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페스티벌을 위해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미래를 바라보다
‘비이피씨탄젠트’ 김은성 대표 ⓒ‘비이피씨탄젠트’

  지난해 페스티벌 업계는 시끌벅적했다. 새로운 시작으로 보였던 ‘지산 록페스티벌’은 개막 사흘을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화려한 출연진으로 이목을 끌었던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은 미숙한 진행과 주최 측의 무성의한 대응으로 논란이 됐다. 매해 새로운 페스티벌이 생겨나고 있지만 페스티벌 시장의 포화로 점차 페스티벌 간 개성이 사라져간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음악 페스티벌 시장은 정말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실태를 점검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살펴봤다. 

페스티벌의 새로운 지형도가 탄생하다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서울특별시가 매해 발간하는 『음악산업디렉토리북』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매해 5~60개 정도의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음악 페스티벌은 한여름에 열리던 록페스티벌에 집중된 형태였다. 몇몇 페스티벌은 록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사양세에 접어들며 사라졌지만 국내 음악 페스티벌은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4월의 ‘해브어나이스데이’부터 한 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콘셉트의 ‘더파이널카운트다운’, ‘단란한 쫑파티’까지 시기를 가리지 않고 각종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각종 페스티벌이 생겨난 상황이지만 확장된 페스티벌 시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우려의 핵심이다. 이런 우려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월드디제이페스티벌’ 등 국내 여러 대형 페스티벌을 이끈 ‘비이피씨탄젠트’의 김은성 대표는 “난항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에 많은 페스티벌이 생기기 때문에 몇몇 페스티벌의 실패가 돋보여 그렇게 보일 뿐,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페스티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비이피씨탄젠트’ 김은성 대표 ⓒ‘비이피씨탄젠트’

  서서히 시장이 포화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은성 대표는 시장의 밀도가 높아진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파이가 줄어드는 건 있다”며 생겨나는 페스티벌 의 수에 비해 수요층이 한정돼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등을 주최·주관하는 ‘MPMG’의 이동현 PL(Project Leader) 역시 “우리나라 음악 페스티벌 시장이 다른 문화 선진국들에 비해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 PL에 따르면 페스티벌 시장이 점진적으로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뛰어드는 사업자의 증가가 더 빠른 상황이다. 페스티벌 시장은 한때 고위험-고수익 사업으로 인식됐으나 이제는 위험을 감수해도 많은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레인보우 페스티벌’ 등을 기획하는 ‘VU ENT’의 한익수 대표 역시 “이미 한국 시장은 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고전적인 록페스티벌이 국내에서 부흥했을 때는 주로 특별한 라인업을 승부수로 내세웠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해외 유명 밴드나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를 헤드라이너(주연 참여 가수)로 섭외하는 식이다. 이동현 PL은 이제 페스티벌 업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차별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안정적인 재정 유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성 대표도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써서 경쟁력 있는 페스티벌을 만들어야 한다”며 라인업 외에도 무대, 음향시설, 편의시설, 가격 등 모든 요소를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뷰티풀민트라이프 2019’ ⓒ뷰티풀민트라이프 페이스북 공식 계정

  이전에는 페스티벌이 단순히 특정 마니아층만의 축제였다면 이제는 좋은 음식을 먹으며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나 그저 쉬고 싶은 사람 등 참가자층이 다양해졌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보다 대중적으로 변하며 페스티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장이 됐다. 기업, 지자체 등에게 매력적인 홍보의 장이 된 것이다. 김은성 대표는 페스티벌로 각종 부가적인 수요가 발생한다며 “페스티벌은 이제 음악을 즐기려고 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광고주와 인플루언서 등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페스티벌에서는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는 다양한 ‘브랜드존’(기업 혹은 단체가 홍보 부스를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스 블루 플레이그라운드’,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 등 기업 혹은 지자체에서 직접 페스티벌 기획사와 함께 협업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한익수 대표는 “과거에는 (페스티벌) 기획사와 대표가 일일이 돈을 구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큰 브랜드들이 페스티벌의 제작비를 주고 협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무엇이 그들을 어렵게 만들었나 

  국내 페스티벌 시장이 확대되며 미숙한 운영을 보이는 주최·주관사들 역시 눈에 띈다. 지난해 ‘디투글로벌컴퍼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디투글로벌컴퍼니’는 ‘CJ E&M’이 2009년부터 도맡았던 ‘밸리록페스티벌’이 중단된 뒤 새로 ‘지산록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페스티벌 개최 사흘 전 ‘디투글로벌컴퍼니’는 페스티벌 전면 취소를 통지하고 사과문을 공식 누리집에 게시했다. ‘지산록페스티벌’은 1차 라인업 공개 당시부터 해외 헤드라이너 없이 국내 아티스트만으로 명단을 구성해 관객들의 실망을 산 바 있다. ‘디투글로벌컴퍼니’는 사과문을 통해 ‘주관사의 업무 능력이 부족했다’고 사과했지만 부족한 섭외능력에 전면 취소라는 사태가 더해진 데 따른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지산록페스티벌’과 동일한 날짜에 진행될 예정이던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도 논란을 빚었다. 공연 전날과 공연 당일 주최사 ‘페이크버진’은 헤드라이너인 앤 마리와 H.E.R.를 포함해 몇몇 아티스트의 공연 취소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주최사는 아티스트의 요청이었다고 설명했지만 아티스트들은 그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페이크버진’은 행사 후 사과문과 함께 환불 공지를 올렸으나 환불 절차 역시 미진했다. 2019년 9월 18일부로 ‘페이크버진’은 상호명을 변경하고 소비자들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 2019’ 환불 건에 대해 집단분쟁조정이 개시된 상태다. 

  성공적인 예산 관리는 페스티벌의 존속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이동현 PL은 “실제로 불확실한 예산 확보와 불안정한 재무 구조가 페스티벌 파행 운영 및 개최 취소에 있어 크게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대표 역시 페스티벌 업계의 상황은 대부분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과거에 비해)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고 적자폭도 커졌다”고 말했다.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이 필요하다. 새로 페스티벌 업계에 진입하는 회사가 미숙한 운영으로 차질을 빚는 이유다. 한익수 대표는 “페스티벌이 안정적으로 개최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쌓여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한 기간 동안) 제작비가 마련이 안 돼서 힘들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페스티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선 경험이 필요하지만, 경험을 쌓기 위해선 안정적인 운영이 필요한 악순환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페스티벌 기업체의 안정성은 최소 조건일 뿐 페스티벌 운영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야외 페스티벌의 특성상 늘 변수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적이 바로 악천후다. 이동현 PL은 “야외에서 진행되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모이는 페스티벌은 항상 불확실성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한 ‘그린플러그드 서울’조차도 이미 예정됐던 폭우에 미흡하게 대처했고 2018년의 ‘청춘페스티벌’도 악천후 이후 불명확한 환불 절차와 소통으로 관객들의 분노를 샀다. 이 PL은 페스티벌을 기획할 때 겪는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애로사항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업체조차도 늘 불확실성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선 

  최근 페스티벌 업계에서 새롭게 내세우는 카드는 ‘환경’이다. 지난 몇 년간 페스티벌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쓰레기가 지적됐으며 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각 페스티벌이 어떻게 환경을 고려하는 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부분의 페스티벌은 분리수거를 운영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한익수 대표는 “과거에는 분리수거를 위한 스태프를 두지 않았지만 지금은 꽤 많은 인건비를 주고 분리수거하는 스태프를 고용한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평가가 달라진다. ‘트래쉬 버스터즈’의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를 도입해 일회용품 소비 자체를 줄인 ‘서울 인기 2019’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환경보호’를 모토로 10년간 자리를 지켰던 ‘그린플러그드 서울’이 지난해 악천후 속에서 비닐 우비의 남발과 허울뿐인 다회용기 사용 권장으로 관객들에게 불만을 산 것과 대비된다. 한익수 대표는 “환경적 측면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비난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몇몇 페스티벌은 분리수거를 넘어선 시도를 하고 있다. 김은성 대표는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동현 PL도 “오래 전부터 현장의 식음료 부스에서 사용되는 모든 일회용품을 (친환경 소재로) 직접 제작해 배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행동 변화를 꾀하는 각종 캠페인도 증가했다. ‘그린플러그드 서울’은 장기적으로 ‘BYE-PLASTIC’이라는 모토와 함께 아티스트들을 동원한 캠페인을 해왔다. 한익수 대표가 기획하는 ‘워터밤’의 경우 독특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워터밤’ 페스티벌은 물을 활용하는 축제로 매해 많은 수의 플라스틱 물총이 사용되는데 축제 후 물총들을 고아원이나 유치원에 기부한다. 

  일회용품 과다 소비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흐름도 눈에 띈다. 다회용품 대여 서비스를 출시한 ‘트래쉬 버스터즈’의 곽재원 대표는 기업의 일차적 목표로 각종 축제와 행사의 일회용품 문제 해결을 설정했다고 말했다. ‘트래쉬 버스터즈’ 공식 누리집에는 ‘생분해 인증을 받은 플라스틱은 약 58도의 조건에서 6개월 동안 두었을 때 90% 이상 생분해되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자연에서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환경이 거의 없다’면서 ‘현재까지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무조건 친환경적이라고 하기는 부족하다’고 써있다. 많은 축제들이 채택하고 있는 바이오 플라스틱 등의 방법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곽 대표가 기획한 ‘서울 인기 2019’는 ‘트래쉬 버스터즈’의 성공적 사례다. 곽 대표는 “축제장에 돌아다니는 쓰레기가 없다 보니 축제 서비스의 만족감도 함께 올라가는 효과를 보게 됐다”며, 올해는 여러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트래쉬버스터즈’ ⓒ‘트래쉬버스터즈’

또 다른 ‘환경’을 향해서 

  페스티벌 시장의 여러 변화를 마주하며 끊임없이 페스티벌 업계에서 도전하고 있는 그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동현 PL은 “이 일은 시장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나 분석 없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고자 진입하신 분들이 대다수고, 저도 물론 그렇다”고 말했다. 이제 국내 페스티벌의 전성기는 지났다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새로운 페스티벌이 관객을 위해 탄생하는 이유다. 한익수 대표는 “다양한 음악 산업 대신 1년간 준비해서 단 하루나 2~3일 동안 뙤약볕에서 일하는 직업을 택했다는 건 엄청난 열정이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은성 대표는 지속가능한 페스티벌에 대해 색다른 접근을 제시한다. 근무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았던 김 대표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으면 후배들도 안 들어온다”며 근무 환경이 뒷받침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업계 근무 환경이 개선돼 ‘할 만한 직업’이 돼야 페스티벌 산업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급여와 복지다. “이 일 하면 매일 잠도 못 자고 감동도 없고 돈도 못 번다”는 현실만 있다면 국내 음악 페스티벌의 미래는 밝지 않다. 

 한익수 대표는 “전문직의 경험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노예계약이나 열정페이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국가에서 시행한 노동 관련 규정들로 업계 종사자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 업계가 가야 할 길은 남아있다. ‘청춘페스티벌’, ‘원더우먼 페스티벌’ 등으로 청춘들에게 각광을 받았던 ‘마이크임팩트’가 임금 체불에 대한 고발로 논란이 된 일이 불과 2년 전이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감동을 주는 직업”이라는 말 아래 가려진 수많은 인재들이 존재한다. 하나의 페스티벌은 셀 수 없이 많은 인력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페스티벌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또 다른 ‘환경’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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