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사는 진정 소통의 문을 닫은 걸까?

의사결정체계와 학생자치의 변화 필요성

  지난해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는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919동 에어컨 공사 안내 지연, 택배취급소(택배보관소) 운영방식 문제, 919동 화재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관악사가 학생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논란을 낳았다. 세 사건의 처리 방식을 통해 관악사 소통구조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13시간, 10개월, 40분

  919동 사생 A씨는 지난해 5월, ‘내일 9시, 이틀간 방별로 에어컨 설치 공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카카오톡 공지를 받았다. 공사 시작 불과 13시간 전에 전달된 공지에 A씨는 당혹감을 호소했다. 호실별 공사일도 알지 못한 채 공사를 그저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919동 조교실은 “폭염 전 실제 시공할 수 있는 기간이 부족하여 빠듯하게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늦은 공지의 원인을 설명했다.

 

  지난해 7월에는 3월부터 문제가 제기되던 관악사 택배보관소 이용에 대한 사생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관악사 운영센터는 2005년부터 901동 지하에 공용 택배보관소를 설치해 택배 물품을 공동 보관·수령하는 서비스를 운영해왔다. 동마다 다른 택배보관소의 거리, 택배 수령 기간을 넘길 시 부과되는 연체료, 제한된 이용시간 등의 운영방식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 이에 제33대 관악학생생활관 학부생 자치회(자치회)는 지난 3월부터 12월까지 설문조사, 제안서, 간담회, 협의회 등을 통해 택배 시스템의 새로운 운영안을 논의했다. 

  택배보관소 개선이 지연되자, 일부 사생들은 택배보관소 실무진을 구성해 택배보관소와 운영센터, 행정실에 직접 불만을 제기했다. 실무진은 사용수익권 침탈을 사유로 지난해 12월경 택배보관소 사장과 행정실장에 대한 고소 절차를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지난 1월 초 자치회는 관악사와의 4차 협의회를 통해 사생 대상의 ‘택배 수령 시스템 운영안 찬반투표 및 선호도 조사’를 진행했다. 유효 투표율 51.67%로 설문의 유효성이 확보됐으며, 그 중 85%의 사생이 동별 로비 수령 방안에 찬성했다. 관악사 측은 이를 수용해 3월까지 기존 택배보관소를 폐지하고, 동별 로비 수령 방안 시행을 결정했다. 10개월의 대장정을 거쳐 택배 수령 시스템이 개선된 것이다.

  지난 1월 16일 919동 1층 방재실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에서도 관악사의 미흡한 대처가 논란이 됐다. 방재실 직원이 화재경보를 오작동으로 인식해 경보기를 끄면서 대응이 늦어졌고, 화재 발생 40분 후 사생들에게 전달된 공지문에는 발생 장소마저 잘못 기재됐다. 당시 현장에서 대피를 도운 정영훈(자유전공17) 씨는 사건 당일 ‘에브리타임’을 통해 관악사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했지만, 자치회는 3일 후에야 관악사 측에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 사생 거주 문제 해소, 보상 및 사후 대응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후 자치회는 ‘919동 화재대응 TF’를 구성했고, 관장 및 행정실과의 면담을 통해 미흡한 화재 대응에 대한 사과와 919동의 화재 청소 보완 등을 요구했다.

  13시간 전 통보된 에어컨 공사, 10개월이 걸린 택배보관소 개선, 40분 지연된 화재 공지. 지난해 관악사를 둘러싼 사건들은 표면적으로는 달랐지만,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 사건 모두 후속 대응 과정에서 사생과의 소통 및 관악사 내부 간의 정보 공유가 부족했으며, 기존 자치회와 다른 태도로 의견을 주장하는 사생 개인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사생과의 소통 부족, 관악사 내의 소통 부족

  세 사건의 핵심은 관악사와 사생 간 소통의 부재다. 이는 사생의 의견 수렴과 알 권리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관악사는 “제한된 일정으로 공사에 있어서 사생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웠으며, 조교실 내부에서의 연락 오류로 919동 에어컨 설치 공사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한 전체 공지가 늦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 이후 자치회와의 인터뷰에서 ‘사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공사 진행 시 다양한 방법의 의견 수렴 절차를 사전 수행할 것’을 약속했다. 

사진 설명 시작. 관악학생생활관에 위치한 행정실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건물에는 ‘관악학생생활관 행정관’이라는 파란색 표지판이 크게 붙어있다. 사진 설명 끝.

관악학생생활관 행정관

  그러나 택배보관소 문제와 919동 화재 사건의 추후 대응에서도 사생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았다. 택배보관소 실무진 대표 이준서(경제21) 씨는 “관악사 운영센터, 택배보관소, 자치회 간의 협의가 계속돼도 관악사 측의 의지 부족으로 택배보관소 폐지라는 사생의 의견이 반영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직접 단체를 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택배보관소 시스템을 대체할 신규 사업을 위해선 추가인력과 비용 투입이 필요하고, 기존 택배보관소를 운영하며 학교가 임대수익료를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악사가 애초에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919동 화재대응 TF는 화재 사건 이후 화재 관련 정보가 투명히 공개되지 않아 사생의 알 권리와 주거권, 환경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화재대응 TF는 3월 4일 연서명을 통해 화재 원인을 규명하고 대처 사실 및 후속 조치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연서명에는 화재 발생에 대한 학교 측의 과실을 사과하고, 권리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인포그래픽 설명 시작. 관악학생생활관 시행세칙에 의거한 관악사 운영체계가 표로 나타나있다. 말단에 ‘동조교실’, 그 위에 ‘대표조교실’이 있다. 각 조교실은 ‘행정실’을 상부기관으로 둔다. 행정실과 동일한 서열로 ‘시설팀’이 존재한다. 행정실의 장으로는 ‘교무·학생부관장’이, 시설팀의 장으로는 ‘기획·시설부관장’이 있다. 두 관장 위에 ‘부관장’이 존재하고, 가장 상위에는 ‘관장’이 있다. 인포그래픽 설명 끝.

관악학생생활관 시행세칙에 의거한 관악사 운영체계

  919동 화재 사건은 관악사 내부 소통 구조의 문제를 드러냈다. 관악사는 동조교실, 대표조교실, 상부 기관의 구조로 업무를 처리한다. 사생이 본인이 거주하는 동의 조교에게 일차적으로 불편사항을 접수하면, 조교가 처리 가능한 문제의 경우 동조교실 선에서 해결한다. 추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은 매주 열리는 대표조교 간의 회의에서 다룬다. 회의 결과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경우 매주 기관장, 학생부관장, 행정실장, 관장 등 상부 기관과 함께 진행되는 회의에서 공식 안건으로 보고한다. 공식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상부 기관, 대표조교실, 동조교실의 역순으로 전달된다. 

  화재대응 TF에서 활동을 이어간 정영훈 씨는 ‘명령의 추상성’과 ‘내부 소통 부재’를 관악사 내 보고체계의 문제점으로 제시했다. 정 씨는 “상명하달의 구조 속에서 상부 기관이 추상적인 명령을 내리면, 하부 기관이 말단에서 발생하는 일들의 구체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하부 기관은 상부 기관의 추상적인 대응에 대한 사생들의 의문에 충분히 답해줄 수 없지만, 사생들은 상부 기관의 명령에 대한 불만을 하부기관에 표출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관들 사이에서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 않아 내부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 씨는 “화재 원인 관련 과태료 부과 문제, 석면공사 진행 등에 있어서 관악사 관장과 대표조교실, 행정실장이 아는 내용과 정도가 모두 달랐다”며 정보 공유가 되지 않는 상황을 지적했다.

애매한 문제들, 부족한 인력

  관악사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 방법이 모호하다는 특성도 있다. 대표조교실은 “사생이 24시간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기숙사 특성상, 담당 부서가 확실하지 않고 여러 요인의 고려가 필요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며 행정 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악사 김도현 대표조교는 “919동 화재 사건에서도 소방 반의 지휘와 대피 요령에 따라 사생을 지도했지만, 물품 지원 등 책임소재가 애매한 일을 논의할 때 의사결정 주체를 결정하지 못해 시간이 지체됐다”고 설명했다. 화재 발생 장소의 특성, 연기에 의한 피해, 화재 원인 규명 등 임의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 현 의사결정 구조에서 빠른 결단을 내리는 것이 더욱 어렵기도 했다.

  건물 복구와 시설 운영 등 화재 후 동 조교들에게 주어진 업무량이 과도하다는 주장도 있다. 관악사 박정현 919동 대표조교는 화재 후 업무량을 따라가기 위해 12~14시간씩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조교는 “피해를 보는 사람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느끼는 대응 속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피해를 보는 사생들은 더디게 느낄 수도 있지만, 조교실은 사생의 권리와 생활을 위해 늘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관악사의 인력 대비 업무량은 과도한 상황이다. 현재 행정실과 시설팀을 비롯한 행정직원 20여 명, 대표조교 6명, 동별 1~2명의 동조교가 6,000명에 달하는 사생들을 관리하고 있다. 제한된 인원으로 입주자 관리, 비상 상황 대응, 사생 상담, 입주 및 퇴거 절차,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등 복수의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김도현 대표조교는 “현 인력 상태에서는 직원도 조교도 힘들다”며 “인력과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919동 화재 사건이 발생으로 업무가 가중되며 새로운 택배 수령 시스템의 시행까지 지연되고 있다. 관악사의 업무 강도가 업무 대비 과중하다는 증거다.

더 나은 관악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생의 의견을 반영해 관악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본부의 태도 변화와 더불어 학생 자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현재 관악사에는 사생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복지를 향상하기 위한 단체로 관악사 자치회가 존재한다. 자치회는 3월 2일, 제34대 자치회 신입부원 모집글에서 “관악사로부터 독립적이고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사생을 대표해 관악사 내 기관과 소통하는 학생자치단체로서 역할한다”고 단체를 설명했다.

  그러나 자치회의 대응이 늦고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자치회는 919동 에어컨 공사 3개월 후에야 담당기관과의 소통 내용을 발표했으며, 919동 화재 발생 3일 뒤 연서명을 작성했다. 정영훈 씨는 “자치회가 행정실이나 대표조교실의 입장을 기다리는 태도”라고 말했다. 이준서 씨 역시 “분명 사생을 대표해 의견을 개진하는 단체인데 왜 동별·거점형 배송과 택배보관소의 폐지 등에 관해 먼저 주장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운영위원회 체제 지속이 자치회의 적극적 참여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치회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2020년부터 투표를 시행하지 못해 공식 회장단 체제가 아닌 운영위원회 체제로 유지됐다. 익명을 요구한 자치회 내부관계자는 “투표로 선발된 자치회 회장단이 부재하기에, (사생들이) 자치회의 의견이 모든 사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대표성이 없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운영위원회 체제에서도 자치회는 관악사와 주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1~2개월 주기로 정기 회의가 진행된다. 다뤄야 할 안건이 많을 때는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연락을 진행한다. 관악사 박정현 919동 대표조교는 “자치회에서 사생의 의견을 수렴하여 건의하면 조교 단위에서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대표조교실, 관장, 행정실장 등 운영진과의 공식 회의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반면 자치회의 노력에 사생들이 항상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박 조교는 “택배보관소 개선안 투표율이 낮아 사생을 독려해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자치회 활동에 사생의 관심이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진 설명 시작. 919동 기숙사 식당 앞 관악사 자치회의 판넬이 보인다. 판넬에는

  

919동 내 관악사 자치회 의견판에 운영안 투표 홍보글이 부착돼있다.

  관악사 김도현 대표조교는 “대표성과 권한의 위임, 명분이 존재하는 공식적인 자치 기구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치활동에 참여하고 사생들의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관악사도 이를 전체 사생의 의견으로 인정하여 자치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얘기다. 김 조교는 관악사 기관과 사생이 진정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동반자적인 자세를 통해 방향을 찾아가는 태도가 필요함도 덧붙였다.

  자치회 내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화여대 기숙사 사생회는 행정실과의 정기회의마다 기숙사 홈페이지 내 학생활동 게시판에 회의록을 공개한다. 사측과의 소통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공신력과 관심 모두를 제고하려는 것이다. 자치회가 사생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자치회 외에 사생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가 필요하다. 사건 경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사생의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를 변화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공청회를 통해 폭넓은 의견을 청취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관악사와 사생은 협력 관계다. 관악사와 사생 간 소통이 부재하고, 그것이 사생들의 알 권리와 주거권 침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개방된 공론장의 형성과 그에 대한 관심이 필수다. 모두의 노력이 있을 때 관악사와 사생은 장기적인 이인삼각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이번 역은 을지로 4가, 7억 원입니다

다음 기사

거친 파도 위에 놓인 젠더 교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