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시설화. 언뜻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단어다. 장애와 질병을 이유로 병원, 보호소, 수용소 등의 장소에 속박된 사람들을 그 장소 밖으로 인도해 지역사회로 포섭하는 일. 이는 ‘탈(脫)-’이라는 접두사를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다’로 간단하게 해석한 결과다.
탈시설화에 대한 이런 정의는 두 가지 위험을 내포한다. 하나는 시설 속 개인들을 지역사회로 내보내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낭만적 착각으로 흘러가기 쉽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시설을 물리적 공간의 문제로만 인식해 그 이상의 논의를 막는다는 것이다. 즉 탈시설화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누군가는 시설로 보내고 누군가는 지역사회에 남게 만드는 선별 기제를 외면하게 된다.
‘탈-’에는 무언가에서 벗어난 그 이후를 지향한다는 함의가 있다. 『시설사회』가 말하는 ‘탈시설화’의 핵심도 ‘시설 그 이후’다. 장애여성공감은 시설 내에 위치지어진 개개인을 빼내오자는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시설을 극복한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꿈꾼다. 공간이 아닌 시대현실로서의 시설에 주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시설사회』는 단순히 ‘시설의 문을 열고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오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안팎을 구분하는 장벽이 어떤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졌는지 파헤치는’ 사회적 재구성의 기록이다.
시설은 개발과 성장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보호’라는 미명 아래 유예해버린 수단이다. 시설은 또한, 더불어 살기 싫은 마음을 변명하기 위해 시설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고 ‘너’와 ‘나’ 사이에 금을 그은 차별의 역사를 표상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에 따르면 타인을 부정하는 마음이 빚어낸 시설 안에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자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낙인은 타인-부정과 자신-부정의 연쇄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설을 지탱한다. 이 구조에 젠더와 인종, 성적 지향 등의 사회적 조건이 교차되며 개인에게서 삶의 터전과 관계를 박탈한다.
낙인을 통한 억압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숙인, 난민, HIV 감염인, 정신장애인, 비혼모, 한부모 가정, 탈가정 청소년 등의 주체가 다양한 형태의 ‘시설’ 속에서 통제되고 배제돼왔다. 『시설사회』의 저자 22인은 각 맥락에서 이들의 삶을 증언하고, 이들이 경계를 깨고 일어서는 저항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시설사회』는 ‘보호받아야 될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해 살아간다’고 선언한다. 이는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발전주의와 정상성을 해체하고 자립과 의존을 결합해 ‘불구의 정치’를 추동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도전이다.
탈시설 이후에 마주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서문에서 나영정이 말하듯, 진정한 ‘탈시설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은 쉽지 않을뿐더러 시설이 폐쇄된 뒤의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영정을 포함한 『시설사회』의 저자들은 시설 이후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실상을 성찰하는 도전 그 자체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으리라 믿는다. 이는 바로 존엄하게 공존하는 길을 향한 사유의 힘이며, 그 길을 기꺼이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연대의 힘이다. 장애여성공감의 『시설사회』는 그 힘의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