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연극계에 전무후무한 위기를 가져왔다.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현장 관람이 어려워졌고, 만 건이 넘는 공연이 취소됐다. 4천억 원에 달하는 누적 매출액 피해가 연극계를 강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속에서도 무대를 계속하기 위해 연극계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연극계의 모험을 톺아봤다.
스크린과 모니터로 만나는 연극
극장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안은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다.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지 않고, 스크린과 모니터를 통해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다. 네이버TV, 연극 단체의 자체 유튜브 채널, OTT 플랫폼 등을 통한 연극 상영이 잦아졌다. 지난 11월에는 국립극단이 자체 OTT 플랫폼 ‘온라인 극장’을 출범했다. 국내 연극 단체가 자체 OTT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가 코로나19로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국내 최초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 플레이슈터의 강경호 대표는 “넷플릭스에서 옛날 영화를 보듯,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예전 연극을 편리하게 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2018년 플레이슈터를 처음 출범했다”고 이야기했다. 강 대표는 “이전에는 이러한 시장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이용자가 증가했다”며 “학교에서 단체 티켓 구매를 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전했다.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는 라이브챗과 댓글을 통해 관객과 배우 사이의 고유한 소통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강경호 대표는 “실시간 송출 중 마이크가 꺼져서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가 ‘이런 게 라이브의 묘미’라는 댓글을 달았다”며 “비대면 연극은 대면 연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시간대의 감각을 전달하고, 소통의 장을 형성한다”고 전했다. 어린이 공연처럼 관객과의 소통이 특별히 중시되는 연극에서는 댓글을 읽어주는 장면이 들어가기도 한다.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는 연극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과 연구에도 기여한다. 강경호 대표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연극이 내려간 후에도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어 공연 당시 주목받지 못한 연극이 재평가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극평론가로 활동 중인 충북대학교 조만수 교수(프랑스언어문화학과) 역시 “연극의 리뷰를 작성할 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여러 번 감상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의 데이터베이스로서의 기능을 강조했다.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형성된 연극 데이터베이스가 예술가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강경호 대표는 “연극을 기록물로 남겨 배우의 저작권과 초상권, 작가나 음악 감독, 조명 디자이너의 지적 재산권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고 수익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매개를 넘어 연극 자체까지
연극을 전달하는 방식의 혁신을 넘어 연극 자체의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연극의 영화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2020년 여름, 영국 국립극장에서 무대극으로 오를 예정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됐다. 이에 영국 국립극장은 해당 연극을 영화로 제작했다. 연극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영화적인 기법을 도입해 ‘연극의 영화화’를 목표로 했다. 영화로 제작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2021년 영국 국립극장의 연극 스트리밍 서비스 NT Live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됐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공식 스틸컷 ⓒ영국국립극장
국립극장은 영화화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실황을 촬영한 기존의 공연 영상과 달리 영상을 목적으로 제작돼 정교한 카메라 움직임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국내에 소개했다. 극은 분장실에서 배우들이 평상복을 입은 채 리허설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음악의 등장과 함께 장면이 전환되며 공간은 분장실에서 무대로 이동한다. 극은 모두 연극 세트와 무대에서 전개되며, 마지막에는 분장실로 돌아와 평상복을 입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춘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촬영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적이지만, 사다리, 조명과 같은 무대 장비의 존재는 관객에게 ‘연극을 보고 있다’는 감각을 선사한다.
무대 밖에서 연극을 전달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극작가 동인 괄호(괄호)는 희곡 메일링 서비스 ‘계간 괄호’와 오디오극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괄호는 “창단 직후 코로나를 겪으며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희곡 메일링 서비스와 오디오극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계간 괄호’는 계절마다 릴레이 희곡과 비평가의 통합 리뷰를 메일로 제공한다. 괄호는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공연을 위한 대본으로서의 희곡이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희곡을 위해 고민할 수 있었고,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상상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오디오극은 희곡을 청각화하는 프로젝트다. 괄호는 “텍스트 문자로 존재하는 희곡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오디오극으로 만들어보자는 시도 하에 ‘듣는 희곡’ 시리즈를 제작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귀를 통한 대면’이라는 아이디어로 비대면 상황에서 관객과 극작가의 만남을 추진하는 시도다. ‘듣는 희곡’은 괄호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으로 공개됐다. 배우들은 목소리로 배역을 연기하며, 영상은 배우의 대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지문을 텍스트로 담아낸다.
비대면이 대면을 대체할 수 있을까
비대면 상황에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연극인들은 대면 소통이 완전히 대체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2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열린 제10회 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은 대면 낭독공연 관람 후 온라인으로 일본에 있는 작가 및 예술가와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일연극교류협회 이시카와 쥬리 전문위원은 “온라인으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면 경비가 덜 들고 간편하지만, 그 밀도는 떨어진다”고 비대면의 한계를 지적했다.
조만수 교수는 “연극은 공연자와 관객이 물리적으로 같은 시공간에 놓여있는 것을 전제하는 예술”이라며 “이러한 동시성 속에서 관객은 배우를 배역인 동시에 배우 그 자신으로 의식하면서 연극이 픽션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 거듭난다”고 설명했다. 대면 연극의 현장성이 대체될 수 없는 이유다. 서울연극협회 박정의 협회장은 “무대 위 배우의 연기를 직접 보고 듣고 관객들의 반응을 함께 느끼는 것은 비대면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감각”이라고 이야기했다.
비대면과 대면이 함께 나아가기 위해
한편 전문가들은 비대면 연극이 대면 연극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해서 팬데믹 시기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조만수 교수는 “과학적·디지털적 요소가 비대면 공연과 결합해 새로운 소통방식을 형성한다면, 대면 연극을 보완하며 함께 발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의 협회장은 “비대면이 대면 연극의 유통을 확대하고 일반 관객이 연극을 좀 더 친숙하게 접할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대면과 비대면의 상호보완 가능성을 전망했다.
비대면 연극과 대면 연극의 장점을 융합시키기 위해선 창작자가 새로운 형식의 연극에 도전해볼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박 협회장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도 연극이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며 연극의 본질에 대한 탐색과 실험을 강조했다.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 공연 포스터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연극계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비대면 연극과 대면 연극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제10회 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 후 열린 ‘팬데믹 속의 연극’ 심포지엄에서는 ‘긴급사태 무대예술 네트워크’(네트워크)가 대안으로 소개됐다. 2020년 일본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발족된 네트워크는 공연예술 관련 제작사, 극단, 극장을 아우른다. 네트워크는 코로나19로 인한 연극계의 손해액 조사부터 공연 재개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및 연극기록물 아카이빙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해외 송출을 전제로 하는 공연 제작비의 50%까지 지원해주는 ‘J-LOD live 보조금’ 제도를 마련했고, 공연 영상물 1300편, 희곡 550편 가량을 디지털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코로나19는 연극의 위기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대면 연극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연극계가 팬데믹에 적응하며 정상화를 위해 도약하는 지금, 지난 2년간 성장한 비대면 연극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될까. 팬데믹 속에서 꽃 피운 새로운 연극 형태와 기존의 연극 형태가 만나 일으킬 시너지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