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린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공식 슬로건이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시청광장은 무지갯빛으로 가득했다. 즐거운 축제 음악 사이로 싸늘한 혐오의 소리가 새 나오고 차가운 비가 내렸지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따뜻한 웃음이 가득했다. 비와 비난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많은 이들에게 해방과 연대의 공간이 돼 주었다.
뜨거웠던 그 날의 광장을 준비한 사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활동가 홀릭(양선우)을 만났다. 그를 만나 3년 만에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코로나 시기의 퀴어들에 대해, 15년째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물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홀릭(양선우) 활동가
코로나19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거리두기를 하다 3년 만에 열린 대면 축제다. 퀴어문화축제를 대면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광장에서 대규모 퀴어문화축제를 했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온라인 위주로 축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는 코로나 방역 규제가 풀리면서 모두가 모일 수 있었다. 퀴어문화축제를 대면으로 한다는 것은 퀴어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행사는 단순히 즐기는 축제로서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해방과 연대의 역사를 가진 운동으로서의 의미도 가지기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의 기원은 스톤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있다. 스톤월 항쟁은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1960년대, 미국의 성소수자들이 자주 방문하던 주점인 스톤월 인에서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을 별 이유 없이 탄압한 경찰들에게 저항한 사건이다. 이때 성소수자들은 거리로 나와 “나는 게이다, 나는 트렌스젠더다”라고 외쳤다.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 항쟁을 시작으로 성소수자 가시화 운동, 인권 운동이 활성화됐고 퀴어퍼레이드를 비롯한 축제가 시작됐다.
스톤월 항쟁의 투지를 이어받은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가 당당하게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사다. 성소수자는 다른 소수자와 달리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 본인이 직접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그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퀴어문화축제는 스스로를 맘껏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대면으로 진행돼야만 한다. 일부 정치권이나 종교계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희끼리 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축제를 위한 시청광장 이용과 관련해 서울시와의 갈등이 있던 것으로 안다. 이러한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축제를 준비할 때마다 축제 장소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는다. 퍼레이드 개최를 위해 시청광장을 사용하겠다고 4월에 신고했는데, 서울시가 수리 통보 규정(48시간 이내 신고 수리 여부 고지)을 위반하고 제때 신고 수리 여부를 고지하지 않았다. 광장 사용을 허락했을 때 발생할 논란을 우려해 통보를 미룬 것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차별적 행정에 대응해 5월부터 1인 시위를 시작한 결과, 6월에 열린 광장운영시민위원회 심의를 통해 신체 과다노출 금지 등의 조건을 달고 광장을 단 하루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20년에는 사용 신고가 즉시 수리됐고 2019년에는 서울시인권위원회가 해당 행사 개최 여부를 인권위원회 내부적으로만 논의하는 것은 차별 행정이라고 판단한 바가 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인권적 행정이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갈등이 생길 때마다 공개적으로 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며 해결하려 하고 있다. 우리 축제는 많은 이들의 후원과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차별적 행정 조치와 관련된 보도 내용을 공유하고, 1인 시위에 함께해주실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긴 무지개 깃발로 채워진 시청 광장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올해 축제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이었나?
축제에 대한 기대감, 연대에 대한 갈급함이다. 정말 많은 분이 오셨다. 13만 5천 명 정도가 왔더라. 그래서 안전에 특히 더 주의를 기울였다. 물리적 충돌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 혐오 발언으로 인한 심리적 타격 등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고 경찰과도 조율했다.
그런데 올해의 가장 큰 변수는 비였다. 비가 정말 많이 왔다. 감전 위험으로 인해 무대 행사도 끝까지 할 수 없었고 퍼레이드 차들에 전자기기가 많이 달려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도 사고는 없었지만, 참가자들이 비를 너무 많이 맞았다. 비로 인해 행사를 끝까지 즐기지 못했던 점도 마음에 쓰인다. 그리고 혐오 세력도 굉장히 조직화되고 커져서 유난히 힘들었다. 광장에서 낼 수 있는 소음의 수치 기준이 있는데, 혐오 세력의 소리가 기준을 한참 넘겨서 경찰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음에도 그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변수들과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많은 이들이 굉장히 애써서 행사를 준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원회)는 벌써 20년 정도 된 조직이다. 이사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내가 이사장과 운영위원장을 함께 맡고 있다. 축제가 겉으로 보기엔 거대하지만, 조직위원회는 기획단 약 50명에 자원활동가 약 40명을 더해 약 90명뿐이다. 나도 상주 활동가는 아닌데, 조직위원회에 상주 활동가는 2명뿐이고 다른 활동가들은 모두 본업을 가진 학생, 직장인이다. 그저 축제에 본인이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참여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획단의 노고를 잘 몰라주는 것 같아 기획단들이 조금 상처받기도 했다. 그런 상처들을 잘 보듬으면서 원한다면 누구든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축제 마무리 작업으로 평가회를 진행하면서 후원 행사를 기획 중이다. 축제에서 사용했던 기기들이 비로 인해 많이 망가져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조직이 대기업의 후원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조직이 아니라서 후원 행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는 10월부터 내년 축제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는 1년 내내 축제 준비를 한다.
더불어 조직위원회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보통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은 지원 서류 요건을 충족하면 허가가 된다. 하지만 우리 조직위원회는 2019년 서울시에 신청 후 서류 완비 공지를 받았으나 2021년에 갑자기 불허가 처분을 받았다. 이 통보에 대해 조직위원회가 행정소송을 한 결과 ‘서울시는 조직위원회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 불허 통보를 취소하고 다시 신청을 받으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허가를 받을 때까지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2022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공식 슬로건,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축제를 준비하고 활동가들을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나는 축제 조직위원장이기 이전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근무하는 성소수자 활동가다. 이 일은 세상을 크게 바꾸고 싶단 거창한 포부를 안고 시작했다기보다는, 퀴어인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앞이 안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대에 이 일을 시작해 현재 40대 후반이 됐는데도 계속 혐오만 보인다. 내 삶이, 이 세상이 나아지긴 했나 싶어 착잡할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내가 속한 단체에서 ‘퀴어한 희망의 페차쿠차’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14명의 발표자에게 성소수자들에게 힘이 될만한 희망찬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방청객들도 많이 참여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는 하구나, 미래가 있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희망을 보려고 노력한다.
축제를 준비하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축제를 준비할 때마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평가 회의를 할 때는 “내년에는 더 잘해야지” 하면서 또 다음 축제를 잘 준비하리라고 다짐하게 된다.
다음을 다지게 되는 힘은 행사 참여자들의 웃는 모습이다. 그게 힘이 된다고 나도, 기획단들도 늘 얘기한다. 축제를 통해서 사회를 단박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나 같은 사람이 많구나’라는 깨달음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활동가로서 원동력을 얻는다.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런 공간이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19 시기 동안 퀴어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나?
우선 퀴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많이 사라졌다. 가령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가 안전하게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까? 코로나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 행사들을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 들어왔다고 느낀 개인은 몇이나 됐을까? 코로나로 인해서 성소수자들은 나를 드러내고,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잃었다. 또 고립된 시기 동안 많은 성소수자들의 죽음이 있기도 했다. 그 죽음의 영향을 받아 더 고립감을 느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온라인상에서 퀴어 집단을 향한 혐오가 심해지기도 했다. 코로나를 3년 동안 겪으면서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많이 걱정됐다. 코로나로 인한 고립이 안전한 공동체의 부재, 커밍아웃의 어려움 등에 더해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중국인, 대구 시민, 게이 등 코로나에 걸린 특정 집단을 혐오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코로나가 혐오의 이유라면 모두가 혐오의 대상일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누구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퍼진 것 같다.
차별금지법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왜 계속 미뤄지고 있으며, 이 법은 왜 중요한가?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굉장히 길다. 1997년에 처음으로 논의됐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 시위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위가 이어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생겼고, 이제는 여러 인권단체, 시민단체들이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 않고 있다. 이 법과 관련한 오해와 왜곡된 사실들이 많이 퍼져 있어서인 것 같다. 많은 반대 세력이 주장하는 것이 형사 처벌 관련 내용인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일반법이므로 형사 처벌에 대한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법의 적용 범위가 고용, 용역과 재화, 교육, 행정서비스 이렇게 네 영역이다. 현재는 공공기관, 기업 등이 성소수자에게 행사한 폭력과 혐오를 신고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서 부당한 차별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마련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왜곡된 정보가 퍼지고, 정치권에서 계속 국민의 합의를 언급하면서 계류하는 것이 답답하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8.5%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인식 중이다. 국민의 합의는 이뤄졌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만들자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최근 퀴어 인권 활동의 특징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한 문제에 집중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의제를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게 특징인 것 같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한다고 해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의제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 인권단체들과 함께 장애인 인권, 여성 인권 등에 대해서도 다룬다. 개인의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교차지점을 살피며 활동들이 진행된다. 이렇게 다양한 의제를 함께 다루면서 운동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단 하나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참가자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마지막으로, 대학 공동체와 청년 퀴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성세대로서 청년 퀴어들에게 미안함이 크다. 그들의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만들어주지 못했고 기존에 있었던 안전망이나 커뮤니티조차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들은 취업도 어렵고, 주거도 불안정하고 힘들지 않나. 이런 상황에선 꿈을 꾸기조차 어렵고. 이렇게 확실한 것 없이 불안정한 게 지금의 청년 세대인데, 거기다 퀴어라는 이유로 혐오의 시선을 받으면 더 힘들 것 같다. 그들이 마냥 좋아하는 일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차별을 받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겠지만, 청년 퀴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돕고 싶다. 대학 공동체가 점점 더 보수화돼가는 것 같다. 학생들은 취업, 주거 문제 등 현실적 상황이 어렵다 보니 취업을 위한 스펙을 가장 중요히 여기게 되고, 대학의 총여학생회같은 것들도 사라지면서 학교에서 성소수자나 페미니즘 의제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렇기에 청년들이 다른 가치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무척 고민하고 있다. 대학 공동체가 보수화됐더라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축제라는 공간도 그들이 마음껏 고민을 펼치고 행동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축제가 아니라도 언제든지 함께할 수 있으니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