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윤리를 상상하기

서울대학교미술관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展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환경 자체를 바꾸면서 시작된 새로운 지질시대를 일컫는다. 인류세 개념이 등장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인류는 팬데믹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이 보내는 신호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展은 애도의 감정에서 출발해 그 답을 찾았다. 

인류세의 그늘을 마주하다

사진 설명 시작. 흰색 벽에 두 개의 책꽂이와 화분이 놓여있고, 책꽂이 안에는 여러 사물들이 얹어져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틸란드시아 식물이 덮고 있다. 사진 설명 끝.
▲김유정 「풍경이 된 정물-보여지기위한」 ⓒ박유진 사진기자

  전시는 인류세의 어두운 면을 점검하면서 시작한다. 먼저 일상 속에서 자연이 재현되고 생산되는 방식을 조명한다. 김유정 작가는 식물의 소비를 통해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을 은폐하는지 살펴본다. 김유정의 「풍경이 된 정물-보여지기위한」에서 책장과 오브제들을 휘감고 있는 틸란드시아 식물은 현대의 삶에 ‘자연’의 생기를 더하기 위한 존재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배치된 틸란드시아는 생명이 아닌, 그저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정물’이다. 김유정은 우리가 인공적인 식물을 ‘진짜 자연’처럼 여기며 야생의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진 설명 시작.
▲이소요 「관상용선인장디자인」 ⓒ서울대학교미술관

  이소요 작가는 인류세에서 자본이 자연을 착취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소요의 「관상용선인장디자인」은 구형의 빨간 선인장인 비모란과 기둥형의 녹색 선인장인 삼각주가 합쳐져 만들어진 키메라 식물이 ‘세계 최고의 선인장’으로 불리며 한국의 ‘수출효자’ 품목이 된 역사를 훑는다. 교배·육종되는 과정에서 선인장은 그 식물을 판매하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모란, 목단옥 등 임의적으로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소요는 인간중심적 자본주의의 욕망이 자연을 변형해 이득을 취하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자연에 대한 존중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인간의 욕망이 동물 교배와 원예 산업 종사자들의 노동 착취와 연결됨을 보여줌으로써 그 욕망의 위험성을 실감하게 한다.

  김유정과 이소요는 인류세 시대에 인류가 져야 하는 책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가 진정으로 애도해야 하는 자연을 직시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진정으로 들어야 하는 것

사진 설명 시작. 산불의 여파로 재만 남은 숲 속의 모습이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카메라에 담겨있다. 사진 설명 끝.
▲안종현 「시작의 불-숲-#01」 ⓒ서울대학교미술관

  환경파괴와 생태위기의 현장을 더욱 노골적으로 조명하는 작품도 있다. 안종현 작가는 「시작의 불-숲-#01」에서 화재가 휩쓸고 간 산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 잿더미만 남은 산의 모습을 통해 안종현은 산불이 인재(人災)임을 고발한다. 인간의 욕망이 질주를 멈추지 않을 때 인류세의 결말이 어떠할지 사유해보게 한다.

사진 설명 시작. 아스팔트에 오염된 빙하들 사이로 파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사진 설명 끝.
▲한성필 「녹아가는 빙하」 ⓒ서울대학교미술관

  한성필 작가는 「녹아가는 빙하」를 통해 자연을 숭고한 것으로 낭만화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성필의 사진 속 극지방은 순백색의 설원이 아니다. 빙하는 개발과 산업화의 손길을 피하지 못해 아스팔트 도로처럼 검게 변해 있다. 파괴된 극지는 우리가 ‘자연’에서 연상하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실제의 대자연이 마주한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한성필의 사진은 끊임없이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자연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 인간중심적 관점을 깨뜨린다.

  인류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 작품들은 우리가 애도를 표해야 할 자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비춘다. 파괴된 자연의 모습은 묵직하고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다. 이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한다고.

덜 슬프고 더 너그러운 인류세를 위해

  전시는 자연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러나 ‘푸른 유리구슬’ 지구에서 인간과 자연은 서로 연결돼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수영 작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살았던 히말라야 삼나무-연필」은 연필로 그린 삼나무 가지, 새, 눈 덮인 숲, 다람쥐를 차례대로 나열한 뒤 마지막에 2cm 남짓한 몽당연필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송수영은 삼나무가 짤막한 연필 한 자루로 남기까지 숲에서 경험했을 삶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물 속에 여러 동·식물의 숨결이 담겨있음이 와닿는 지점이다.인간과 자연이 늘 반려해왔음을 깨닫는 것이 자연과의 관계 재정립을 위한 시작임을 알린다.

사진 설명 시작. 검은색 몸통에 금빛으로 얇은 띠가 둘러진 몽당연필이 있다. 사진 설명 끝.
▲송수영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살았던 히말라야 삼나무-연필」 ⓒ서울대학교미술관

  자연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애도 그 이상의 감정과 실천이 필요하다. 전시는 인류세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파괴된 자연을 애도하며 출발한다. 그러나 전시는 슬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새로운 윤리를 사유한다. 조금 덜 슬픈, 모든 생명에게 더 너그러운 인류세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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