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관리자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인권센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인권센터 측은 지난 9일 인권센터 직권으로 조사를 개시해 현재 인권침해 여부 및 제도개선 필요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측은 인권센터 조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노조와 학교 사이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 및 학생연대 측은 인권센터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이재현 대표(서양사 18)는 “인권센터는 편제상 학교의 기관이고 예산을 비롯한 주요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운영위원회도 학교 측의 보직교수가 다수 포함돼 있다”며 실질적 독립성에 의구심을 보였다. 이 대표는 “인권센터는 그동안 교수 갑질 및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정직 3개월 권고라는 솜방방이 처벌을 내렸다”며 “학교 측에 편향된 조사결과가 나오리라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반면 본부는 입장문을 통해 개인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구민교 전 학생처장(행정대학원)이 사임하는 등 “공정한 인권센터 조사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자 했다”며 인권센터 조사의 객관성을 강조했다.

▲ 지난달 7일, 조합원들이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기자회견 후 요구안이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박채연 사진기자
실제로 인권센터 조사는 공정성을 보장받기 어려울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류하경 변호사는 “인권센터 역시 서울대 법인의 자금지원을 받는 기구고 소속 직원도 총장이 사용자로서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며 “인권센터가 학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될 경우 사용자 측이 의무적으로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류 변호사는 “대다수의 직장 내 괴롭힘 사안이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남용해 벌어진다”며 “신고 후 사용자의 자체조사 결과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비판했다. 인권센터 조사 역시 근로기준법의 한계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권센터에서 조사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재현 대표는 “인권센터에서 조사 가능한 범위는 산업재해 전반의 쟁점을 다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망 사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쓰레기의 양이나 휴게 시간을 비롯해 전체적인 노동강도 및 환경을 조사해야 하지만, 인권센터 조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류하경 변호사는 “사망 사건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처럼 강력한 조사 권한을 가진 기구에서 조사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감독 기관에 의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센터 측은 “유족이나 동료분, 노조 등 사건 관계인의 진술을 폭넓게 청취할 예정”이며 “본부를 비롯해 외부의 영향 없이 절차와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인권센터 측은 조사 진행 과정이나 추후 사건처리 방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지난 30일,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과 관련한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일부 인정됐다고 발표했다. 고용부는 ‘필기시험 실시 및 시험성적의 근무평정 반영 관련 의사표시’, ‘복장에 대한 점검과 품평’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고용부 지도에 따라 서울대는 필기시험 실시 및 복장점검에 대한 개선 및 재발방지책을 수립하고, 전체 노동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특별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에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민주노총)은 30일 입장문을 내고 ▲오세정 총장의 사과와 2차 가해자 처벌 ▲공동조사단 구성 ▲공무직위원회 근무평정안 폐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개정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해당 입장문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가능케 했던 구조적 문제와, 열악한 노동조건 및 노동강도의 문제는 다뤄지지 못했다”며 고용부 조사의 한계를 지적했다. 본부는 지금까지 사과 및 노동 환경 개선 등 노조와 학생사회의 요구에도 인권센터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규명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고용부 조사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 가운데 인권센터 조사 결과를 비롯해 학교가 공동산재조사단 구성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