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토기 위로 가로세로의 금이 그어진 것처럼 보인다. 조각조각 나뉘어 묻혀 있던 토기를 이어붙이며 생긴 상처다.

  수많은 실선들이 토기의 표면을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것을 정교하게 붙여놓은 흔적이다. 천 년도 전에 백제에 살던 누군가 석촌동에서 쓰던 이 토기는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학생들이 직접 발굴한 유물이다. 관람자가 토기 하나를 둘러보고 지나가는 두세 걸음 뒤에는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서려 있다. 천 년간 묻혀있던 토기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박물관 고고역사실에서 흐른 땀방울의 흔적을 따라가봤다.

▲토기 위로 가로세로의 금이 그어진 것처럼 보인다. 조각조각 나뉘어 묻혀 있던 토기를 이어붙이며 생긴 상처다.

  발굴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에서 시작된다. 서울대 박물관 고고역사실 이정은 학예사는 “1970년대 서울 강남 지역을 활발히 개발할 때는 잠실, 서초 등지에서 발굴이 이뤄지기도 했고, 80~90년대에는 아파트단지 건설 부지에서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주목받지 못했던 유물을 학계에서 재조명해 재발굴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고고역사실에서는 작년 여주시 흔암리 유적을 재발굴해 새로운 선사 주거지를 찾아내기도 했다.

  고고역사실에는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도 발굴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 주로 수업이 없는 날에 유적지를 찾아 숙소에서 생활하며 발굴에 참여한다. 산지에서 작업이 이뤄지다보니 여러모로 힘들지만 나름의 추억도 생겼다. 손하누리(고고미술사 16) 씨는 “태풍이 와서 유적지에 고인 빗물을 하루 종일 퍼냈는데, 알고 보니 그때 쓴 바가지가 화장실에서 똥을 푸는 바가지였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수없이 반복하던 곡괭이질이나 유적지 근처에 구덩이를 파서 만들었던 간이화장실을 생각하면 마냥 웃지 못할 불편함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2019년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발굴조사 작업광경. 삽과 곡괭이, 심지어는 손으로 신중하게 유적을 발굴하는 모습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막 출토된 유물은 흙으로 뒤덮인 채 조각나 있는 모습이다. 이 조각들을 구석구석 세척하는 작업에서도 근로 장학생들의 노력은 빛을 발한다. 세척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기가 부스러지지 않게 힘을 빼고 스펀지를 사용해 닦는 것이다. 조성민(고고미술사 16) 씨는 “출토된 유물을 세척할 때엔 마스크와 버릴 옷을 챙겨 가는 게 좋다”며 나름의 요령을 전했다.

▲세척까지 마친 유물 조각들. 출토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비닐에 담겨 보관 중이다.

  조각을 맞춰 하나의 토기를 완성하는 일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작은 토기를 복원하는 데는 주로 한 달, 큰 토기는 두세 달 이상이 걸린다. 복원을 위한 도면을 그리는 작업에서부터 이들의 전공 지식은 한껏 발휘된다. 고고학 수업에서 배운 방식을 활용해 토기 도면을 그리는 식이다. 손하누리 씨는 “유물 조각들을 모아 복원할 때는 조금씩 붙여나가기보다 한 번에 전체를 붙여야 뒤틀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복원에 들인 노력만큼 토기 하나를 완성할 때의 쾌감도 남다르다. 그는 “토기 옆면에 한 조각만큼의 자리가 비어 이틀 동안 찾았는데, 어느 순간 늘어놓은 조각들 속에서 딱 맞는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며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토기 복원 작업에 한창인 근로 장학생들

  하지만 발굴된 모든 유물이 전시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정은 학예사는 “실제로는 전시되지 못하는 유물이 훨씬 많다”며 학술적으로 중요하거나 복원이 잘 이뤄진 유물이 전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편(조각)만 발굴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편들은 학술자료로 따로 보관한다”며 “평상시에 제일 많이 하는 업무가 유물창고에서 이 학술자료들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유물을 전시대에 올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발굴 이후에는 유물을 고고학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렇게 작성한 보고서를 학계에 보고해야만 도굴이 아닌 정식 발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정은 학예사의 표현을 빌리면 “발굴이 3개월 정도 걸린다고 치면, 보고서 작성은 2년이 꼬박 걸리는” 대작업이다. 그렇기에 고고역사실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보고서 작성은 발굴부터 이어진 유적 분석을 갈무리하는 뜻 깊은 작업이다. 이 학예사는 “보고서가 잘 쓰여서 도움이 됐다는 학계 종사자 분들의 말을 들을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돌이켰고, 손하누리 씨는 “최종 보고서에 올라간 내 이름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며 웃었다. 이재경(고고미술사 18) 씨는 “발굴, 세척, 복원을 한 달씩 하고 전시기획과 보고서 작성까지 하면 박물관 근로의 한 ‘사이클(cycle)’을 돌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박물관은 발굴부터 전시까지의 사이클 전체를 직접 맡아서 하는 몇 안 되는 대학 박물관 중 하나다. 이 학예사는 “대학 박물관 중에 꾸준히 발굴을 해온 곳은 별로 없다”며 직접 발굴한 유물로 전시를 기획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유물 정리와 보고서 발간 업무를 맡고 있는 메튜 콘테 보조연구원은 “발굴현장과 보고서를 넘나드는 박물관 업무는 그 자체로 보람도, 재미도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 박물관은 최근 전시구조 개편을 앞두고 유물 정리로 바쁘다.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금은 임시 휴관 중이지만, 박물관이 다시 열리면 이들의 땀방울로 되돌려낸 천 년의 시간을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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