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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호 관악학생생활관 926동 위생 담당

최완호 씨는 지난 20여년 간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로 일해왔다. 사생들을 친자식처럼 여긴다는 최 씨는 사생들이 기숙사를 집처럼 느낄 수 있길 바라며 관악사를 세심히 가꾸고 있다. <영동 가는 길>은 최완호 씨가 고향집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와 수필이다.

영동 가는 길기차가 힘차게 출발합니다.하늘에는 둥그런 달도 떠 있고 마중 나온 달님은 나를 따라 시골로 달려 나오고,선로 옆 환송 나온 나무들은 손을 호호 불면서크고 작은 손들을 흔들어댑니다.마음은 벌써 고향역에 다다랐는데힘에 겨운 기차는 괙괙 소리를 질러대며언덕길을 더디게 올라가요. 달님도 구름 뒤에 숨었다 얼굴을 내밀며 우리를 응원하네요.마을 어귀 당수나무 주변에는 어느새 새하얀 이불을 덮고 있고동네 개구쟁이들 놀이터엔 내 키보다 큰 눈사람이 짓궃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반깁니다.

  관악사로 첫 출근을 한 지도 엊그제만 같은데, 강산이 두 번씩이나 변하고 새까맣던 내 머리는 희끗희끗 뿌연 안개꽃이 피어있는, 늦가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중년의 아낙네가 돼버렸네요. 아직 한창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 셋을 집에 두고, 일터로 간 워킹맘으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은 나는 화살같이 흘러 어느새 저도 6학년 졸업반이 됐습니다.

  내 인생의 마라톤은 반환점을 지나 골인 지점을 달리는 여정을 남겨두고 있으나, 그간 달려온 레이스는 결코 순탄한 코스만은 아니었지만 남아있는 구간도 묵묵히 달려나가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후반의 레이스는 전반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며 기록보다는 그간 간과하고 살아왔던 소중한 일상들을 챙기고 만끽하며, 도중에 갈증이 날 때면 중간 중간 목도 축이고 도롯가에 피어난 예쁜 꽃들을 보며 에너지도 충전하고, 연도에 들어서서 박수를 보내며 나를 응원하는 분들께는 손을 흔들어 고마움의 표시도 하며 좀 더 주변을 돌아보며 뛰어가리라 다짐을 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제 주변의 모든 분들이 나를 배려해주고, 격려해줬고, 집에 남겨두고 온 제 아이들을 자식 같이 먹여주시고, 놀아준 고마운 이웃에 사는 언니들, 힘든 고비마다 나를 위로해주시고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잡아준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도 가질 수 있었으며, 새벽에 제일 먼저 깨끗이 청소한 사무실과 기숙사에서 즐겁게 근무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생들을 보면 뚜벅뚜벅 한 길을 걸어왔던 제 발걸음이 결코 부끄럽거나 하찮은 행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출근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운 일과가 됐습니다.

  얼마 전 저의 첫 번째 여식은 그간 같이 동고동락하던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 자기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한 젊은 청년과 만나 서울 교외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여 신혼살림을 차려 분가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독립심이 강하고, 어릴 적부터 책임감과 자기주장이 강해 어린 두 남매를 엄마처럼 돌봐주던 의젓한 아이였으며, 때로는 친구같이 엄마의 말동무도 해 주고 위로하고 사랑하며 지냈고, 어떤 때는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도 해대지만 제가 너무 의지하고 기댔던 사랑하는 맏딸이라서 그런지, 지금 그 아이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건, 그리운 마음도 있겠지만 내 품을 떠나 새 출발을 하는 어린 새끼에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어미의 조바심이 커서 그런 것일까요. 특히 큰 아이에게는 보통의 여느 집 아이들이 받고 자란 포근한 부모의 사랑을 마음껏 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함께, 넉넉지 못한 살림에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것들을 다 채워주지 못한 마음에, 가슴 한쪽에 멍울이 박혀있어 더욱더 그렇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늘은 기차를 타고 나의 어린 시절 무한한 사랑을 주시며 키워주신 고마운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출발 전부터 마음은 벌써 선로를 내달려 고향 마을 어귀에 다다라있습니다. 거기엔 나의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과 함께 모진 세월을 이겨내신 훈장처럼 굵게 패인 주름을 이마에 달고 계시지만, 어릴 적 동네 개구쟁이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어둠이 거리를 채울 때가 돼서야 싸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설 때면, 언제나 일하시던 부엌에서 나오셔서 무명손수건을 꺼내 아침녘에 나가 강가에서 멱 감고, 고무뛰기, 땅따먹기, 오징어놀이 등으로 입고 나간 옷은 얼룩으로 물들고, 꾀죄죄한 얼굴을 환한 웃음으로 깨끗이 닦아주시는 보름달보다 크고 밝으신 사랑하는 어머니이십니다.

  승강장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하향열차가 지연된다는 말은 떠나는 제 마음을 더욱더 초조하게만 만들어가네요. 드디어 기다리는 기차는 홈으로 들어서고 잠시 정차하면 서둘러 기차에 올라서 좌석을 잡고는 기차가 빨리 달리기를 재촉해봅니다. 도심을 벗어나 들판을 달리는 기차는 내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더디게 달려갑니다.

  이번 여행은 지난 수개월 동안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찾아뵙지 못한 방문이어서 그런지 제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 가방이 무릎 위에 얹혀서 깃털 같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어릴 적 소풍 가는 설레는 마음에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를 보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1박 2일의 꿈 같은 여정은 단순히 일상을 벗어나려는 여행과는 다르게, 나의 어릴 적 추억과 어머니, 그리운 형제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나의 여행이기에 내 가슴 속은 쿵쿵거리며 나를 응원합니다.

  드디어 기차는 영동에서 멈추고, 챙겨온 보따리를 들고 잰걸음으로 한달음에 고향 집 대문까지 단숨에 걸어왔으며, 어머니는 언제부터 마당에 나와계셨는지 나를 보시고는 반쯤 굽은 허리를 잠시 펴시고는 환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 나를 안아 주십니다. 추운 날씨 탓인지 귀 끝은 빨갛게 돼있었으며 마디 굵은 거친 손으로 저를 꼭 안아 주셨습니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나와서 어머니를 안고서 저의 온기로 데워드리며 서둘러 큰방으로 모셨습니다.

  영동에서의 짧은 밤과 다음날은 타임머신을 탄 듯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렸고, 어머니는 어릴 적 자주 해 주시던 구수하고 담백한 맛을 지닌 청국장을 손수 만들어 주셨고, 항상 그립던 어머니의 손맛을 가슴 깊숙이 느끼면서 우리 형제들은 오랜만에 최고의 맛난 저녁식사를 하며 옛날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예전부터 손맛 좋기로 이름난 어머니께선 딸에게 신부 수업을 하듯 김장김치를 맛있게 담아내는 노하우며, 전통 손두부를 구수하게 제조하는 법, 최씨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된장, 고추장, 간장 담그는 비법을 전수하느라, 당신께서 오랜 세월 익히고 다듬어온 손맛을 딸에게 하나라도 전수해주시려고 해서인지 새벽녘 장닭의 홰치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한참 동안, 지금 계신 이곳에서 큰 당수나무처럼 내가 찾아올 때마다 그 자리에 우뚝 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그곳에 남겨두고 한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가득 품고는 나의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행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합니다.

  내 양손에는 당신이 직접 돌보며 애지중지 기른 닭들이 낳은 싱싱한 선물이 크고 작은 모양과 색깔을 하고 하나씩 정성스럽게 신문지에 싸여 들려져 있으며, 야산에서 이른 봄에 채집한 귀한 나물이 바짝 말려져 한 두름과 함께 내려올 때보다 곱절은 많은 귀한 선물을 받아갑니다. 아마 서울에 도착해서 수일 동안은 이 소중한 계란을 깨뜨리지도, 먹어버리지도 못할지 몰라요. 여기 묻어있는 그리운 어머니의 체취가 없어져 버릴까 두려워서일 겁니다.

사진 설명 시작. 최완호 씨가 시골집에서 어머니께 받아온 계란 12알이 삶아져 접시 위에 놓여 있다. 사진 설명 끝.
▲최완호 씨가 시골집에서 어머니께 받아온 계란

  홈으로 들어서는 기차는 머리에 하얀 눈을 가득 이고 씩씩거리며 달려와 손님을 맞이합니다. 올라오는 차창 밖의 풍경은 넓은 들판의 추수가 끝나서인지 왠지 황량하고 외롭게 느껴지고,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한 무리의 철새는 쓸쓸해 보입니다.

  어느덧 햇님은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먼산에 걸터앉아 뉘고 있으며, 갈길 바쁜 시골 버스는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을 향해 달려가고, 인가가 옹기종기 장독대처럼 모인 시골 동네 굴뚝에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장 보러 간 바깥양반을 기다리는 바둑이는 대문 앞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대전역을 지나니 옆 좌석에 호두과자를 가득 포장한 청년이 앉아서인지 고소한 호도 향이 온 객실 안을 가득 채워줍니다. 햇님과 달님은 임무 교대를 했는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진 해를 위로하고. 둥그렇고 밝은 달님은 우리를 마중이나 나온 듯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선로 위를 환하게 비추며 우리를 따라 달립니다.

  나의 보금자리가 가까워올수록 어머니와 오빠, 동생과의 반가운 만남이 또 그리워지는 건 떨어져 살아가는 피붙이의 외로움 때문일까요. 이번 여행으로 일상의 피로와 오염된 정신을 말끔히 씻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를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여행으로 생각합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나는 또 영동행 열차를 예매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면서, 익숙한 승강장에 내려 나를 기다리는 새끼들이 있는 보금자리로 향합니다. 어머니의 허리가 더 굽어지기 전에, 흐릿한 한쪽 눈이 나빠져서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알아보시지 못할까 봐 좀 더 자주 찾아봬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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