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어디까지가 진짜인가요

리얼돌 체험방에 담긴 누구의, 어떤 욕망
▲지난 8월,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긴급액션사이렌: 말해보자, 리얼돌' 집담회가 개최됐다. ⓒ한국여성민우회

  ‘리얼돌 체험방’이란 이름엔 모순이 교차한다. 첫 번째 모순은 ‘진짜’를 의미하는 ‘리얼’에 있다. 사람과 닮을수록 더 진짜 같다고 평가받지만 리얼돌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데 있다. 체험방이라는 명칭도 모순적이다. 무엇인가를 몸소 겪는다는 의미가 담긴 ‘체험’은 한번쯤 할 수 있는 가벼운 경험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체험방 이용자의 체험은 가벼운 것으로 단정될 수 없다.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한 리얼돌은 이미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무엇이 이토록 모순적인 리얼돌 체험방을 만들었을까.

▲지난 8월,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긴급액션사이렌: 말해보자, 리얼돌’ 집담회가 개최됐다. ⓒ한국여성민우회

낯설지 않은 이름, 체험‘방’

  지난해 여름, 수입허가 판결 이후 리얼돌 산업이 확장되고 있다. 수입을 둘러싼 논란은 리얼돌이란 새로운 물건을 홍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남성 소비자들의 수요를 공략해 리얼돌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방이 사업화되는 중이다. 리얼돌 체험방은 프렌차이즈 업체가 여럿 생길 만큼 하나의 ‘유망 창업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가운데 본사 격인 창업 알선 업체들은 ‘한국 특유의 방문화가 있어 시장이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며 창업 성공 요인으로 한국의 ‘방’문화를 꼽는다. 유흥가 골목에 널린 ‘OO방’ 형태의 유사성매매업소에 익숙한 남성 소비자들이 리얼돌 체험방도 친숙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리얼돌 체험방의 전신 격인 인형 체험방의 등장부터 이미 유사성매매업소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리얼돌 체험방의 이용방식도 유사성매매업소와 닮아있다. 체험방을 이용한 남성들은 후기를 통해 체험방을 다른 방들과 비교하며 소비 경험을 나누고 가격과 접근성, 서비스 만족도 등을 평가한다. ‘OO방들도 많이 가봤는데 체험방 가보니까 저렴하고 꽤 괜찮았다’며 ‘가성비’를 따지는 후기들도 적지 않다. 이를 잘 아는 체험방 운영자들은 ‘색다른 자위’를 넘어 리얼돌과 성관계가 가능한 곳이라며 체험방을 홍보한다. 체험방 이용자도, 운영자도 ‘체험’의 목적을 성적 만족을 위한 자위가 아니라 성관계의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운영방식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용자는 입금과 동시에 비대면으로 예약이 가능하고 취향에 맞는 인형을 골라서 폐쇄된 공간에 들어간다. 과장된 여성의 성적 특징들이 조합된 리얼돌과 VR 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성행위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OO방’들을 떠올리게 한다. 페미니스트 철학 연구자인 윤지선 박사는 “남성 성욕 방출을 목적으로 한 여성 신체의 도구화가 이미 성매매산업에 의해 공고화돼 왔으며 리얼돌 체험방은 ‘여성 신체의 사물화’를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성매매산업의 진화형 버전”이라고 봤다.

어긋난 욕구가 향한 곳 

  리얼돌 체험방과 유사성매매업소의 가장 큰 차이는 살아있는 여성이 아닌 인형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이를 근거로 리얼돌이 인간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지 않으며 단순한 자위기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저 인형이고 성기구이기 때문에 합법이고 괜찮다는 논리 속에서 정당화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아닌 인형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없는 것일까? 

  여성과의 성관계 여부는 남성성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성관계 경험을 통해 남성성을 얼마나 전시하냐에 따라 이른바 ‘경험치’를 인정받는다. 경험치가 많을수록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남성들은 위계화된다. ‘성매매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에 따르면 남성들에게 성관계는 개인의 활동이 아닌 조직적이고 산업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여성인 애인과 성관계를 맺지 못하고 성매매를 통해 ‘경험’을 쌓는 남성들도 많은데 이들에게 리얼돌 체험방은 성매매마저 어려운, ‘경험’이 부족한 남성들의 선택지로 꼽힌다. 리얼돌과 체험방을 이용하는 남성에 대한 남성 커뮤니티 내부의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남성들은 리얼돌 이용자들을 향해 ‘솔직히 현타 오지 않냐’는 조롱에 가까운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의 ‘현타’, 이른바 ‘현실 자각 타임’엔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 집단에 대한 반성은 없다. 살아있는 여성과 성행위를 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인형을 찾는 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태도뿐이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웹 매거진 <아이즈>에서 리얼돌은 ‘남성의 성욕은 여성의 인체 형상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두고 윤김 교수는 ‘남성 성욕의 목적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력 감각의 획득 행위’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리얼돌이 남성 내부의 위계에 그치지 않고 여성과 남성 사이의 위계까지 강화한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몸에 대한 지배를 통해 남성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리얼돌을 사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성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는 인형을 통해 남성들은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실현하고자 한다.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의 피부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을 가진 인형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행위를 여과 없이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나아가 이들은 리얼돌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내비친다. 리얼돌을 구매한 남성들은 ‘배달이 오자마자 조심스레 옷을 입혔다’, ‘가발을 만들어 씌우고 중요부위에 채색을 했더니 더 마음에 든다’ 등의 후기를 남긴다. 성행위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옷을 입히고 꾸밀 수 있는 물건을 바라는 모습이다. 

▲리얼돌 주문 제작 업체 사이트에서는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여성 신체를 조합할 수 있도록 여러 옵션을 제시한다. (웹사이트 내용 재구성)

  제작 업체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웹사이트의 주문제작 창에는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여성 신체를 조합할 수 있도록 여러 옵션이 제시된다. 여성의 성적 특질만을 과장해 만든 인형의 피부색과 부드러운 정도, 심지어 체모의 위치와 손톱의 네일아트까지 선택할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신체를 토막내고 이를 재조합하는 것이다. 인형으로 재조합된 신체는 이용자들의 손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춰 다시 변형된다. 리얼돌 구매자들은 인형의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갈아입힐 뿐 아니라 기분에 따라 눈알을 교체하기도 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하늘 활동가는 “현실 세계에서 여성의 신체와 정신까지 통제하려는 욕구가 리얼돌을 통해 드러났다”며 여성폭력의 실현 방법은 달라지더라도 본질은 같다고 역설했다.

물화된 여성의 몸, 욕망을 담는 ‘그릇’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한다는 지적은 지난해 여름 리얼돌 수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리얼돌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는 이들은 리얼돌이 ‘여성을 남성들의 자위 도구로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시각의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행동을 해도 저항하지 않고 다 받아주는 물체, 성애화된 ‘그릇’으로서 여성을 물화한 리얼돌은 남성의 성욕이 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이런 작동방식 기저엔 남성 성욕의 일방적 방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 있다. 윤김지영 교수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논문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에서 리얼돌을 ‘남성들이 여성의 신체에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의실험 장소’로 정의했다. 같은 논문에서 ‘우리 사회가 욕망의 표준형을 공격적인 남성의 성욕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리얼돌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는 욕망의 배설소로 상정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 ‘긴급액션사이렌: 말해보자, 리얼돌’ 집담회 모둠토론 참여자들의 메모 ⓒ한국여성민우회

  리얼돌과 여성은 인형과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남성 성욕 해소를 위한 부수적 존재라는 위상을 공유한다. 때문에리얼돌이 인형이더라도 남성 성욕 해소의 맥락에서 리얼돌로 인한 영향은 같은 위상인 여성들에게로 향한다. 하늘 활동가는 리얼돌이 여성의 신체와 인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본다. 이 결과 리얼돌 사용은 “온라인상의 ‘지인능욕’과 같은 범죄부터 불법촬영, 성착취 영상 제작 등으로 이어지고 오프라인상의 범죄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일상적으로 여성혐오 범죄에 노출되는 여성들의 삶이 리얼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또한 저항하지 않는 여성 신체로 형상화된 리얼돌은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무력한 여성의 모습을 고착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주최 ‘긴급액션사이렌: 말해보자, 리얼돌’ 집담회 모둠토론 참여자들의 메모 ⓒ한국여성민우회

  리얼돌은 왜곡된 성 인식을 상징한다. SNS에서 리얼돌 이용자들은 리얼돌을 ‘강간인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리얼돌을 통한 성욕의 해소가 성범죄와 유사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범죄와의 유사성은 이들에게 반성을 촉구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강간문화’가 여성에 대한 일상적 사물화·도구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사회를 뒤흔든 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은 디지털 성착취의 잔인한 민낯을 보여줬다.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얻어낸 뒤 이를 상품화해 공유한 가해자들의 범행은 ‘강간문 화’에 의해 지탱될 수 있었다. 리얼돌과 같은 토양에서 생겨난 문화인 셈이다. 윤지선 박사는 n번방·박사방 사건이 포르노그래피나 디지털 성범죄 영상에 담긴 남성 욕망의 일방성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윤 박사는 “남성 욕망의 폭력성을 당연시하고 정상화한 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와 리얼돌 산업이 가능하게 된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누구의 것일까

  올해 5월, 무관중 축구경기에서 FC서울의 관중석에 응원 피켓을 든 리얼돌이 등장하면서 한동안 잊혔던 리얼돌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구단은 해당 인형은 리얼돌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 중 일부는 실제 성인용품사에 납품됐던 것으로 밝혀지며 제재금 1억 원을 부과받았다. 관중이 없는 자리에 리얼돌 혹은 그와 비슷한 인형을 세울 수 있다는 발상은 리얼돌을 통해 상품화되고 도구화되는 여성을 보지 못하는 무지함의 연장이다. 이날 관중석에 있던 인형 30개 중 28개는 여성의 외관을 하고 있었다. 윤지선 박사는 FC서울의 사례를 통해 “남성중심사회의 스포츠 경기장에선 운동 경기뿐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된 치어리더나 젊은 여성관객들의 신체가 성인 남성 고객의 주된 관람거리이자 재밋거리가 된다”며 여성 관객을 리얼돌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이런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신체를 도구화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리얼돌은 하나의 유망한 ‘산업’ 대상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용주 국회의원은 “한국이 전 세계 완구류 1위를 한 적도 있는데, 다른 종류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며 리얼돌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주장했다. 이 국회의원의 옆자리엔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리얼돌이 놓여 있었다. 이 국회의원이 리얼돌을 완구에 비유하며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유망 사업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옆자리에 리얼돌을 앉힌 행위는 리얼돌이 단순한 완구가 아닌 인간을 대상화한 물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윤지선 박사는 리얼돌 문제는 “남성 성욕의 방출 수단의 오락화와 연결돼 있다”고 분석하며 리얼돌 산업의 핵심목표는 ‘남성 성욕 방출 과정에서 (성적) 감각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남성 중심적 사고의 강화라는 설명이다.

▲지난 10월, 이용주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에 리얼돌을 가져왔다.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인공지능이 결합돼 대화가 가능하고 첨단 기술로 이용자의 취향을 섬세하게 반영할 수 있는 인형. 이것이 전도유망한 산업으로서의 리얼돌의 미래다. 남성 커뮤니티에선 리얼돌이 발전할수록 실제 여성들에게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남성들의 성욕이 인형으로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자유로워지지 않느냐는 의미다. 이런 주장 이면엔 여성을 통해 남성의 성욕을 배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강간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리얼돌의 등장으로 일상화되는 남성 성욕의 일방적 방출 경험은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회를 만든다. 인형이니 괜찮다는 말은 이런 현실에 대한 지적을 회피하는 일이다. 성매매처벌법을 피해 탄생한 수많은 방들은 결국 리얼돌 체험방의 토대가 됐다. 리얼돌 체험방이 그려내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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