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션 오브 킬링 (Emotion of Killing)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2012)
사진 설명 시작. 왼쪽에는 기둥에 전선으로 목이 묶인 남자가 앉아있고, 오른쪽에는 전선을 잡아당기며 카메라를 쳐다보는 안와르 콩고가 있다. 안와르는 전선 교살법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 전선 교살 방법을 재연하는 안와르 콩고 ⓒ영화 《액트 오브 킬링》 공식 스틸컷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분위기, 행복함, 미소!” 평온한 첫 대사로 시작하는 영화의 줄거리는 어두웠다. 1965년 인도네시아는 군부독재 하에 놓여있었다. 군부는 독재에 대항하는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국가는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프레만(Free Man)이라는 민간 조직 폭력배와 불법 무장 단체들을 동원했다. 학살의 끝에는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이 스러졌다. 《액트 오브 킬링》은 1965년으로부터 45년이 흐른 2010년의 인도네시아를 보여준다. 가해자는 정치 권력을 잡고, 피해자는 여전히 움츠러든 세상을.

1965년의 쓰라린 잔흔

  1965년 대학살 사건은 인도네시아에서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다. 피해자 모임은 사건의 진상 규명과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해결은 요원한 상황이다. 군부는 오히려 피해자 모임을 뒷조사하고 위협한다.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거나 이를 지지한 가해자들은 오늘날 불법 무장 단체 간부, 신문 발행인, 부통령, 청년체육부 차관 등 사회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의 가해자들이 자랑스레 살육의 기억을 떠벌리는 모습을 담아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액트 오브 킬링》 개봉 일주일 만에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고,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은 신원 노출과 보복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엔딩 크레딧에서 익명으로 처리됐다.

‘살인의 기억’ 재조명하기

  1965년의 학살은 국가가 주도했고 민간 폭력 조직과 무장 단체가 살인을 실행했다. 국가는 반공주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이 다른 국민을 살해하도록 끌어들였다. 개인 가해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학살에 참여했다. 국가와 개인이 결속해 저지른 살인은 인도네시아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영화에서 가해자 편에 선 개인들은 악과의 상생이 삶의 안위를 보장해줬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속 북부 수마트라 주지사는 이렇게 말한다. “프레만들은 나쁜 짓도 자유롭게 하려고 하죠. 하지만 그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알고 지시만 잘하면 돼요.” 프레만과 협력한 사람들은 민중에게서 갈취한 금전과 정치 권력을 제공받았다. 이들은 학살자들을 옹호하고 찬양하며 2차 가해자로 거듭난다. 사회 곳곳에서 요직을 맡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소거하고 무력에 근거해 자신의 존재 기반을 세운다. 

  1965년 당시 사형집행자 안와르 콩고는 과거의 살인 행위를 서슴없이 재연해내는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도 무탈하게 살아온 본인의 과거와 현재를 영화로 창작해보라는 영화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카메라 앞에서 안와르는 춤과 미제 영화처럼 살인을 즐겼다고 증언한다. 그는 때리는 것은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전선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방법을 고안했다며, 미국 영화에서 사람을 멋지게 죽이길래 자기도 실제로 그 방식을 따라해봤다고 떠벌린다.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풀어낸 살인의 증언과는 달리, 그는 몸에 새겨진 살인의 감각을 지우지 못한다. 안와르는 자신이 죽인 이들의 마지막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감을 통해 몸에 누적된 살인의 기억들은 안와르를 괴롭힌다. 잊혀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죄책감에 안와르는 살인을 회피하고 부정하다가도 반성한다.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건 옳은 일이었다며 살인을 정당화하는 한편, 잠자리에 귀신들이 찾아와 괴롭다고 토로한다. 

사진 설명 시작. 왼쪽에는 프레만 간부가 있고, 오른쪽에는 안와르 콩고가 메가폰을 잡고 영화 출연자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 영화를 직접 연출하는 안와르 콩고 ⓒ영화 《액트 오브 킬링》 공식 스틸컷

죄책감의 밀물과 썰물

  안와르의 내적 갈등은 1965년 함께 사형을 집행했던 친구 아디와 대화하며 점차 격화된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해.” 아디의 말은 안와르를 감싸는 듯 하지만, 오히려 안와르의 마음을 더욱 옥죈다. 안와르는 손자가 오리의 다리를 부러뜨리자 손자에게 사과를 시키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손자에게 실수였다고, 무서워서 때렸다고 말하라며 그는 오리에게 거듭 사과한다. 그러나 말 못 하는 오리에게서 어떤 응답도 용서도 받지 못한다. 잠 못 들어 뒤척이고 죄책감에 구역질을 하면서 그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린다. “우린 확실히 잔인했던 것 같아.”

  영화는 안와르와 같은 가해자들의 죄책감을 수면 위로 올려 관객에게 낱낱이 공개하는 연출방식을 택한다.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사실을 전달하는 기존 다큐멘터리와 달리, 감독진이 적극적으로 카메라 내의 세계에 개입해 서사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조관연 교수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고안한 이 다큐멘터리 형식을 ‘상상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라고 명명했다. 상상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는 기법에는 ‘연행(performance)을 통한 재연’과 ‘네이티브 피드백’이 있다. 연행은 출연자가 영상의 연출을 맡는 방식이고, 네이티브 피드백은 제작진이 출연자의 촬영본을 출연자에게 보여준 후, 그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차후 촬영본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감독은 가해자들에게 이 두 기법을 제안하며 당시의 살인 행위를 재현하는 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라고 요청한다. 안와르는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으며 피해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호기롭게 시작한 피해자 연기에 몰입하면서, 그는 생전 처음으로 고문당하며 스러진 사람들의 입장에 선다. 자신이 고안해낸 전선 교살법으로 죽어가는 연기를 하던 안와르는 결국 촬영 중단을 요청한다. 몸이 축 늘어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자신이 잠시 죽은 것 같았다고 읊조린다.

  안와르는 네이티브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살인을 재현하는 안와르의 모습을 촬영해 그에게 직접 보여주고, 영상 속 본인의 모습을 보고 동요하는 안와르를 다시 촬영해 그에게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지막 네이티브 피드백을 마치며 그는 그제서야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한다. “내가 예전에 고문했던 사람들도 기분이 나처럼 저랬을까요?”

살인의 후유증

  영화는 반공주의라는 국가의 이념에서 시작해 개개인의 비극으로 끝난 학살의 잔상을 포착한다. 가해자는 죄책감 혹은 자기 회피의 늪에 빠졌고, 피해자는 끔찍한 방식으로 비명횡사했다. 학살은 끝났지만 모두가 학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무서운 사람’이나 ‘살인자’로 불리고, 다른 누군가는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쓴 채 사회로부터 배척당한다. 구원받을 수 없는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물을 머금은 것처럼 무거워진다. 안와르가 40여 년이 흘러서야 깨달은 피해자의 고통과 두려움은 이제 보상할 길이 없다. 죽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기엔 너무 늦었다. 안와르 콩고는 2019년 10월 사망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피해자들에게 한 마디의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침묵 속에 학살의 후유증은 방치되고 있다. 학살의 역사 위에 평화와 행복과 미소는 어떻게 자리해야 할까.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대학 내 온라인 공론장 다시 그리기

다음 기사

16일 관악학생생활관 919동 지하에서 화재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