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 ‘권기용’은 1970년대 경기도 성남에 살았던 소시민이다. 그는 과거 광주대단지 문제에 휘말려 징역을 살다 나왔다. 그에게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했다는 죄로 여러 해를 복역하고 나와서는 시방도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위험인물’이라는 딱지를 남긴 사건이 바로 1971년 ‘광주대단지사건’이다.
광주대단지사건은 1968년 서울시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철거계획에 따라 광주대단지에 이주한 철거민 수만 명이 1971년 8월 10일 정부를 상대로 벌인 생존권 투쟁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인근 판자촌을 정리하면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현 성남시 수정구, 중원구) 일대에 광주대단지를 조성하고 주민들을 이주시켰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이 이주해 온 도시엔 건물도, 상하수도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고, 이주민들은 군용천막을 지어 어렵사리 주거 문제를 해결했다. 공장 시설 등 정부가 애초 약속했던 일자리도 전무해 대부분의 주민이 실업상태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원래 고지했던 토지 대금에서 8배를 올리고 여기에 세금까지 부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구호대책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주민들은 대책위원회에서 투쟁위원회로 명칭을 바꾼 후 8월 10일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어 정부의 부당한 조처에 항의하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면담을 약속한 양택식 서울시장이 불참하자, 분노한 주민들은 관공서에 불을 지르고 기동경비대와 투석전을 벌이며 6시간 동안 광주대단지 전역을 장악했다. 그제야 서울시와 중앙정부는 구호대책과 세금 면제, 일자리 보장을 약속했다.
광주대단지사건은 해방 이후 일어난 첫 도시빈민투쟁이자 개발독재에 맞선 전국 최초의 민권운동이다. ‘광주대단지 사건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하동근 위원장은 “광주대단지사건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한가운데 뚫린 ‘구멍’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근대화가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극한의 생존조건에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하 위원장은 “이렇게 드러난 근대화의 구멍을 목격한 각지의 주민들에 의해, 국가에 생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이후 목동, 상계동, 사당동 등에서 일어난 빈민운동의 선구적 움직임이었다.
역사 속에 감춰져 잊혀가던 광주대단지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최근 활발해졌다. 특히 성남시를 중심으로 이 사건의 기억을 예술작품에 녹여내려는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은 지난 8월 <광주대단지사건 49주년 기념 문화주간>을 기획했다. 아프고 무거운 역사를 예술로 승화시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취지에서다. 뮤지컬,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재현된 광주대단지사건의 여러 결들을 짚어봤다.
그 시절 황무지를 찾아온 사람들 – 창작 뮤지컬 <황무지>
<황무지>는 광주대단지로 이주한 후 황무지와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과 무책임한 정부에 격분해 투쟁에 뛰어든 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극단 성남93’의 창작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2017년 11월 대학로 초연과 2018년 성남아트센터 공연을 거쳐 올해 ‘광주대단지사건 문화예술사업’ 공모 극예술프로그램 분야에 선정됐다. 공연 영상은 광주대단지사건 발발일인 8월 10일에 맞춰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 극단 성남93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공개됐다.
청계천 판자촌에 살아가던 ‘강 씨’ 가족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 대한 꿈을 안고 광주대단지로 이주한다. 그러나 이들이 광주대단지에서 마주한 현실은 딴판이었다. 광주대단지엔 집도, 식량도, 일자리도 없었다. 가족은 허허벌판 위 지어진 허름한 천막에서 좁쌀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몇 계절을 보냈을 무렵, 지적장애를 지닌 딸 ‘혜자’가 굶주림에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뒷산에서 쥐약을 주워 먹고 숨을 거두자 강 씨 가족의 분노는 폭발한다. 강 씨 가족과 동일한 분노를 공유하고 있던 광주대단지 사람들은 ‘배고프다’, ‘살고 싶다’, ‘우린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궐기한다.



<황무지>를 연출한 극단 성남93의 한경훈 감독은 광주대단지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해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한 감독은 “1970년 당시 광주대단지에는 수천 가구가 이주했고 그 가구들마다 애환이 있었는데, 강 씨 가족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강 씨 가족은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겪은 비극은 1970년 당시 어딘가 존재했던 진실이라는 것이다. 굶어죽은 아이들이 허다했고 새댁이 갓난아이를 잡아 먹었다는 괴소문이 떠돌았다. 한 감독은 “목숨이 위협받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강 씨를 포함해 정치에 무지했던 사람들이 궐기의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경훈 감독은 “뮤지컬만큼 광주대단지사건을 보여주기 적합한 장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장치로 구현된 군용천막은 1970년 광주대단지의 경관을 떠올리게 하며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는 황무지 사람들의 고통과 노여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역동적인 음악은 ‘우린 개돼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여기에 사람이 살아있다’는 이들의 외침을 폭발적으로 표현한다. 남루한 행색을 한 사람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은 노래의 힘을 빌려 관객의 가슴에 남는다.
못박힌 벽의 상처, 못의 공동체 – 이돈순展 <분리된 도시의 삶>
이돈순 작가의 <분리된 도시의 삶 : 광주대단지사건으로부터>는 ‘2020 성남 중진작가전’ 시리즈의 첫 번째 전시로, 7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돈순 작가는 광주대단지사건 당시의 현장사진과 기사, 르포, 문학작품 등의 자료를 검토해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설치미술 작품 ‘행위자들’에서 이돈순 작가는 광주대단지 시위 현장에서 구속됐던 22명의 시민을 형상화했다. 이 작가에게 이들은 “격렬한 시위의 주동자라기보단 공권력에 노출된 힘없고 ‘빽’ 없는 소시민들”이다. 이 작가는 입던 청바지에 에코폼을 채워넣어 시민들의 하반신을 구현했다. 절단된 허리면에 돌출된 뾰족한 못들은 이들의 마음에 맺혀 있는 응어리를 연상케 한다. 이 작가는 ‘행위자들’에 “(살 곳을 주겠다는) 처음 약속만 믿고 왔다가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내몰린 끝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담담히 담아냈다. 그렇기에 이 작가는 이들의 삶을 추적해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대단지사건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결론”이라고 말한다.
전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재료는 단연 ‘못’이다. 이 작가는 세계 최초로 ‘철정회화’라는 기법을 고안했다. 철정회화는 ‘못 그림’으로, 이 작가는 이를 “바탕재인 합판의 뒷면에서 못을 박아 앞면으로 돌출시켜 오브제를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기존에도 못을 사용한 예술작품은 더러 있었지만 못이 가지런히 박혀 있는 모습이 아니라 ‘못박은 벽 너머’에 주목한 것은 이돈순 작가가 처음이다. 못질을 가했을 때 벽이 뚫림으로써 쏟아지는 잔해들이 그에겐 마치 ‘벽의 상처’처럼 느껴졌다. 이 작가는 잔해들을 그대로 보존해 전시에 올렸다. 그는 철정회화가 “정부가 주도한 재개발과 강제이주정책의 희생자로서 서민들이 겪은 삶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기 좋은 기법”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가는 “못이 사람의 형상으로 읽혔다”고도 이야기했다. 철정회화 속에서 수천 개의 못이 촘촘히 모여 이루고 있는 군집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 작가는 “못 하나하나는 개별자로 존재하지만 합해졌을 때 공동체가 된다”며 이를 “못의 공동체”라 명명했다. 조밀하게 모인 못들 중 어떤 못은 길게 휘어져서 옆에 있는 못을 감싸고 있고, 어떤 못은 다른 못에 기대 있다. 1970년대 광주대단지에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간다움과 함께 사람들의 공동체도 무너졌지만, 이 작가의 작품 속 함께 모여 저마다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못들은 광주대단지사건이라는 상처를 극복한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게 한다.
태평동 빈집 안 삶의 흔적 – 미디어아트전 <움직이는 땅>

<움직이는 땅, 광주대단지사건>은 광주대단지사건 문화예술사업 공모의 전시 프로그램 부문에 선정된 미디어아트전이다. 이 전시는 8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 동안 성남시 골목길의 빈집, ‘태평동 2110번지’에서 개최됐다. 마을커뮤니티 공간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에서 기획한 이 전시엔 김호민·장석준·이경희·허수빈 작가가 참여해 광주대단지사건과 성남을 둘러싼 네 가지 맥락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 전시는 성남문화재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영상 형태로도 관람할 수 있다.

김호민 작가의 ‘환영, 약진 광주대단지’는 광주대단지의 시대상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궐기 당시 시위대가 탈취한 버스를 타고 생존권을 외치는 모습과 ‘환영, 약진 광주대단지’라는 현수막 아래 정치인들이 테이프커팅을 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배면에 설치한 LED 전구로 인해 이 두 가지 장면은 서로 시차를 달리하며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렇듯 김 작가는 광주대단지사건의 명암을 대조해 가려진 역사를 조명하고 당시 권력자들의 모순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김 작가가 짚어낸 역사적 문제의식은 다른 세 작가에 의해 ‘삶’의 문제로 연결된다. 장석준 작가는 삶의 현장인 ‘땅’에 주목한다. 장 작가의 작품 ‘모든 것들 위에 땅’은 도시로부터 유예된 땅, ‘나대지’ 의 표면을 날것 그대로 표현해 영상으로 기록한 아카이브다. 장 작가는 성남을 비롯한 여러 건설지 현장을 3D 매체로 스캐닝해 땅의 표피가 가진 질감을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땅 위에 세워진 도시 뒤편에 미뤄지고 가려진 삶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장석준 작가가 땅의 표면을 들여다봤다면 이경희 작가는 그 표면을 들어내고 땅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 작가는 2110번지 옆집의 방바닥 한가운데를 팠다. 장판을 들어내면 바로 시멘트가 나올 줄 알았는데, 흙이 나와버렸다. 도시를 건설할 때 한꺼번에 많은 집을 짓느라 ‘공구리’를 충분히 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흙 다음 나온 스티로폼, 시멘트, 연탄재, 벽돌, 보일러 선이 들쭉날쭉하게 섞여있는 모습을 이 작가는 ‘땅의 이빨’이라고 불렀다. 이 작가는 “부정교합처럼 얽히고설킨 채 묻힌 땅의 이빨”을 통해 광주대단지사건 이후 그 땅을 거쳐간 삶의 흔적을 추적한다.

허수빈 작가는 2110번지 2층의 어두운 방 안에 건물의 미니어처들을 배치했다. 현재 대규모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인 성남시 신흥동의 철거 직전 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허 작가는 “사람이 살지 않아 텅 빈 신흥동의 모습을 보자, 마을 안에 존재했던 수많은 이야기들도 사라져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말했다. 허 작가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도 그 답답함을 전해주고자 했다. 감상자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조명에 묻힌 마을의 미니어처를 바라보면서, 삶의 이야기가 사라진 마을 풍경이 얼마나 공허하고 불안한 것인지 실감한다.
묻어둔 아픔을 치유하려면
성남시민들에게 광주대단지사건은 오랫동안 묻어두고 싶은 사건이었다. 이런 오명은 사건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인식에 기인했다. 하동근 위원장은 “광주대단지사건에서 시민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는데, 언론은 이 사건을 ‘난동’으로, 시민들을 ‘폭도’로 서술해왔다”며, “시민이고 정부고 할 것 없이 이 기억을 지우려고 애를 많이 쓴다”고 지적했다.
성남시의 이번 기획은 지역사회에 서려 있는 과거의 아픔을 회복하는 통로로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하 위원장은 “예술은 지역사회의 아픈 기억을 녹여내고 풀어내는 ‘씻김굿’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술의 언어로 표현된 사건이 사람의 언어(문자언어)보다 사람들에게 감각적으로 다가가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이돈순 작가 역시 “이 사건을 말로써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로써 사건의 의미를 보여주고 지역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재현해내는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술은 역사적 경험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데 보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뮤지컬 <황무지>는 기존에 세 번이나 부결됐던 ‘성남시 광주대단지사건 기념사업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가결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8년 8월 은수미 성남시장은 <황무지>를 관람한 후 페이스북에 광주대단지사건을 성남시 차원에서 재조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듬해 6월 은 시장과 성남시의원들의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해당 조례안이 가결됐다. 사업을 현실화한 주체는 지방정부였지만 그 결의를 만들어낸 것은 <황무지>였던 셈이다.
뮤지컬 <황무지>가 광주대단지의 기억을 환기하려는 정책적 시도를 이끌어냈다면, 이돈순 작가의 철정회화와 김호민·장석준·이경희·허수빈 작가의 작품들은 광주대단지사건을 둘러싼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철거와 재개발, 국가폭력과 강제이주, 빈곤과 생존권에 대해서 말이다. 광주대단지사건 이후 49년이 흐른 오늘,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광주대단지사건이 남긴 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성찰할 때 비로소 그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