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을 뉘우치는 일

  커버 팀에 합류한 건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커버 기사를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수십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청년 정치’ 특집 기사를 쓰던 그때로,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실패의 기억으로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속죄의 마음으로 펜을 들고 싶었다.

  이번 커버는 6개월 전의 청년 정치 특집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당시에도 1번 기사를 평범한 20대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 인터뷰 기사로 기획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은 ‘청년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할 청년들을 모으면서, 별 고민 없이 인터뷰 질문을 써내려갔던 듯하다. ‘정치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청년의 정치 대표성이 얼마나 된다 생각하는지’, ‘청년 정치의 장애물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당연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청년들의 답은 숨막혔다. ‘질문이 너무 어렵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그리 말했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에 청년의 자리가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은 취재한 청년 정치인들과도, 열정적으로 기획회의에서 피드백을 주던 저널 사람들과도 달랐다. 두려워졌다. ‘청년 정치’를 물으며 당연히 대답이 돌아올거라 기대한 것 자체가, 학내외 정치 자본과 가까운 서울대생이기에 가능한 특권인 것마냥 느껴졌다. 결국 인터뷰 기사는 엎어졌다. 명백한 오만이자 실패였다. 내가 하는 ‘당연한’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별나라 이야기이며 사치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청년을 말하고자 했지만 정작 다수 청년에게는 가닿지 못했다. 평범한 청년의 현실과 동떨어진 기사를 양산해내는 듯한 자괴감만이 온몸을 감쌌다.

  실패의 기억은 자연스레 이번 ‘이대남’ 커버에서 오버랩됐다. 마찬가지로 1번 기사를 ‘이대남’ 프레이밍에 대한 20대 청년 본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기사로 기획했다. 주위에 인터뷰를 해줄 친구를 수소문했을 때, 친구는 나에게 물었다. ‘이대남’이 뭐냐고. 친구에게 ‘이대남’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어떤 이는 6개월 전의 누군가와 똑같은 말을 했다. ‘질문이 너무 어렵다’고.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좌절이 아닌 확신이었다.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옳다는 확신. 정치권과 언론이 청년에게 부여한 ‘이대남’이라는 이름은, 결코 우리가 마주한 인터뷰이와 청년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내 인터뷰 요청에 우려의 목소리를 건넨 청년, ‘이대남’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청년, 취업과 집값을 걱정하는 청년, 소멸되는 지방대를 다니는 청년, 어디선가 비정형 노동을 하고 있는 청년. 이들에게 ‘이대남’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대남’이란 프레임에 담기기에 이들은 과분하다.

  내 기사가 누굴 향한 것인지 명확해졌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현실을 살아가는 ‘진짜’ 청년을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정치권이 불러주지 않는, 이름을 잃은, 과소대표되는 청년들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내가 청년 정치 특집 때 놓친 이들을 위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내 오만과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방식이었다. 최고의 기사를 써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아직도 모르는 청년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전보다 조금은 깨끗해지지 않았을까. 한 발자국 정도는 우물을 벗어나지 않았을까.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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