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A씨는 술자리에서 같은 과 대학원생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A씨는 곧바로 술자리를 주최한 교수에게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교수는 책임을 회피했다. 사건 발생 네 달 뒤, A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학내 인권센터에 알렸다. 인권센터 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권센터 징계위원이던 동 대학원 소속 교수로부터 수업 중 성폭력 신고행위를 조롱하는 말을 들었다. 해당 교수는 A씨의 실명까지 언급했다. 또 다른 교수는 A씨에게 무턱대고 신고 취하를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총장과 인권센터장의 발언과는 정반대였다. 믿었던 동료 대학원생까지 인권센터에서 허위진술을 했고 가해자와 공간 분리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A씨는 반복되는 2차 가해를 견디며 가해자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까지 들어야 했다. 대학엔 더 이상 A씨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성폭력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사건은 2018년 12월에 발생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 은폐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대학은 ‘전남대에 문제제기 한 언론 보도를 반박하겠다’며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로스쿨 학생부원장은 A씨의 출석을 종용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전남대에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한 결정을 내리며 피해자에게 공개토론회 참석을 요구한 것에 대해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게 될 고통은 고려하지 않고 학교의 명예회복만을 중시한 처사’라고 밝혔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위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건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내 성폭력은 오랫동안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 반복됐다. 개별 사건에 대한 일시적 관심은 있었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문제를 예방할 제도적 변화는 부족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대학 내 성폭력 관련 법안들은 대부분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는 21대 국회에선 입법을 통해 지나간 사건들이 잊히지 않고 제대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적 해결의 열쇠, 인권센터
대학 내에서 성폭력 사건 조사 및 피해자 지원,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담당하는 기구는 통상 성고충 상담기구로 일컬어진다. 넓게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성평등센터, 인권센터 내 상담시설 등이 이에 포함된다. 2018년 교육부 정책보고서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전국 280개 대학 기준 대학 내 성고충 상담 기구 인력은 대학당 평균 0.9명으로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상담 담당자의 수를 줄이고 과중한 업무를 맡겼다. 상담 담당자들은 많은 경우 성폭력 사건 상담 이외에도 학생 고민 상담과 성폭력 예방 교육 및 행정 업무까지 부담해, 본래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담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과 고용 불안정도 지적된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상담 담당자 중 절반 이상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중 61.2%는 무기계약직·비정규직 형태로 고용돼 상시적으로 고용 불안을 겪는다. 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사건조사에 있어 담당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부족한 예산과 전문성, 고용 불안정 등은 문제 해결의 집중도와 완결성을 떨어뜨린다. 성고충 상담기구는 사건조사와 피해자 상담뿐 아니라 사건 분석을 통해 이후의 피해들을 예방해야 하지만, 담당자가 안정적인 업무를 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기능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이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은 성적 피해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성고충 상담’으로 그 범위를 제한한다면 다뤄지지 못하는 인권침해도 많다. 특히나 대학원생의 경우 대학원 생활 전반에 걸쳐 다중의 피해가 동시에 발생한다. 성고충 상담기구를 넘어 인권센터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2016년 인권위원회가 대학 내 인권전담기구 설치를 권고하면서, ‘대학 내 인권 문제의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가치를 걸고 전국 대학에 인권센터가 생겨났다. 그러나 2019년 12월 기준 238개 대학 및 대학원 중 인권센터가 설치된 곳은 89개뿐이다. 설립된 인권센터의 경우에도 인력과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학내에서 공동체적 해결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피해자는 고소를 통해 법적 절차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전남대 로스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인권센터의 조언대로 가해자를 형사고소했다. 신고 두 달 뒤, 가해자 징계결정 요청이 형사 절차와 연계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인권센터는 조정절차를 A씨와 상의 없이 변경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센터가 조정절차의 당사자인 A씨에게 미리 조정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을 ‘헌법 제 21조에 기반한 알 권리나 인권침해 조사 과정에 있어 적법 절차를 침해한 행위’로 봤다. 형사적 절차와 연계하기 전 신고인과 피신고인 간의 조정절차가 우선이지만, 인권센터가 이를 서류상으로만 처리하고 신고인 A씨에게 고지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형사고소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되자 인권센터는 이를 1차 가해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교육부에서 제대로 된 조사와 처리를 주문하자 인권센터는 ‘1차 가해가 없었으니 2차 가해도 성립되지 않는다’며 가해 행위를 부정했다.
공동체적 해결 노력이 중단되면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본 원칙은 쉽게 외면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변호사시험이 자교에서 치러지면서 A씨는 가해자와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보게 됐다. A씨의 공간분리 요청에도 교수들은 분리조치가 불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변호사시험을 주관하는 법무부에 민원을 넣고 나서야 분리조치가 이뤄졌다. 전남대 로스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는 또다시 학교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대학원생노조는 사법적 절차 이전에 대학 내 인권센터를 통한 피해자 보호와 공동체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담당 인력 확충과 고용안정 등 인권센터 내실화를 명시한 입법이 필요하다. 지난해 7월, 이 같은 요구를 반영해 권인숙 의원이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학내 인권교육 실시 ▲학생 위원을 포함한 인권침해 조사위원회를 인권센터 내부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인권센터 조사위원회에 학생 위원을 포함하는 방안은 오랫동안 제기된 학생사회의 요구를 담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이 문제의 근원을 짚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개정안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제시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신상숙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개최된 ‘대학 내 권력형 성범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가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신 연구원은 “실질적인 상담과 조사 활동 없이 규정상의 표현만 바꾸는 식으로 기구를 개편하고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고충상담을 겸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관행이 지속되는 한, 어떤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학내 문제제기가 곤란한 학교의 경우 광역단위로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을 조사·처리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는 등 별도의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해 교수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학교?
가해자가 교수일 경우 학내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처벌하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권인숙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20년 7월) 성폭력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교원 197명 중 절반가량(47.1%)이 정직이나 감봉, 견책 등 경징계를 받았다. 이 가운데 각각 정직 1개월과 3개월의 징계를 받고 학교에 돌아온 교수도 2명이다.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가 언제든 복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만으로 피해자에게 위협적이다. 비위행위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징계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편, 현실에선 형사 절차 진행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미뤄지는 경우도 흔하다. ‘외부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선 징계 의결 요구나 그 밖의 징계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담은 기존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이 이를 뒷받침해왔다. 뚜렷한 사유 없이 징계 결정이 늦춰지는 경우도 많다. 이번 여름 공론화되기 시작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B교수 성폭력 사건은 2019년에 인권센터에 처음 제소됐으나 징계위원회의 늑장 진행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진행이 늦어지는 만큼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됐다.

징계 절차와 징계위원회 구성이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서울대 음대 C교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C교수의 징계위원회가 개최된 사실을 고지받지 못했다. 피해자는 학교 당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와 언론 보도를 통해 가해자의 진술로만 징계위원회가 진행됐다는 것을 파악해야 했다. (*)
지난해 7월,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립학교법과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징계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당 개정안들은 ▲학생자치기구에서 추천하는 학생과 외부위원 각각 1명 이상씩 포함하도록 하는 것과 ▲최대 정직 기한을 12개월 이하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조항이다. 기존 법률에 의하면 정직은 1개월 이상 3개월 이하의 기간으로 정해져 있다. 신상숙 연구원은 교원 징계와 관련해 “일반 공무원과 다른 교원에게 최대 3개월의 정직 처분이 사실상 징계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며 기존 정직 기간의 한계를 지적했다.
최대 정직 기한을 늘리는 개정안은 ‘정직 3개월 처분’과 같은 경징계 처분에 대한 비판을 적절히 반영했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징계위원회와 관련된 법안이 개정된다고 해도 온전한 가해자 처벌을 기대하긴 어렵다. 징계에 불복할 수 있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징계를 받은 교원이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에 대한 항소를 할 수 있는 교육부 산하 기관이다. 징계위원회와 관련된 법률이 개정돼 경징계 처분이 줄어들더라도 소청심사를 통해 징계수위가 감경될 수 있다. 권인숙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비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의 징계가 감경되거나 취소된 경우는 전체 128건 중 27건에 달한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받은 5명 중 1명 꼴로 가해교수가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징계감경 혹은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중 인천대학교 A교수는 지난해 해임에서 정직 3개월로 징계를 감경받았다. 가해교수는 수년간 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력, 성추행, 성소수자·여성 혐오발언 등을 자행했지만, 소청심사위원회는 가해교수의 근속기간이 길고 첫 징계라는 이유를 들며 정직 3개월로 감경했다. 이를 두고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 홍류서연 기획단장은 “소청심사위원들이 대부분 교원이나 교육계 출신”이라며, 가해자인 교수 측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기 쉬운 구조라고 비판했다. 학생을 상대로 한 인권침해가 접수돼도 피해자를 대변할 학생위원은 참여조차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 같은 문제를 반영해 정충숙 의원 대표로 발의됐다. 해당 발의안은 성폭력 범죄 등 성비위로 인한 징계 건의 경우 여성 관련 연구자나 활동경력이 있는 비상임위원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포함시켰다. 홍류서연 기획단장은 “여성 관련 연구자를 참여토록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교수-학생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학생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선 학생 혹은 학생이 추천한 위원의 참여를 열어놓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송초롱 위원장은 “피해자의 입장을 경청해줄 수 있는 소청심사위원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이 대학 내에서 성폭력을 겪고도 피해 사실을 호소하기 어려운 구조에 주목한다. 대학원생은 인권침해를 당하더라도 학위를 받기 위해 가해학생 혹은 가해교수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송초롱 위원장은 “지도교수 1인을 중임으로 꾸려지는 연구실에선 교수에게 장학금 수여, 조교 임용 등 모든 영역에 교수의 결정권이 작용”한다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교수나 학과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문화를 지적했다. 서울대 음대 B교수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나간 일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등 피해자를 학문공동체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성폭력 피해를 밝혔을 때 대학원생은 학습권을 침해당하거나 학계에서 배척되는 등 중대한 불이익 앞에 놓이게 된다. 피해자가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안전한 공동체다.
21대 첫 정기국회에선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및 내실화, 징계위원회 학생참여 등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개정안들이 발의됐다. 그러나 그중에서 본회의를 통과해 개정이 확정된 것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고안된 ‘성폭력방지법 개정안’뿐이다.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은 각 대학의 성폭력 예방조치에 대한 점검결과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도록 여성가족부에서 요구할 수 있게 한 법안으로, 대학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인권센터나 징계위원회 및 교원소청심사위원회와 관련된 발의안들은 안건으로 상정됐을 뿐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2018년 대학 미투 이후, 대학 내 성폭력 문제는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문제가 됐다. 비슷한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제대로 된 조사와 가해자 처벌, 그리고 피해자 구제가 필요하다. 실효성 있는 변화를 이끌 법률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바로잡습니다
(*) 원 기사에서 “2019년 해임된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A교수의 성폭력 사건 징계위원회 과정에선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이 징계위원으로 가해자의 지인을 위촉하려 했던 정황이 확인돼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으나, 해당 정황은 서어서문학과 교수를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위촉하려 한 것이 취재 과정에서 와전된 것임을 밝힙니다. 독자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