 스틸컷. 헥터가 옥스브리지 특별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3. 어윈의 어떤 점이 학생들을 그에게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어윈은 학생들에게 시험 답변이 너무 평범하다며, 옥스브리지에 입학하기 위해선 특별함과 독특함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학생들은 어윈이 그 특별함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라 믿고, 그의 테크닉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기득권에 목말랐던 학생들의,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어리숙해 보이지만 딱 한발 앞선, 미묘한 우월함이 느껴지는 어윈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같은 선생님이면서도 어떤 지점에서는 분명히 학생들보다 상위에 자리하는 어윈의 위치 선정이 탁월했다.

어윈은 인정받고 싶은 학생들의 욕구를 계속 자극하기도 한다.

우월해 보였던 어윈도 결국 학력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완벽한 기득권은 아니었다는 게 또 하나의 역설이지 않을까?

4. “시험에 있어서 진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어윈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포스너의 말을 빌리자면 홀로코스트는 “단순히 사람들이 죽은 게 아니라 처리되고 있었던” 사건이고, 이것이 진실임은 변하지 않는다. 분명히 진실은 존재하고, 홀로코스트와 같이 애도해야만 하는 사건이 있는데 어윈의 주장은 이에 반하기에 와닿지는 않았다. 어윈은 “왜 그냥 홀로코스트가 전무후무한 비극이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헥터와 대비되기도 한다. 

어떤 문제에서는 정답이 중요치 않을 수 있지만, 분명히 ‘오답’은 존재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윈의 발언은 분명한 오답이었다. 

사진 설명 시작. 남색 정장에 하늘색 셔츠, 넥타이를 매고 안경을 쓴 어윈이 왼손을 든 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왼쪽으로는 교복을 입고 팔짱을 낀 채 어윈을 바라보고 있는 데이킨의 옆모습이 보인다. 어윈의 뒤로는 칠판이 있다. 수업을 진행하는 어윈의 머리 위, 칠판의 빈 공간에 극 대사가 써있다.
▲「히스토리 보이즈」(2022) 스틸컷. 수업을 진행하는 어윈(오른쪽)을 데이킨(왼쪽)이 바라보고 있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5. 어윈은 수업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다른 해석’을 주문한다. 몇몇 학생들은 자유롭게 발언하고 유대인인 포스너는 홀로코스트는 이해될 수 없는 악행이라며 분노했다. 어윈의 테크닉으로 인해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어떻게 봤나.

‘깨서는 안 될 금기를 깼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당사자성을 가진, 유대인인 포스너가 있는 공간에서 홀로코스트에 테크닉을 적용해 보라고 말한 건 극 전체를 통틀어서 어윈이 행한 가장 부적절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극을 볼수록 이 장면에서 악타에게 시선이 갔다. 악타 또한 영국 사회에서 인도인이자 무슬림이란 정체성을 지닌 소수자인데, 악타는 어윈의 질문에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고, 다른 논제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며 가장 먼저 답했다. 하지만 그 답은 포스너가 말한 바와 같이 홀로코스트를 ‘이해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으며, 용납될 수 있는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마음을 이해했을 악타만은 침묵을 지켰어야 한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악타에게만 유별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했다. 백인, 크리스천인 사람만 생각없이 말해도 되는 건 아니니까.

“히틀러는 민족 지도자였고 전통적인 독일의 외교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한 결과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다”는 데이킨의 답변에, 질문을 한 어윈이 당황스러워하며 “그건 도가 지나치며 진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에 스크립스가 “그렇지만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리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나”라며 어윈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냉소를 드러낸다. 어윈이 스스로가 만든 테크닉의 역설을, 넘어선 안 될 선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이 장면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너는 대학 면접에서도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억누르고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서 뽑혔다. 포스너는 수업에서 받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정체성을 버리고 주류에 편승할 것인지 떠보는 면접 질문에 또 한 번 상처받지 않았을까. 정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장면이다.

6. 수업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헥터의 문학 수업은 어윈의 수업과 정반대다. 다소 체계는 없지만 자유롭고, 학생들에게 문학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헥터의 수업은 내게도 큰 울림을 줬다. “독서에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나만 그렇다고 느꼈던 것을 책을 보다가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라며 “마치 책 속에서 손이 나와서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다”는 헥터의 대사는 문학이 선사하는 따뜻함을 정확히 표현해준다.

헥터는 문학이 학생들에게 단열재이자 해독제가 돼 줬으면 한다고 말한다. 헥터의 수업은 학생들이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데 분명히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학생들을 향한 “너희들은 너희보다 훨씬 더 잘 배운 애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어윈의 대사에 헥터는 “잘 배운 게 어딨습니까, 좀 다르게 배운 거지”라고 답한다. 특별함과 뛰어남을 요구받아온 아이들에게 이 순간만큼은 헥터와 문학이 위로가 됐을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헥터가 준 가르침, 상처, 그리고 그의 죽음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상흔처럼 남았을 것이다.

7. 헥터는 오토바이 뒤에 학생들을 태워 성추행해왔고, 결국 이를 알게 된 교장이 그를 해고한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헥터를 복직시키려 노력한다. 관객의 시각으로 본 헥터는 어떤 사람이었나? 왜 피해자였던 학생들이 헥터를 감쌌다고 생각하나?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킨이 “오늘은 제가 오토바이 타는 날인데요, 수요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헥터의 오토바이 뒤에 타는 일은 나름의 순서도 있는 일상이었다. 헥터는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오늘은 누가 오토바이 뒤에 탈 차례”냐고 묻고, 아이들은 각종 핑계를 대며 다음 사람에게 넘기다가도 결국 한 명은 헥터를 따라나선다. 학생들은 불편해하면서도 ‘우리가 오토바이 한번 타 주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헥터는 교묘히 가해자로 인식되는 것에서 빠져나간다. 교장이 헥터의 해고 사실을 다른 선생님들에게 알리자 헥터는 자신의 해고 사유를 “아이들도 알았냐”고 묻는다. “당연하죠, 당사자들인데”라며 분노하는 린톳처럼, 의도했든 아니든 헥터가 계속 가해자의 위치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모습에 가장 화가 났다.

학생들에게 먼 미래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함께 나누고, 똑똑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기성 교육에 저항할 수단을 가르치는 등, 헥터의 교육관은 인상 깊었고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헥터가 해고 통보를 받은 뒤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그냥 손을 올려놓은 것뿐”이라며 범죄를 부정하는 장면을 보며 그의 어떠한 부분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었다. 끝없는 자기 연민, 자신을 불쌍한 존재처럼 표현하면서 약자에 위치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돼왔기에 학생들은 본인들이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헥터에게 잠식된 것이 아닐까.

우스꽝스럽고 만만해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잃은 헥터는 해학적인 인물이지만 그로부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 같아 거부감을 느꼈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양면성을 띤다. 헥터가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모습에 감명받다가도 문득 범죄자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어윈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도 결국 데이킨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극을 보는 관객은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선’을 표방하는 인물이 없고, 관객은 누구에게도 온 마음을 다해 공감할 수 없다. 관객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인물의 양면성이야말로 이 극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설명 시작. 교복을 입은 데이킨이 책상 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고, 그 오른쪽에는 책상 뒤 의자에 앉은 스크립스가 한 손에 종이를 든 채 수업을 듣고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가방이 걸려 있다. 스크립스의 머리 위, 칠판의 빈 공간에 극 대사가 써있다.
▲「히스토리 보이즈」(2022) 스틸컷. 데이킨(왼쪽)과 스크립스(오른쪽)가 수업을 듣고 있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8.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양면성 이상으로 헥터와 어윈의 공통점이 있을까.

2막에서 교사를 그만둔 어윈을 찾아온 포스너가 “걔(데이킨) 좋아하셨죠?”라며 어윈과 데이킨의 관계를 추궁하자 어윈은 “나는 헥터와 달랐다”며 분노한다. 어윈도 이미 자신에게서 헥터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행동이 묘하게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모의 면접 후 데이킨과 어윈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어윈은 교실 문을 잠근다. 이 장면에서 어윈이 “헥터 선생님은 왜 수업 시간에 문을 잠그냐”고 묻자 학생들이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윈 스스로도 데이킨과의 관계가 당당하지 못하다고 느꼈고, 또 한편으로는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헥터처럼 문을 잠그지 않았을까. 데이킨이 자기 제자와 연애한 시인 오든을 언급하며 “오든은 선생님(어윈)이랑 더 비슷했을까요, 아니면 헥터 선생님이랑 더 비슷했을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학생들은 이미 수없이 헥터와 어윈을 비교하고 있었다.

9. 극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 인물, 린톳은 어떤 역할을 하나?

린톳은 다른 면에서 불편함을 준다. 2막 초반, 린톳은 제4의 벽을 깨면서 “지금까지 저는 제 얘기라곤 하나도 없는, 그냥 기능적인 인물이었죠. 제 역할은 참을성 있게 남자들의 괴팍한 성질과 근심, 걱정들을 들어주는 거니까요.”라고 관객에게 말을 건다. 린톳의 존재, 그리고 대사는 성비에 대한 인식 없이 극을 감상하던 관객이 불균형을 인지하게 만든다.

린톳은 성비 불균형에 불만을 가진 관객에게도 울림을 준다. 이 극을 사랑하지만 항상 ‘여성의 자리는 없다’는 것을 느껴왔는데, 린톳이 학생들에게 여성이 소외돼 온 역사를 가르치고 분노하는 모습이 ‘역사에도, 그리고 지금 이 극에도 여성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와 위로가 됐다.

사진 설명 시작. 교복을 입고 다리를 꼰 채 오른손에는 연필을, 왼손에는 공책을 든 크라우더가 책상 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포스너와 악타가 책상 뒤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포스너는 공책에 연필로 필기를 하고 있고, 악타는 책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포스너의 머리 위 빈 공간에 극 대사가 써있다.
▲「히스토리 보이즈」(2022) 스틸컷. (왼쪽부터) 크라우더, 포스너, 악타가 수업을 듣고 있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

10. 극은 학생들의 성장을 들려주는 린톳의 대사와 함께 끝을 향해간다. “유일하게 헥터의 가르침을 심장에 새기고 살아가는 아이”라고 소개된 포스너는 어떤 의미의 인물인가?

불쾌하지 않게, 그리고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잘 표현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너와 나는 인종도 성별도 다르지만, 포스너가 받은 상처에 같이 분노하고, 그가 치유받길 응원했다. 포스너는 이 불편한 극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오롯이 품어갈 수 있는 존재다.

“넘겨줘라. 때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거지”란 헥터의 마지막 대사에서 명확한 주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문학일 수도, 인생의 경험일 수도, 또는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포스너는 같은 반 학생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서 헥터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이 극도 결국 문학이다. 우리는 극을 본 뒤 포스너가 남긴 것을 넘겨받고 나오는 게 아닐까.

11. 「히스토리 보이즈」도 결국 하나의 문학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극에서도 손이 나와 관객의 손을 잡아주고, 관객에게 무언가를 넘겨줄 것이다. 각자 무엇을 넘겨받았는가.

「히스토리 보이즈」는 삶이란 역사에서 종종 목격할 수밖에 없는 불온한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보여줘서 좋았다. 때론 불편하고 때론 절절하게 다가오는, 날카로운 단면으로 이루어진 극이었다. 이 극과 인물들을 함부로 사랑하지 말라는 듯 모든 장면에 불편한 균열이 나 있는데,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직 이 극에게서 뭔가를 넘겨받았다 확언하기보다 여운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훗날 뭘 넘겨받았는지 불현듯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넘겨줘야 할, “때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을 때”이지 않을까.

‘넘겨줘라’라는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크게 와닿진 않았다. 더욱이 헥터가 자기 연민에 빠진 인물이라고 생각했기에 ‘헥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넘겨줄 수 있는 존재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 극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넘겨준다고 생각했을 때, 불쾌함과 역설로 ‘포장’된 다양한 인물의 삶을 넘겨받았다.

헥터는 문학을 예고편에 비유하고, “문학은 우리가 언젠간 겪게 될 일을 말하고 있기에 지금 배워둔다면 실제로 그 일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것”이라 설명한다. 「히스토리 보이즈」라는 문학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이 예고편처럼 나열된 작품이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곱씹어보고 온 마음으로 느껴보면서 앞으로의 삶에 있을 순간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진정으로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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