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다정한 당신의 실존

사과집의 『싫존주의자 선언』(2021)
ⓒ교보문고
사과집의 『싫존주의자 선언』(2021)
ⓒ교보문고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있다. 유행 지난 신조어지만, 여전히 멸칭으로 널리 사용되곤 한다. 눈치 없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프로불편러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불편함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말한다. 지난 3월 동아제약 채용 면접에서 면접관이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는 해당 폭로가 기업을 공격하는 가해 행위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주변의 비판과 자신의 분노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프로불편러의 삶은 녹록지 않다. 작가 사과집은 그럼에도 기꺼이 ‘싫음’을 정체성으로 내거는 이들을 프로불편러 대신 ‘싫존주의자’라 칭한다. 『싫존주의자 선언』은 작가가 싫존주의자로서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담아낸 에세이다.

사과집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흔드는 일상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일이다. 글쓰기는 억울함과 분노를 털어내기 위한 소극적인 투쟁이자 분노의 원인을 짚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 되짚어보는 성찰이다. 글을 쓰는 일이 정답을 알려주지는 못했지만, 고민의 끝에서 한가지 믿음을 갖게 했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할 때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믿음이다. 아닌 것에 맞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민함으로 잘 벼린 선명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민함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소한 사건들에서 불편함을 발견하는 예민함은 피로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과집은 세상을 예민하게 감각하기를 사랑한다. 분노가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싫존주의자는 부정을 동력으로 하지만, 변화를 통한 진보를 믿는다는 점에선 낙관주의자다. 예민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에게 더 다정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이들과 손을 잡기 위해 분노한다. 그래서 싫존주의자는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애정을 기반으로 서로 연결되는 집단적 경험을 상상”한다. 사과집이 “예민한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사과집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싫존’하자고 말한다. 날선 비판의식은 때론 자신에게 되돌아와 불안과 자괴감을 주곤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감각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용기다. 그는 부끄러움을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싫존은 완벽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싫존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가치를 두고 작은 용기와 실천을 모아 자신의 존재를 꾸릴 때 감각된다. 『싫존주의자 선언』은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치지 않고 해낸 어설픈 성취를 옹호한다.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낸 서투른 용기를 응원한다. 사과집은 싫존이 어엿한 실존의 방식임을 선언하면서 날카롭고 다정한 연대를 독자에게 건넨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성장 중인 사람을 위한 어린이문학

다음 기사

성별로 구별짓지 않는 일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