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펜은 소모품이다. 선발이 돼 한 경기를 이끌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기엔 아까운 선수들이 불펜이 된다. 딱 중간 정도의 그저 그런 위치다. 승패의 논리로 볼 때, 불펜은 실패자다. 이기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사회에서 우리도 불펜이 될 때가 있다. 불펜이 된 우리는 얼마나 의미 있는 존재일까. 이기지 못하면 어떤 존재로 남을까. 『불펜의 시간』은 이겨야 한다는 논리로 빽빽이 채워진 사회 속, 승부에 갇힌 사람들을 담담히 소개한다.
이겨야만 좋아할 수 있다. 준삼은 야구에서 이기지 못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접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야구를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준삼의 마음은 야구부에서 ‘늘 이기는 존재’인 혁오를 마주하며 차츰 아스러졌다. 혁오를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한 준삼에게는 질문이 싹튼다. ‘나는 왜 평범할까? 나는 얼마나 평범할까? 평범하다는 건 뭘까?’ 이길 수 없음을 깨닫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붙잡고 있어도 단 한 번의 승리조차 거둘 수 없음을 자각할 때는 모멸스럽기도 하다. 준삼은 이길 수 없어서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한다. 그리고 패배자로서, TV 속의 야구선수 혁오를 볼 때마다 질투와 경외를 느낀다. 준삼은 여전히 야구가 그립다.
혁오라고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아니다. 혁오는 고교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상대 타자 진호에게 무심코 승자의 우월감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낸다. 진호가 그날 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혁오는 진호가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모습을 기억하고, 그것을 즐긴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묻는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 얼마나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할까요?” 혁오의 질문이 울림을 준다면, 그가 승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혁오의 의문은 진호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진호가 죽지 않았다면, 혁오는 ‘이겨야 한다’는 문구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가 이긴 걸까. 패배한 준삼도, 승리한 혁오도 행복하지 않다. 승부는 무한하고, 경쟁 중에 입은 상처는 누구나 하나쯤 품고 살아가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것이 승부가 되는 사회 속에서 불펜이 버틸 수 있는 임계치는 어디일까. 이길 수 없는 불펜일지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불펜의 시간 속에는 수없는 질문만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