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 쓰기, 고치기

치유하는 글쓰기의 방법과 가능성

  OECD 국가 중 우울증, 자살률 1위.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외로움, 불안함, 우울감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 마음의 상처를 쌓아간다. 마음의 상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을 통해서만 드러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사느라 바빠서 속 시원히 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쉽지 않다. 비정상이란 낙인은 두렵고, 심리치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혼자만의 공간에 글로 쓴다. 글쓰기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에 충분할까. ‘치유하는 글쓰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봤다.

혼자만의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

  K씨는 22세부터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우울감이었다. 모친 의사만 이후 대인관계를 피하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자살 생각이 잦아졌다. K 씨는 SNS를 모두 그만뒀다. 그는 “SNS에 글을 쓰면 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날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것 같았다”며 SNS를 그만둔 이유를 설명했다. SNS를 그만둔 K 씨는 블로그와 일기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읽어주는 사람도, 댓글을 써주는 친구도 없었지만 K씨는 그 덕분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다양한 글쓰기 유형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블로그, 시, 필사, 다이어리 꾸미기 ⓒ 네이버, 문화재청, 순천시, 라 자르디니에

다양한 글쓰기 유형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블로그, 시, 필사, 다이어리 꾸미기ⓒ 네이버, 문화재청, 순천시, 라 자르디니에

  SNS를 떠나 블로그와 일기장에 사적인 글을 쓰게 된 것은 K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21년 전국 만 25세 이하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Z세대 주요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렌드’에 따르면 응답자의 31.2%가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글을 작성한다고 답했다.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작성한다고 답한 비율(24.4%)보다 높은 수치다. 네이버의 ‘2021 블로그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에 작성된 블로그 게시글은 약 3억 개로, 이는 전년보다 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블로그의 특징은 높은 자유도다. 이용자는 익명성에 기반해 자신의 선호에 따라 블로그의 디자인부터 글의 공개범위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개방형 SNS는 자유도가 낮아 솔직한 글을 쓰기 어렵다. 온길 심리상담센터 박현주 상담사는 “짧은 글과 사진 중심의 개방형 SNS는 구조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선안남심리상담연구소 선안남 소장은 “블로그는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표현과 사생활 보호를 동시에 충족하고픈 젊은 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분석했다.

  다이어리 꾸미기(다꾸), 필사 등 아날로그적 글쓰기 활동도 유행이다. 다꾸는 볼펜, 스티커, 메모지 등을 이용해 다이어리를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게 꾸미는 활동을 말한다. 필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나 문장을 따라 적는 활동이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문구류를 판매하는 브랜드 ‘라 자르디니에’의 일상정원사 대 표는 “다꾸와 필사는 타인과의 비교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아 성찰과 스트레스 해소의 기회를 준다”고 설명했다. 아날 로그 글쓰기 활동 역시 심리적 위안을 준 다는 측면에서 유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이어리, 필사책 등의 문구류 판 매량은 지난 2년간 60% 이상 증가했다.

  전문 상담사들은 다꾸와 필사를 심리 치료를 보조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박현주 상담사는 “다꾸는 그것을 하는 순간의 편안한 심리를 기록으로 남겨줄 뿐만 아니라 다이어리를 통해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내면화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치료와 다꾸에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 박 상담사의 해석이다. 두 활동은 긍정적인 정서를 강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헬로스마일 심리상담센터 조원진 대표는 “고립감과 우울감이 클 때 다꾸와 필사를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창의성이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은 건강한 대인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선안남 소장은 “다른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쓰면 그 사람과의 관계 덕분에 얻은 행복을 인지하고, 더 많은 관계를 맺기 위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폐암 4기 판정 후 자서전 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는 김배근 씨는 “평소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아내에게 말로는 하지 못한 예쁜 표현들을 자서전에 쓰고 있다”며 “자서전을 쓰면서 아내와 겪은 소중한 추억을 되돌아보고, 조금씩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직접 표현하려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모습. 60대 노인이 방 안에서 혼자 원고지에 시를 쓰고 있다. ⓒ영화 《시》 공식 스틸컷

오롯이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모습 ⓒ영화 《시》 공식 스틸컷

글쓰기와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사적이고 유연한 형태의 글쓰기가 유행하는 것이 정신건강 치유에 대한 수요와 관련 있다고 말한다. 성신여대 심리상담소 김은아 심리치료사는 최근 정신건강 치유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심리적 불편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지만 비대면, 개인주의 사회가 도래하며 대화 대신 혼자 할 수 있는 글쓰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 치유에 대한 수요가 커진 원인은 악화된 정신건강지표에서 찾을 수 있다. 2021년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 생각 비율은 지난 2년간 40%p 증가했다. 정신장애 유병률과 사회적 고립도 역시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신건강지표가 사상 최악을 기록 중인 것에 비해 전문적 심리치료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장애 진단자 중 7.4%만 심리치료를 받았다. 신윤정 교수(교육학과)는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심리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낳는다”며 심리치료 경험 비율이 저조한 이유를 설명했다.

치유하는 글쓰기의 방법

  치유를 위한 글쓰기가 효과적이려면 자율성과 흥미라는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선안남 소장은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 받지 않고 많이, 다양하게 쓸수록 자기감정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대상과 자신의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이해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K씨는 우울증 진단 후 심리치료사의 지도를 받아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쓴 경험을 고백하며“내가 평소에 관심 없던 일을 지켜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내게 부족한 게 뭔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조금씩 알아간 것 같다”며 말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글쓰기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K씨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를 떠올리며 “쓸 말이 없으면 그냥 떠오르는 단어 하나라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은아 상담가는 “대화나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내담자들에게 일기 쓰기를 추천한다”며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선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김 상담가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글을 쓰면 편도체가 이완되고, 이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주면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돼 우울감이 해소된다”고 설명했다.

  글을 쓰며 흥미를 느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조원진 대표는 “개인의 성향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글쓰기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현주 상담가는 “일기, 필사 등 다양한 글쓰기 유형 중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좋다”며 글쓰기를 재밌고 유익한 경험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과 중년의 여성이 함께 글을 쓰고 있는 모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공식 스틸컷

다른 이와 함께 글을 쓰는 모습. 글쓰기는 소통과 공유를 통해 완성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공식 스틸컷

‘나홀로 글쓰기’를 넘어

  치유하는 글쓰기의 효용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소통이 없는 글쓰기는 독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글은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원진 대표는 “글쓰기와 같은 일방향적 활동은 감정의 반전을 일으키기 어렵다”며 “기존의 감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정신장애의 징후나 증상을 모두 ‘나다운 것’으로 합리화해 정신건강이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며 글쓰기에도 적절한 소통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글쓰기를 위해선 자신의 글을 타인과 공유할 것을 권유한다. 타인과 공유하는 게 어렵다면 퇴고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추천한다. 박현주 상담사는 “과거에 쓴 글을 되돌아보면 객관적인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다”며 혼자 글쓰기 활동을 한다면 이전에 쓴 글을 여러 번 읽고,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씨는 “우울증이 심하던 때에 쓴 글을 증세가 많이 호전됐을 때 바라보니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며 “두 시기의 감정을 비교하며 내가 왜 우울했는지, 왜 행복해졌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효과를 기대하며 글을 쓸 땐 ‘정신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 B씨는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모르는 사람의 칭찬 댓글을 받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내게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때 공황장애 치료를 미뤘던 이유를 밝혔다. 신윤정 교수는 “정신장애는 완치가 어려우며, 재발 가능성도 매우 높다”며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더라도 정신장애가 의심된다면 꼭 전문가의 진단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시작. 심리치료사로 보이는 남성을 사이에 두고 두 남성이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심리치료를 위해 대화중인 사람들 ⓒ영화 《마스터》 캡처

  한편 글쓰기는 전문적 심리치료를 결심하게 되는 발판이기도 하다. 조원진 대표는 “대부분은 자신이 정신장애 증상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다”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함으로써 정신장애의 징후와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는 B씨는“언젠가부터 호흡곤란이 생겨 늘 불안했다”며 “매일 일기를 쓰며 호흡곤란이 생기는 상황을 기록하면서 심리적 문제임을 깨닫고 정신의학과를 방문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글쓰기의 잠재력이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K씨는 “블로그에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적었고,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공감 능력을 기르고 관계 맺기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윤정 교수는 “심리치료는 건강한 대인관계를 목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용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 표현된 마음은 타인과 진심 어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마음의 문을 열기 힘이 들 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마주하고 타인과 마음을 나누며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위험한 연결, 프로아나 커뮤니티

다음 기사

10월 5일까지 제28대 총장선출 학생 정책평가단 등록 마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