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빈(사회 19)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제자인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음대 C교수가 파면됐다. 1년 9개월 만에 내려진 징계다. 서울대학교 교원 징계위원회(교원 징계위)는 원칙적인 징계 의결 기한 30일이 훈시 규정에 불과하다며 징계를 미뤄왔다. 피해자가 파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징계가 이뤄지고부터도 4개월이 더 지나서다. 피해자가 꾸준히 경과를 문의해왔음에도, 교원 징계위는 ‘피해자의 요청이 없었다’며 파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교원 징계위와 학교는 사건을 처리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다. 1년 9개월의 늑장 징계, 교수와 소수 전문가만이 참여하는 폐쇄적인 교원 징계위 운영이 반복됐고,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는 징계 결과조차 알 수 없는 외부자로 남겨졌다. 파면이라는 결론에 따라야 할 책임의 통감, 사과, 대책 마련 역시조금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에서 교수는 두드러지는 직함이다. 교수는 학교 각급 기구에서 요직을 맡고, 학교 안팎에서 많은 지면과 발언권을 가진다. 그런 교수를 앞에 두고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을 학생은 없다. 존경의 의미라면 좋겠지만, 긴장과 불안으로 ‘감히’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교수님의 평가가 학점에, 졸업에, 장학금에, 진로에, 생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는 이처럼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학업과 진로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는 교수가 가해자일 때, 피해자인 학생은 쉽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며 동료조차 피해자를 선뜻 돕지 못한다.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는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문화와 구조의 문제다. 지난 8월 공개된 교육부의 서울대학교 감사 결과에서는 2018년 1학기부터 2021년 1학기까지 대학원생에게 조교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도 인건비를 장학금으로 대체 지급하거나(138명) 지급하지 않은 사실(25명)이 포착됐고, 교원 징계위가 관련 법규나 서울대 교원 징계 규정이 정하는 기준에 미달하는 양정을 요구
한 사실 또한 아홉 건가량 적발됐다.
장기간에 걸쳐 발생해온 다수의 인권 침해와 부실한 교원 징계위 운영은 불균형한 교수-학생 관계와 그 속에서 묵인돼온 피해 및 교수 사회의 ‘제 식구 감싸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더이상 ‘알파벳 교수’가 나오지 않으려면, 가해 교수에 대한 신속하고 엄중한 징계를 어렵게 얻어지는 결론이 아닌 당연한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별 사건의 ‘처리’가 아닌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염두에 둔 교원 징계위 운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생 사회가 제안해온 징계 규정 개선안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 교원 징계위 학생 참여 보장이다. 현행 규정은 징계위원을 교수나 법학, 교육행정 전문가 중에서 선정하도록 규정한다. 교수-학생 간의 위계 관계를 고려한 섬세한 심의를 위해서는 폐쇄적인 교수 사회 밖의 시선이 필요하다. 엄연한 대학의 구성원이자, 교수-학생 간 사건의 간접적인 당사자인 학생은 적합하며 필수적인 위원이다. 학생 대표자, 적어도 학생 추천 전문위원이 징계위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둘,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이다. 현행 규정 제10조 제5항은 피해자가 교원 징계위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경우, 그 요청에 대한 판단 결과를 교원 징계위의 의결을 거쳐 고지하도록 규정한다.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에 대한 교원 징계위 정보 제공은 ‘요청’이 있을 때마다 ‘심사’해 가부를 결정할 사항이 아닌, 선제적으로 보장해야 할 권리다. 피해자에게 교원 징계위 개최 사실과 절차, 경과 등을 고지하는 것을 의무로 두는 규정이 필요하다.
셋, 피해자에 대한 비밀유지조항 폐지다. 현행 규정 제10조 제6항은 피해자가 요청을 통해 교원 징계위와 관련된 정보를 고지받더라도 그 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 같은 조항은 피해자가 교원 징계위로부터 고지받은 내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 데 제약을 가한다. 비밀유지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징계위원들이 지켜야 할 의무이지, 피해자가 사건을 알리고 공동체적 논의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제약하는 도구여서는 안 된다.
더이상 알파벳 교수가 나오지 않으려면, 가해 교수 개인에 대한 징계 그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에 대한 징계를 공동체적 해결의 한 단계로 여기며 피해자, 학생과 함께 논의해가야 한다. 개별 사건의 ‘처리’가 아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교원 징계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