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았다면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아 구걸했을 테지만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다. 살아가는데 큰일은 아니었다. 추석에 집에 못 갈 수도 있고, 그래도 (저널) 아이템이 없어지거나 엎어지거나 하는 것보단 낫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니 점점 침착해졌다. 오후 7시 40분 출발 기차를 타야 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기차역을 가려고 보니 7시 5분이었고 지하철 예상 소요시간은 36분이었다. 택시를 탔지만 연휴답게 길은 꽉 막혀있었다.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일 앞에선 초연해진다더니. 나는 마음을 비우고 점점 침착해졌다. 그런데 기사님은 신호에 걸릴까 조마조마해 하셨다. 천천히 가셔도 된다고, 고생하시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에 “아냐 미안할 건 없어! 아가씨가 기차를 꼭 타야지. 그래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온 게 보람 있지!”란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기적처럼, 기차 출발 1분 전에 플랫폼에 도착해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작년 가을, 추석을 맞아 본가로 가던 길에 있던 일이다. 기사님은 르포기사에서 인터뷰했던 경비노동자분과 많이 닮은 분이셨다. 기차를 제시간에 탈 수 있을지는 보통의 택시기사에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적당히 걱정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 기사님은 기차를 못 탈 수 있는 승객의 상황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셨다. 기사님의 목소리와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긴박함을 잊을 수 없다. 경비노동자분도 그랬다. “기사가 못 나오면 안 되잖아요? 권 기자가 고생하는데….” 한 시간의 수다 끝에 나는 ‘권 기자’가 됐고 잠시 그를 성가시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젊었을 적 다니던 중견기업에서 일찍 은퇴한 사연, 처음 경비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낯섦, 눈 오는 새벽 캠퍼스 정취. 믹스커피 한잔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젖은 눈빛 속에 이십여 년의 세월이 담겨있었다. 취재라기보단 그저 대화였다.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중략)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중략)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잠언처럼 꺼내 읽는 리베카 솔닛의 수필 『멀고도 가까운』 중 한 구절이다.
나만의 협소한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균열을 냈던 건 취재원들이었다. 마감을 앞두고 걱정만 커져가는 내 좁은 세상은 좀처럼 넓어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숨죽이며 취재원의 말을 듣다 보면 ‘좁은 나’는 사라지고 광활한 풍경만이 남는다. 막힌 길을 최선을 다해 운전했던 택시기사님처럼, 이들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적을 만든다. 이들이 기꺼이 내놓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담았다고 자신하기엔 부족함은 많고 풍경은 넓다. 흐릿한 눈을 비벼 풍경을 더 명료하게 포착하려고 노력한다. 좁은 세상을 가진 내가, 감히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