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의 돌봄 울타리, 지역아동센터

아동 돌봄의 최전선인 지역아동센터를 지키려면

  코로나19로 등교제한이 장기화되자 아동 돌봄공백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돌봄공백은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그동안 돌봄의 사각지 대에 놓여있는 아동들에게 안전한 보호막이 돼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는 사회의 무관심과 편견 속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이다. 지역아동센터의 종사자들은 노동복 지의 사각지대에 서서 돌봄의 구멍을 메우고 있다. 지역아동센터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대로 우리 사회는 지역아동센터에게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지역아동센터의 하루

  매일 1시가 되면, 지역아동센터는 하교 후 하나둘씩 도착한 초등학생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센터에 도착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각자 교과서나 문제집을 펴고 책상에 앉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학습지원은 모든 지역아동센터의 기본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교 숙제를 하거나,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 수업을 받는다.

  학습 활동을 마친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다양한 특별 활동이다.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광동지역아동센터에서는 우쿨렐레, 미술, 옛이야기 수업 등 요일과 연령대별로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 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목요일마다 듣는 옛이야기 수업에선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앉아 선생님이 들려주는 옛날 동화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직접 ‘꼬마 이야기꾼’이 돼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에게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광동지역아동센터 이경미 센터장은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마음속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위로와 공감을 나눈다”며 수업이 가지는 정서적 효과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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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지역아동센터 옛이야기 수업 현장

  센터가 자체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특별 활동은 지역사회의 복지단체·기업과 연계해 진행하기도 한다. 광동지역아동센터는 지역 인근의 도서관과 연계한 책 읽기 수업, 외부 전문시설에서 진 행하는 클라이밍 수업을 하고 있다. 매년 봄가을에는 서울대공원 근처의 주말 농장에서 아이들이 손수 텃밭을 가꾸고, 수확한 농작물을 센터 급식에서 먹거나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모든 수업이 끝나는 5시 반이 되면, 초등학생들은 함께 급식을 먹거나 도시락을 배부받은 후 귀가한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는 건 다른 프로그램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양시 만안 구에 위치한 달팽이지역아동센터 안보름 센터장은 “아이들이 가정에서 먹는 식단이 영양적으로 불균형한 경우가 많다”며 센터 식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6시에는 중·고등학생이 센터에 도착한다. 중·고등학생 역시 센터에서 학습 활동과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함께한다. 달팽이지역아동센터는 한 아이가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꺼낸 것을 계기로 밴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에서 한 명당 최소 악기 하나를 배울 수 있도록 한 덕에 아이들이 여러 차례 공연을 준비해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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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지역아동센터 시간표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센터에서 친구들이나 종사자들과 오랜 시간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은 정서 지원의 핵심이다. 이경미 센터장은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 사회적 관계에 미숙했던 아이가 매일 한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며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센터에는 가정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해 정서적 불안감이 높은 아이들이 많다. 보호자의 부적절한 양육 태도로 아동이 가정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겪을 경우 센터에서는 보호자와 오랜 기간 소통하며 변화를 시도한다. 전문적인 심리상담·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대다수는 저소득층 맞벌이가정,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등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지역아동센터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센터를 이용하 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지역아동센터를 다닌다는 사실은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이 된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만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한다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안보름 센터장은 “보통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갈 때 친구들에게 ‘학원에 간다’고 말한다”며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낙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가정과 학교를 대신한 지역아동센터

  코로나19는 지역아동센터의 기존 활동을 제약하는 동시에 센터에 새로운 책임을 안겼다. 지금은 방역지침의 안정화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긴급돌봄이 필요한 일부 아동만 센터에 나올 수 있었다. 센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방임되는 시간이 늘어나자, 지역아동센터는 가정방문 모니터링과 도시락 배달을 시작했다. 안보름 센터장은 “보호자들이 가정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잦았는데, 코로나19로 자연스럽게 가정방문 지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학교의 온라인 수업을 성실하게 챙겨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지역아동센터의 몫이다. 저소득층 아동은 온라인 수업을 안정적으로 들을 수 있는 공간이나 노트북 등의 교육 기자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수업 환경이 갖춰져 있더라도 아이들 홀로 몇 시간씩이나 되는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의 긴밀한 연계는 온라인 수업의 원활한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최선숙 사무총장은 “아동의 온라인 수업 출석률이 저조할 경우 학교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연락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동지역센터의 한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대신 밤늦게까지 게임을 해 학교 교사와 센터 종사자들의 걱정을 샀다. 센터에서는 해당 아이가 센터 내 독립된 공간에서 종사자와 함께 온라인 수업을 집중해 들을 수 있도록 독려했다.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에도 지역아동센터는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수원시에 위치한 고색동지역아동센터는 센터 인근에 확진자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정보를 입수 하고 학교 등 타 기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고색동지역아동센터 박은아 센터장은 “종사자 대부분이 지역사회 주민이다. 또 수년간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학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지역아 동센터의 특성 덕분에 선제적 대응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규제는 많고 지원은 적은 제도

  전국 지역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린 지역아동센터는 현재 약 4,200개소에서 10만여 명의 아동·청소년을 돌보고 있는 최대 규모의 아동복지시설이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 비해 센터의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일부 지역에만 지역아동센터가 밀집돼 있어 지역별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약 122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수원시에는 64개의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반해, 약 144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광주광역시에는 수원시보다 5배가량 많은 310개의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지역아동센터 증설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지역아동센터의 수는 그대로다. 수원지역아동센터연합회 이세광 회장은 지역아동센터의 신규 설립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신고제를 지적한다. 지역아동센터를 새로 설립하기 위해선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되지만,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기 위해선 초기 2년 동안 시설의 운영 능력을 평가하는 진입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 회장은 “신규시설의 운영 능력 평가는 필요한 절차”라고 인정하면서도, “2년간 공간 임대료와 인건비, 프로그램비를 전부 시설장이 자부담하는 것은 큰 경제적 부담” 이라고 지적했다. 최선숙 사무총장은 지역아동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정부가 시설 설립을 허가하는 동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가제를 신고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역아동센터의 시설장이 2년간 어렵게 시설을 유지한 끝에 국가보조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센터의 경제적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센터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공간 임대료로 지출하는 것은 정부 지침상 금지된다. 공간 임대료는 사실상 시설장이 자부담하거나 후원금만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세광 회장은 “후원금 액수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열악한 시설은 시설장이 자신의 급여로 임대료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현행 국고보조금 체제로 종사자에게 충분한 인건비를 지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센터 종사자는 경력에 상관없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사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통해 경력·호봉에 따른 사회복지사의 기본급을 책정하고 있지만, 지역아동센 터 종사자들은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지 못한다. 사회복지시설 중 유일하게 지역아동센터만이 운영비와 인건비가 분리되지 않은 채 국고보조금을 지급받기 때문이다. 최선숙 사무총장은 “국고보조금에서 최소한의 시설 운영비와 프로그램비를 제하면, 센터 종사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인건비를 지급하기 어렵다”며 “가이드라인 수준의 인건비를 국가가 보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 종사자의 낮은 처우는 높은 이직률로 이어진다. 최 사무총장은 “잦은 종사자 교체는 안정적인 돌봄 서비스를 어렵게 만든다”며 종사자의 처우 개선이 아동 돌봄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2020년 7월부터 법인 혹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지역아동센터에 한해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단일임금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시설은 법인보다 공공성과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모든 지역아동센터가 정기적으로 평가와 감사를 받고 있음에도 시설의 운영 주체에 따라 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다가 개인시설이 법인화하는 데 수반되는 현실적 어려움은 센터들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선숙 사무총장은 “법인화 절차와 이후의 운영방식에 대한 정보가 없어 법인화를 시도하는 개인시설이 ‘맨땅에 헤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가 차원의 컨설팅과 행정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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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서울시의 선별적 단일임금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종사자 수는 돌봄 서비스의 질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현행 아동복지법 시행령은 30명 미만의 시설에 2명(시설장 1인, 생활복지사 1인), 30명 이상의 시설엔 3명(시설장 1인, 생활복지사 2인)의 종사자를 배치하도록 규정한다. 해당 기준이 센터 현장의 필요에 못 미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경미 센터장은 “학습 활동과 특별 활동은 지자체로부터 파견된 아동복지교사나 센터에서 고용한 강사가 진행하지만 전방위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종사자”라고 말했다. 보다 안정적인 돌봄과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선 정규 종사자의 수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아동센터의 돌봄 인력 부족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가중됐다. 최선숙 사무총장은 “지역아동센터의 정규 종사자 수가 부족해 자원봉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며 “코로나19 이후 외부 자원봉사자의 지역아동센터 출입이 제한되면서 종사자의 부담이 더욱 가중됐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돌봄 정책에서 소외된 지역아동센터  현재 한국의 아동 돌봄은 ‘온종일 돌봄체계’ 안에서 이뤄진다. 온종일 돌봄체계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해 학교를 마친 아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빈틈없는 돌봄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온종일 돌봄체계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교 돌봄과 지역사회 내 공공시설에서 제공하는 마을돌봄으로 구분된다. 문재인 정부는 학교돌봄 정책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초등돌봄교실을 대폭 확대하고, 마을돌봄 정책으로 2018년 다함께돌봄센터를 신설했다.  다함께돌봄센터가 등장하면서 이전부터 마을돌봄을 책임져온 지역아동센터는 찬밥 신세가 됐다. 이세광 회장은 “다함께돌봄센터와 지역아동센터의 구별이 지역아동센터 이용아동에 대한 낙 인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한다. 학부모 사이에서 다함께돌봄센터는 중산층 맞벌이 가정의 아동이,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아동이 이용한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는 정원의 60% 이상이 돌봄취약아동으로 구성되며 무상으로 운영된다. 반면 다함께돌봄센터는 이용아동 기준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이용아동이 월 10만원 이내의 이용료를 부담한다. 이 회장은 “보편적 복 지로 나아가는 사회적 추세에 맞춰 지역아동센터의 이용아동 기준을 궁극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의 낙인을 강화하는 소득 기준을 없애자는 제안이다.

  정부 지원에서도 지역아동센터는 소외된다. 2020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500세대 이상의 주택단지 내에 다함께돌봄센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2년 동안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지역아동센터와 달리, 다함께돌봄센터는 설립되는 즉시 정부로부터 시설운영비와 인건비를 별도로 지원받을 수 있다. 최선숙 사무총장은 “시설환경과 운영 안정 성 측면에서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 사이의 격차가 나타난다”며 “취약계층 아동이라는 이유로 더 열악한 시설에서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기자가 만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사회의 가정·학교·공공기관·기업이 촘촘하게 연계돼 아동을 보살펴야 한다는 의 미다. 안보름 센터장은 “지역 주민이 센터에 전화해서 센터에 다니는 아동이 담을 넘었다고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며 지역사회 전체가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처럼 돌보고 지켜봐 주는 것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지역아동센터가 단지 종사자들의 희생과 봉사만으로 유지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지역아동센터를 지켜나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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