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권 대응 시스템의 정착을 위해서는

인권센터의 대응 과정 전반을 살피다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운영 의무화를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은 성폭력, 갑질 등 교육기관 내 증가하는 인권침해 사안 대응을 효과적으로 전담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배경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대학생 1,852명 중 한 번이라도 인권침해를 겪은 사람은 883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인권센터가 있는 대학은 전국 336개교 중 89개교에 불과했다.

 

  서울대의 경우 2012년부터 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연간 상담 건수는 55건에 달하며, 사건처리 건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인권센터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당시 본부가 사건 조사를 인권센터에 맡기자, 노조가 ‘인권센터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반발한 것이 그 예다. 인권침해 대응 과정에서 인권센터가 부족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인권센터 조사 과정을 비롯해 인권침해 대응의 전반을 살펴봤다. 

인권센터는 인권침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인권센터의 사건 대응은 피해자와의 상담, 피해자나 기관의 신고, 사실관계 조사, 사건 처리방식 결정 및 피해자 구제조치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인권센터는 신고 전 당사자와 상담을 진행하고, 당사자가 신고를 결정하거나 다른 해결방법을 모색하도록 돕는다. 정식으로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를 통해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진술 및 증거를 확보한다.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면 교차 확인을 하거나, 추가 증거를 확보한다.

  인권 침해 사안이 맞다고 판단될 경우 인권센터는 상호 조정이나 중재를 시도한다. 조정이나 중재를 통해 당사자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해당 사안에 대한 조치는 심의위원회(심의위)로 넘어간다. 심의위는 사안의 유형이나 내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피해자 구제 방안을 결정한다. 인권센터는 상담 등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조치를 지원하고, 해당 기관에 재발 방지 교육 등의 조치를 요청한 후 사건을 종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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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의 사건 처리 절차 안내도 ⓒ인권센터

  인권상담소장과 성희롱성폭력상담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영주 소장은 “상담과 조사 담당 인력을 분리해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상담위원 1명과 변호사 자격이 있는 전문위원 3명이 상담 및 조사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과정 중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등 전문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조사의 독립성 확보도 중요하다. 대학 인권센터 문제에서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 온 서울시립대 인권상담실 허은영 팀장은 “대부분의 대학은 인권센터가 상부에 조사 내용을 보고하는 구조”라며, “인권센터 조사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대 인권센터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이영주 소장은 “인권센터 조사 결과는 사건 관계자 외 누구에게도 공유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조사 당사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조사·심의위원 등 최소한의 인원에게만 자료를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형식상 학생처 산하기구지만, 절차적으로 독립돼 있어 조사 내용이 외부로 알려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인권센터의 사건 대응 과정에 대한 구성원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사회학과 H교수 피해자 대리인이자 대학원생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유현미 씨는 “당시 징계위, 단과대 등 관련 책임 주체들의 행동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인권센터 조사 과정은 비교적 공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학원생 성폭력,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개선안 및 피해 조력자를 위한 행동지침 제안(보고서)’의 공동저자인 문지호 대학원 총학생회(원총) 전문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보 접근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사의 후속 조치인 심의 과정과 관련해서는 심의위원 선정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인권센터 규정상 심의위원은 교직원, 변호사, 혹은 상당한 경험을 보유한 사람들 중 3인에서 9인을 위촉하게 돼 있다. 문지호 위원은 “사안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심의위원도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며, 이 경우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영주 소장은 “심의위원은 관련 경험을 고려해 사안마다 다르게 선정하고 있으나 개인의 양심에 의존해야 하므로 공정한 판단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심의위는 한 명이 아니라 합의체며, 심의위의 의견을 100%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해명했다.

  현 제도상으로는 심의위원으로 학생을 위촉할 수 없지만, 학생에게도 심의위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생이 인권침해 당사자인 사건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허은영 팀장은 “심의의원을 위촉하는 기준이 전문성이라면, 학생이 당사자인 사건에 학생 심의위원을 위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을 심의위원으로서 위촉하는 것에 유보적인 입장도 있다. 이영주 소장은 “심의위에서 학생 입장을 대변할 존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특정 학생이 조사 내용을 열람할 경우 생기는 유출 가능성이나 어떤 학생이 해당 사안에서 학생을 대표할 것이냐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침해 대응 전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알 권리란 사건의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가 조사와 심의의 절차의 구체적 내용을 안내받을 권리를 말한다. 문지호 위원은 “피해자에게 조사와 심의, 징계위의 절차가 언제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절차에 누구와 함께 출석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지 안내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사와 심의 결과를 유형화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인권센터는 당사자가 특정될 위험 때문에 사건 관련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인권침해 사안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결과 공개는 피해자나 학생사회가 비슷한 사안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부터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제외한 결정례집을 공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영주 소장은 “재발 방지의 측면에서 최소한의 공개는 필요하지만,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조사 내용을 공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지호 위원은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니 피해자들이 공론화할 경우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최소한의 내용 공개는 사법 과정에서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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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동 우정원 3층에 위치하는 인권센터는 총 1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153동 우정원 3층에 위치하는 인권센터는 총 1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인권센터 바깥의 문제들

  인권침해 대응은 인권센터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심의위가 가해자 처벌을 권고할 경우 사건은 징계위원회(징계위)로 넘어간다. 하지만 징계위의 구성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징계위는 학생처장이 당연직으로 위원장이 되며 나머지 위원들은 대부분 교원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위원으로 선정된 교원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비전문가인 경우가 많다. 허은영 팀장은 “징계위도 사안의 성격에 따라 학외 전문가를 임명해서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징계위에서 피해자의 진술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유현미 씨는 “서문과 A교수 사건 당시 징계위는 ‘할 말 있으면 와서 하라’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징계위 규정에도 피해자의 진술권을 보장하는 조항은 없다. 유 씨는 “신고인과 피신고인의 구도인 인권센터 조사과정과 달리, 대학과 가해자의 구도인 징계위에서는 피해자가 설 자리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징계위는 대학의 인사 처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보다는 대학과 가해자가 부각된다는 지적이다.

 

  인권침해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소속 단과대나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단과대나 기관처럼 인권침해가 발생한 현장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인권센터 규정 35조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특정인의 배제 및 그 밖의 인권 보호를 위해 보호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공간 분리 등의 보호조치를 요청해도 소속 기관이 응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소속 기관의 역할은 사건 종결 후 더욱 중요해진다. 피해자가 사건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다. 대학원생이 피해자일 경우 지도교수 교체나 장학금 수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단과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문지호 위원은 “피해자의 학업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라며, “가해자의 처벌이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피해자가 원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까지 대학의 책임이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인권 시스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인권센터 연구부 이주영 교수는 “인권센터가 만능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인권센터의 역할은 사건에 대한 독립적 조사 및 심의와 인권 교육”이라며 실제로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과대, 징계위 등의 여러 주체가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지호 위원은 “인권침해 대응에 있어서 인권센터, 단과대 및 기관, 징계위 등 책임 주체의 역할을 명문화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 문제의 효과적 대응을 위해 인권센터 뿐 아니라 인권침해 대응 과정에 있는 주체들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도적 수단을 제시했다. 인권센터가 당사자의 소속 기관에 요청한 보호 조치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절차를 도입하거나, 소속 기관장이 참고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담은 지침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주영 교수는 “현재 사건 처리 후 소속 기관 내에서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H교수 사건 대응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학과 인권위원회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단과대의 노력이 제도화된 좋은 예다. 유현미 씨는 “당시 사회학과 교수들은 사건 파악 후 빠르게 해당 교수를 학과장 자리에서 면직시키고 피해 학생들의 지도교수를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후 사회학과는 재발 방지를 위한 학과 내 제도적 필요성을 공감하고 사회학과 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현재 사회학과 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될 경우 학과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재발방지 교육을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도적 개선만큼이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의식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지호 위원은 “학생 사회에서 ‘가해자가 어떤 벌을 받았다더라’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피해자의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영 교수는 “회복의 과정은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공동체 전체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설치된 지 10년이 지났다. 매년 인권센터를 찾는 구성원은 늘어나고 있지만, 인권센터와 단과대의 유기적 협력 없이는 실질적인 인권 보호가 이뤄질 수 없다. 서울대 인권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은 학내 구성원 모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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