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고용 기회는 경증장애인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중증장애인, 특히 최중증장애인은 경제적 이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쉽게 배제돼왔다. 최중증장애인의 노동을 통해 새로운 권리를 생산한다는 취지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권리중심 일자리)이 시행되고 있다.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음센터) 송미란 사무국장은 권리중심 일자리를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라 말한다. 권리중심 일자리가 허무는 최중증장애인과 노동의 경계를 살펴봤다.
사회가 배제해온 중증장애인의 노동
지난해 7월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권리중심 일자리가 올해 4월 다시 시작됐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노동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던 중증장애인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다. 2021년에는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중증장애인 260명을 고용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한눈에 보는 2020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등록 중증장애인구 80만여 명 중 비경제활동인구는 78.7%에 달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의 소비 인구 가운데 노동할 능력과 의사가 없는 인구를 말한다. 등록 장애인 256만여 명 중 37%가 비경제활동인구인 것과 비교하면 중증장애인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뇌병변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고용률은 더 낮다. 5대 장애유형의 고용률은 지체(44.4%), 시각(42.3%), 청각(30.6%), 발달(23.2%), 뇌병변(12.7%) 순이다.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제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2019년 정부가 발표한 ‘최저임금적용제외 장애인노동자 지원방안’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않는 장애인의 평균 시급은 3,416원으로, 2019년 당시 최저임금인 8,350원의 40% 수준에 그친다. 최저임금 대비 장애인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2017년 41.4%, 2018년 38.1%, 2019년 36.6%로 하락하는 추세다.
낮은 임금수준은 장애인 스스로 일자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장애인 수급자에게 일정액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수급액이 감소하거나 수급 자격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장애인 노동자가 받는 임금수준은 수급 상황을 벗어날 정도로 높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중증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78.7%) 중 86.2%는 향후 일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을 하지 않고 받는 수급액과 수급을 포기하고 받는 임금은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남은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염원삼 사무국장은 “수급액도 줄어드는데 노동까지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을 포기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중증장애인이 노동을 포기한 데에는 저임금 지급을 정당화해온 차별적인 사회적 배경이 있던 것이다.

중증장애인의 직업 적응과 자활을 돕기 위해 장애인보호작업장(보호작업장)이 만들어졌지만, 이곳에서도 장애인의 노동권은 인정받지 못한다. 보호작업장에서 일했던 김진석 씨는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을 일했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받은 월급은 10만 원 남짓이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500원 정도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은 임금을 낮춰서라도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하한 임금을 정하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높아졌어야 할 고용률 역시 제자리 수준이다. 염원삼 사무국장은 “장애 정도가 심한 최중증장애인은 당장의 보호작업장 고용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중증장애인의 열악한 노동 처우에 대해 비판이 일면서 2019년 고용노동부는 중증장애인 대상의 공공일자리 사업을 시작했다.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취업지원사업)이 그 예다. 2019년 취업지원사업은 자조모임이나 상담 등의 동료지원활동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취업의욕을 고취시키는 일자리로, 중증장애인인 동료지원가가 한 달에 4명, 연 48명의 중증장애인을 새롭게 찾아 취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급여를 삭감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설계된 취업지원사업은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도한 업무와 실적 부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은 취업지원사업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장애인 공공일자리가 이윤 중심의 시장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장애계는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적 이윤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자 하는 권리중심 일자리의 추진 배경이다.
시혜의 대상에서 권리생산의 주체로
2014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공론화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인권리협약에선 장애인을 생존권·평등권·교육권·건강권·노동권을 실천하는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도록 한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생산의 주체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은 권리중심 일자리의 기본정신이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 개선 활동이라는 세 분야로 이뤄진다. 고용된 중증장애인의 노동가능수준과 속도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직무가 구성된다. 지금까지의 장애인 일자리가 비장애인의 속도와 생산성 기준을 따르던 것과 대비된다.
이음센터는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강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강사활동의 기회는 언어장애가 있는 노동자에게도 열려있다. 발달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등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것도 강사 직무에 해당한다. 노동가능수준을 고려해 당사자가 가진 장애 유형을 강사활동 직무로 구성한 것이다. 송미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이 장애인식 개선에 효과가 크다”며 “중증장애인 노동자의 가치가 직무 구성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권익옹호활동의 일환으로 장애 문제에 대해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송미란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은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장애 문제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기사 작성 업무를 구성한 이유를 설명했다. 일자리 참여자들은 각자의 속도와 여건에 따라 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글을 적기도 한다. 글을 적지 못한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한다. 이음센터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이 모든 과정이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송 사무국장은 장애인 당사자가 ‘나도 할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 권리중심 일자리가 생산해내는 권리라고 덧붙였다.
권리중심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석 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염원삼 사무국장은 “권리중심 일자리에 참여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돈을 버는 경험을 통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권리중심 일자리를 참여하고 있는 맹지영 씨는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갈비를 사드렸다며 뿌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장애학의 도전』 저자인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는 권리중심이라는 단어를 공공시민노동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공공시민노동은 시민의 권리인 노동을 공공의 영역에서 재정의한 개념이다. 공공시민노동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권리중심이라는 명칭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공공의 영역에서 보장돼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 연구활동가는 “권리중심이라는 표현을 노동권 보장으로만 해석하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일자리와 구분되지 않는다”며 “중증장애인의 노동권뿐만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노동이 생산해내는 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리중심 일자리가 만들어내는 권리가 중증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발돋움하게 한다는 의미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민간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고용한다. 중증장애인 중 뇌병변장애인이나 자폐성 성향이 강해 사회활동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 참여 기회가 우선 제공된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최근 4년 이내에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선발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탈시설 장애인이 원활히 자립하는데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해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노들장애인야학 박임당 활동가는 “탈시설을 위한 자립 조건엔 거주공간이나 수급권 충족도 있지만 노동자라는 정체성도 있어야 한다”며 “권리중심 일자리가 탈시설 정책과 연계돼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리중심 일자리에 산적한 과제
권리중심 일자리 역시 기존 장애인 고용 정책처럼 근로조건이 미흡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권리중심 일자리의 근무형태는 매일 5시간씩 주 25시간을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와 주 15시간을 일하는 복지형 일자리로 나뉜다. 최저시급인 8,720원이 적용돼 시간제는 91만 1,240원, 복지형은 68만 3,430원의 월급을 수령한다. 박임당 활동가는 “일자리에 참여하는 동안 생계수급비가 삭감되는데, 일자리의 급여가 최저시급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으로 소득이 증가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시간제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들은 생계수급비가 약 50만 원 삭감되고, 복지형 일자리는 34만 원 정도가 삭감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소득 증가분이 일자리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염원삼 사무국장은 “노동으로부터 배제돼온 중증장애인의 노동 의지를 다시금 꺾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 참여인원 확대”라고 강조했다. 2020년 서울시는 시범사업의 형태로 권리중심 일자리 260개를 만들고, 이듬해엔 대상자를 350명으로 확대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올해 일자리 참여인원은 260명으로 지난해와 같다. 김 사회복지사는 “260명은 얼핏 많아 보이지만 중증장애인 전체 인구인 80만여 명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율”이라고 지적하며, 권리중심 일자리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적 의지가 참여인원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적정 수준의 전담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권리중심 일자리의 담당자는 직무 구성부터 서류작업까지 사업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아야 하는데, 국가로부터 나오는 지원금은 전담인력 한 명의 인건비 수준이다. 김은환 사회복지사는 “서류작업에 시간을 많이 쓸수록 직무 구성에 들이는 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의 질을 위해 전담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미란 사무국장은 “장애인 노동자 4명당 전담인력 1명 고용과 같이 인력 확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노동자의 직무가 보다 구체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임당 활동가는 “권리중심 일자리 자체가 직무 내용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장애인 노동자가 수행해야하는 직무가 먼저 구체화되지 않으면, 근무 중에 근로지원인에게 어떤 역할까지 요청할 수 있는지가 모호해진다며 “직무 내용뿐 아니라 근로지원인의 역할까지도 구체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로지원인의 역할이 확정적일수록 일자리에 참여하는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이 수행하는 직무 중 핵심 업무를 제외한 부수적인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박 활동가는 “앞으로 직무가 장애인의 특수성에 맞게 구성될 수 있도록 상호 피드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공시민노동,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김도현 연구활동가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산업구조를 크게 바꿔 민간 노동시장의 일자리를 급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완전고용의 시대에 ‘생산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 민간 노동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은 빛을 발한다. 생산성과 능력 위주의 노동 패러다임을 넘어, 그간 배제된 노동이 공공의 영역에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김도현 연구활동가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배제된 존재로부터 기준을 잡아가는 것이 더욱 포괄적인 노동 개념을 구상할 수 있는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이미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노동상태에 처해 있다. 권리중심 일자리는 노동의 가치를 경제적 이윤을 넘어 사회적 가치에 둘 것을 요구한다. 누구나 ‘생산성’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산재한 시대에,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대의 보편적 과제다. 권리중심 일자리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중증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노동 사회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