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은 연고(緣故)를 혈통이나 정분, 법률로 맺어진 관계로 정의한다. 피를 나누거나 법적으로 맺어지진 않아도, 우리는 서로 정을 주고받으며 산다. 결국 연고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모든 관계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연고를 가진다. 모든 이의 삶이 존엄하듯 죽음 역시 존엄하게 다뤄져야한다.
혈연에 묶인 무연고사망자
시신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연고자 유무를 파악하는 절차를 거친다.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 ▲신원 확인이 어려워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시신 ▲연고자가 있으나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시신일 때다. 사망자가 무연고자임이 확인되면 시신은 곧바로 관할 행정기관으로 인계돼 화장 등으로 처리된다.
현행법에서 연고자는 혈연가족을 중심으로 협소하게 해석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은 연고자의 범위를 일가친척으로 한정한다. 사망한 자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 자녀·부모 외의 직계비속, 형제·자매 등이다. 법적 연고자도 있지만 우선순위가 가족에 밀린다. 사망자를 생전에 치료·보호 혹은 관리하던 행정기관이나 시신·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가 여기에 포함된다.

법적 혈연가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있다는 비판이 일면서 보건복지부는 2020년부터 법적 연고자에 해당하는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혼 관계뿐만 아니라 깊은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은 사람도 연고자 지정을 받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막상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사법상 연고자가 아닌 사람에겐 부고가 가지 않아서다. 혈연가족 외의 사람에게 부고를 전하는 일은 관청의 의무사항이 아니다. 사망자의 지인은 보건복지부의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올라오는 사망 공고를 보거나 주변 사람을 통해 사망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사망 공고가 올라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2019년 7월 춘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故 김정원 씨는 무연고자로 확인됐는데도 사망 사실이 공고되지 않았다. 김 씨의 지인들이 뒤늦게 그의 죽음을 전해 듣고 해당 관청에 항의하자 관청은 그제야 사망 공고를 올렸다. 사망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연고자의 범위가 유연하게 해석됨에 따라 가족이 아닌 지인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행정절차가 만들어졌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동자동 쪽방촌의 삶을 담아낸 책 『동자동 사람들』의 저자 정택진 씨는 “혈연가족 외의 사람은 여전히 연고자의 최하순위”라고 지적한다. 사망자의 지인이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관계증빙서류를 바탕으로 별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혈연가족과 달리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정 씨는 “무연고자의 죽음은 혈연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비정상적 죽음으로 규정된다”고 지적한다. 정 씨는 차순위 연고자에게 장례 여부를 물을지도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잦다고 덧붙였다.
연고자 있는 무연고자
무연고사망자지만 사실 연고자가 있는 경우도 많다. 연고자가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2017년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지원한 296명의 무연고사망자 중 26명은 연고자가 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는 177건으로, 두 경우를 합치면 연고자가 있는 시신이 전체의 68.6%에 달한다.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사망자보다 비율이 높다.

연고자가 있는 무연고사망자 중 사유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경제적인 이유로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는 경우는 17%다. 가족관계 단절(57%)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무연고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 김민석 활동가는 “무연고사망자는 5~60대가 가장 많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창 경제활동에 전념할 3~40대에 IMF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다. 가족관계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시신 위임 사유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경제적 사유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유가족은 고인의 치료비나 시신 안치비, 운구비, 장례비 등을 지불할 형편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의하면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 원에 달한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시도별·연령대별·성별 무연고사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당시 건강보험 가입 여부가 확인된 무연고사망자 1,902명 중 71.9%에 해당하는 1,369명이 의료급여 수급자였다.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의미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겐 80만 원의 장제급여가 나오지만, 이 정도 금액으론 장례는커녕 시신 인수도 어렵다.
생전에 가깝게 지낸 지인이 시신을 인수할 때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정택진 씨는 “법적 연고자가 된다는 건 시신 인수나 장례에 드는 모든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경제적 형편이 여유로워야 고인의 마지막을 책임질 수 있다. 정 씨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인 강영섭(가명) 씨와 故 최경철(가명) 씨의 사례를 전했다. 강 씨는 평소 가까이 지내던 최 씨의 연고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전에 경제적·일상적으로 최 씨를 돌봤고, 사후에도 모든 비용을 지불했다. 정 씨는 “(최 씨의 장례를 치른 후) 강 씨의 경제적 상황과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며 “그가 제공한 돌봄은 스스로에 대한 소모와 파괴를 대가로 했다”고 설명했다.
무연고장례가 행정절차로 환원되면
무연고사망자는 통상 장례의식 없이 바로 화장되지만, 무연고장례 지원이 최초로 제도화된 2007년 이후 점차 공영장례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늘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 공영장례조례를 제정해 화장이 이뤄지기 전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를 지원해왔다. 서울시설공단의 수주를 받은 의전 업체가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시신을 운구하면 장례식과 화장 등의 모든 절차가 하루 안에 진행된다.
화장이 끝난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은 장사법에 따라 무연고 추모의 집에 5년간 봉안되거나,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곧장 산골된다. 봉안은 화장한 유골을 시설에 보관하는 것이며, 산골은 유골을 땅에 묻거나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는 장례 방식을 일컫는다.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하는 이유는 미처 연락이 닿지 못한 연고자가 이후에 찾으러 올 가능성을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봉안이라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무연고 추모의 집은 무연고사망자 합동 추모제가 진행되는 10월 16일에만 개방된다.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을 찾아 애도를 표하고 싶어도 1년에 하루만 허용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공간 구분 없이 유골함이 빼곡하게 놓여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골함이 있는 선반들은 밀착돼있어 성인 남성 1명이 지나갈 정도의 여유공간만 있을 정도다. 이를 두고 이 활동가는 “납골당이라기보다 도서관 서고 같다”고 표현한다. 많은 유골을 관리하기엔 최적화돼있지만,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봉안된 유골을 유족이 찾아가지 않은 채로 5년이 지나면 유골은 합동으로 폐기된다. 이전에는 유골이 10년간 봉안됐다. 2019년 보건복지부는 장사법 시행령을 개정해 10년이었던 무연고사망자 유골 봉안 기간을 5년으로 줄였다. 장기간 봉안에 따른 비용 부담이 이유였다. 이동현 활동가는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애도 의식을 찾아보기 힘든 결정”이라며 행정편의적인 제도 변화를 비판했다.

연고자가 시신 처리를 위임할 경우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은 유택동산의 공용유골함에 산골된다. 공용유골함의 투입구 안으로 유골을 흘러보내는 식이다. 공용유골함은 말 그대로 공용이어서 여러사람의 유골이 한데 섞인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태헌 씨는 이를 두고 ‘잡탕’이라고 표현했다. 잡탕이라는 단어는 쪽방촌 주민들 사이에서 산골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통용된다. 주민들이 공용유골함을 잡탕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비단 유골이 섞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연고사망자를 애도할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이 씨는 “유골을 (공용유골함에) 통째로 들이붓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며 “한 움큼씩 고인의 유골을 집어 (유골함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유택동산 공용유골함은 결코 무연고사망자를 떠올리고 기억할 공간이 될 수 없다”며 “작은 평수의 땅이라도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
공영장례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총 31곳이다. 서울시를 포함한 6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5개의 기초자치단체다. 광역자치단체의 조례가 기초자치단체에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 122개의 기초자치단체에 공영장례조례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절반 정도다. 거꾸로 말하면 공영장례조례가 없는 나머지 절반의 지역에서 사망한 무연고자는 장례의식 없이 바로 화장된다는 얘기다. 여전히 많은 무연고사망자는 장례를 통한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에 무연고사망자의 애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민석 활동가는 4대 보험이 실업·질병·산재·노후의 위험을 책임지는 것처럼 장례 역시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활동가는 “형제자매 수가 줄고 1인 가구가 더욱 늘어나면 무연고사는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며 “국가가 사회의 구성원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한 마무리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현재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통계는 정책의 기반 자료가 되기엔 부실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하는 무연고사망자 통계 수치는 자료제출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자료를 정리해놓은 정도에 그친다. 수치가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무연고사망자는 665명이었지만 보건복지부의 통계는 561명에 그쳤다. 100명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관계기관이 통합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엔 고립사 사망자와 같이 다른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무연고자가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 2017년 나눔과나눔의 무연고사망자 사망장소 통계에 따르면 30%의 무연고사망자가 고립사를 겪었다. 현재 무연고사망자는 각 관청의 어르신복지과에서 담당하고, 고립사는 지역복지과에서 따로 담당한다. 김민석 활동가는 “무연고사망자 문제를 사회문제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관련 부서를 통합해야 한다”며 “숫자가 아닌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무연고사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연고사망자 문제를 행정절차로만 다루는 것을 넘어 사회적으로 애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택진 씨는 “기억하는 것이 출발”이라고 말한다. 매년 동짓날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2019년 12월 22일, 강영섭 씨는 홈리스 추모제의 무대에 서서 故 최경철 씨를 추모하고 기억했다. 정 씨는 추모제나 무연고사망자 위령제에서의 발언이 누군가에게 다다를 때, 어느 누군가는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 씨는 “무연고자의 삶은 바로 이런 기억에서 시작돼 모든 이와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나눔과나눔은 리멤버(Re’member)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Re’member’에는 무연고사망자를 기억한다(remember)는 것이 곧 무연고사망자를 다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re-member) 행위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김 활동가는 “무연고사망자의 숫자가 담지 못하는 개인의 삶을 기억하고 죽음을 애도해야한다”고 말한다. 홈리스추모제에는 기억의 계단이 있다. 홈리스 추모주간 동안 계단 위에 무연고사망자 각각의 이름이 올려진다. 이동현 활동가는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기억하고 마음 속에 간직함으로써 하나의 생애사가 완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무연고사망자에겐 죽음 이후에도 차별의 꼬리표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사회는 이들의 삶을 처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김민석 활동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연고자의 시신을 그저 처리할 것이냐, 아니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할 것이냐.” 질문의 화살은 비단 정부에만 향하지 않는다. 무연고사망자의 삶과 죽음의 문제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