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입의 어느 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서울대 채식·동물권 동아리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모임’(비지모)의 현지(인류 17)와 세린(통계 18)을 만났다. 현지는 지난 학기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파견 교환학생을 와있었고 세린은 유럽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한 여행자였다. 기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파견됐다. 셋은 오직 비거니즘을 연결고리로 친구가 됐다.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다. (본 인터뷰는 유럽 내 코로나 19 확산 양상이 심각해지기 전에 이뤄졌습니다. 생생한 전달을 위해 반말투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유럽에선 비건으로 살만해?
민재 – 난 유럽에 오고 나서 느끼는 변화가 컸어. 나는 작년 5월부터 비건* 지향 생활을 해왔는데 지난 2학기에 너무 바쁠 땐 부끄럽게도 페스코까지 허용하기도 했어.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면서 다시 더 열심히 비건으로 살려고 노력 중이야. 여기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게 한국보다 훨씬 더 편한 것 같아. 여러분은 어떤가요?
현지 – 한국보다 훨씬 좋지. 기본적으로 알레르기 표시가 잘 돼 있어서 비건이라고 적혀있지 않아도 성분 확인이 가능해. 비건에 대한 인지도도 우리나라보다 높고. 암스테르담은 비건 식당이 많은 편이야. 물론 따로 찾아보긴 해야지. 마트에서 비건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좋아. 또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물건이나 식재료를 살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샵도 많아서 시리얼, 렌틸콩, 파스타 면 등을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어.
민재 – 스페인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트에 갔는데 사람들이 채소나 과일을 비닐에 담지 않고 채소나 과일 표면에 바코드를 바로 붙이더라고. 그래서 비닐을 쓰지 않는 내 행동이 유별나 보이지 않는 거야. 포장된 플라스틱 용기를 사지 않는 이상 플라스틱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았어.
세린 – 여긴 정말 비건 식당도 많고 비건 옵션도 많잖아. 식물유만 해도 두유, 아몬드유, 오트밀유 등등 이렇게 많고 좋은데 왜 유럽 사람들은 우유를 못 끊는 건지 모르겠어. (현지 – 내 말이.) 아… 벌써 한국 가기 싫다. 한국에선 매일 먹는 게 똑같은데 여긴 정말 신세계야. 먹을 게 너무 많고 매일 다른 걸 먹는데 심지어 다 맛있어. (웃음)

현지 – 그래서 난 유럽 애들은 진짜 비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잘 돼있는데 안 한다? 정말 한국에선 비건들은 굶어가면서 바나나랑 김밥 한 줄로 간신히 한 끼 먹고 그러는데 얘네는 널려있는데도 안 하잖아.
세린 – 비행기 기내식도 ‘우유가 들어간 서양채식’, ‘엄격한 서양채식’ 이렇게 굳이 나눠서 받는 것도 사실 이해 안 돼. 기왕 할 거 다 소젖(우유)이 들어가지 않은 걸 하면 될 거 같은데. 어제 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거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Meat is murder’이라고 완전 동물권 의식이 가득한 비번이더라고. 화장실에도 ‘Not your mom, not your milk’ 라고 크게 쓰여 있었어. 근데 모든 메뉴가 비건은 아니더라. 동물권 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소젖은 포기할 수 없는 걸까. 씁쓸했어.
현지 – 난 아직 유럽인 중에 비건을 본 적이 없어. 비거니즘 동아리를 가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베지테리언**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비건은 여기서도 정말 적고, 그래서 비건들끼리 발견하면 되게 좋아하고 그래. (웃음) 그리고 정말 꼰대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비건하기가 이렇게 수월하단 걸 모르고 고기 싸다고 막 사먹고, 그러는 거 보면 안타까워. 유럽 사람들이 그동안 지구를 망쳐온 세월이 얼마나 긴데 왜 다 비건 을 안하는지. (웃음)
세린 – 난 점점 호기심이 커져서 비건을 시작했던 것 같아. 원래 관심은 있었어. 내가 뭔가 잘못하는 것 같은데 채식은 소위 말해서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웃음) 그런데 미국 여행했을 때 옵션이 잘 돼 있는 곳에서 지내보 니까 정말 별거 아니고 맛도 똑같고. 여기는 치즈 같은 동물성 재료들이 식물성으로 대체 가능하잖아. 그게 정말 좋은 것 같아.
현지 – 내가 비건을 하니까 어떤 친구는 나한테 “비건으로 지내는 거 안 불편해?”라고 물어봤어. 그래서 난 “하나도 안 불편해. 그냥 우리가 철물점에 있는 물건이나 양말가게에 있는 양말들을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아” 라고 말했거든. 정말 그래. 오히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육식을 하는 걸 보면 슬픔과 분노를 느낄 때가 많아. 비건하기 편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게 맞다고 생각해. 세상이 바뀌면 나도 그때 바꿔야지라고 생각하면 세상은 이미 없어져 있지 않을까. 우리가 대안이 있고 선택의 권리가 있는 한에서 사회를 더 윤리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타자의 피와 살을 먹지 않는 것 너머
민재 – 비건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동물권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 동물권은 단순히 동물의 살을 먹지 않는 것을 넘어 동물 착취에 대항하는 것이잖아.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은 동물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거나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제품을 사지 않는 게 있고. 유럽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의미인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표시가 잘 돼 있는 편인 것 같아. 화장품 가게에서도 비건 제품들을 생산하는 브랜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현지 – 그치. 생활용품뿐 아니라 전반적인 동물권 의식도 한국보다 높은 것 같아. 우선 유럽은 개나 고양이에 대한 의식은 정말 높아. 개가 정말 많기도 하고.
민재 – 우리나라에선 개들을 그렇게 자주 산책시키지 않잖아. 그런데 여기선 하루에 몇 번씩 다들 개와 산책을 해서 더 많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해.
현지 – 독일은 개 키우는 집이 산책 안 시키면 한가한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고한대. (웃음)
민재 – 어, 맞아! 프랑스는 개를 입양하려면 집이 몇 평 이상이고 소득이 얼마 이상인지, 개를 산책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는지 모두 확인하고 개 입양을 허용한다고 들었어. 그만큼 고민도 많이 할 테고 그래서 유기견도 거의 없는 것 같아.
세린 – 좋다. 근데 왜 이게 확장이 안 되는 지 모르겠어. 개나 고양이에서 다른 동물들로 확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민재 – 맞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넓어질 필요가 있어. 세린이 두 달 뒤에 이탈리아에 있는 생츄어리(sanctuary)로 봉사활동 갈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생츄어리가 어떤 곳인지, 가고 싶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어?
세린 – 생츄어리는 농장에서 구조된 동물이 동물답게 살 수 있도록 가꾼 시설이야. 해체된 동물은 너무 쉽게 볼 수 있는데, 살아있는 모습은 쉽게 보기 힘들잖아. 실제 동물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알리면 더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모두 연결됐다
현지 – 얼마 전에 그레타 툰베리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비건하기 직전이나 초반에는 이런 걸 보면 ‘아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자극받았거든. 지금은 좀 지친 것 같아. 설득해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고 나도 너무 많은 쓰레기와 탄소발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해서.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지금 지구는 불에 타고 있는 상황인 데 세상은 너무 태평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툰베리는 ‘우리는 모두 패닉 상태에 빠져야 마땅한데 모두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살고 있다.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지길 바란다’고 말하거든.
민재 – 사람들은 너무나 무신경할 때가 많지. 반면에 당장 개인의 삶에 미세먼지나 코로나19 같은 게 큰 영향을 주면 “무섭다”, “맘 편히 숨도 못 쉬겠다” 같은 말 많이 하잖아. 그런데 신종 바이러스도 환경문제와 별개가 아닌 연결된 문제잖아.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않고 플라스틱 용기에 배달시켜 먹는 사람들이 많아. 그 쓰레기가 결국 이런 심각한 신종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거니까 우리 모두 그 연결고리를 인지했으면 좋겠어.
세린 – 늘 하는 말이지만 엄격한 비건 한 명보다 조금 덜 엄격한 비건, 혹은 베지테리언 여러 명이 효과적이잖아. 또 중소기업이 비건 친화적으로 바뀌는 것보다 대기업, 나아가 정부가 바뀌는 게 훨 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당장 정부에서 카페에서 일회용 컵 못 쓰게 하면서 사용이 얼마나 많이 줄었겠어. 그런 정책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한 것 같아.
민재 – 맞아. 나는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두 명과 아파트를 나눠 쓰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정말 하나도 안 하더라. 공용 쓰레기통 하나에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종이 등등 모든 걸 넣고 그걸 그냥 묶어 버리는데 너무 간편해. 계단 층마다 동그란 환풍구 같은 게 하나씩 있고 그 구멍으로 쓰레기를 던지면 그게 1층으로 내려가서 쌓여. 쓰레기를 버리러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할지 몰라도 자기가 만든 쓰레기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단 무지함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 바르셀로나는 도시 곳곳에 분리수거하는 곳이 정말 잘 돼 있는데.

변화를 만드는 우리의 선택
세린 – 나는 비건이 되기 전에는 전혀 환경주의자가 아니었어.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어.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어차피 완벽히 플라스틱을 안 쓰고 살 수 없으니, 환경을 이유로 내 선택을 제한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육식도 윤리 때문에 내 취향을 제한할 수 없다고. ‘어차피 완벽하지 못할 거, 내가 조금씩 줄여봐야 무슨 소용인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비건이 되고 나서 내가 온전히 내 선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 전엔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어. 처음 비건이 되고 막막해할 때 비지모 친구가 ‘계획적인 소비를 하면 돼요’라고 말했는데 그때 그게 나한텐 너무 충격이었어. 난 항상 충동적인 소비를 즐기고 음식점에 가서도 ‘뭐 먹지?’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즐겼으니까. 먹을 수 있는 선택지도 제한되고 식재료를 살 때도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계획한다는 게 놀라웠어. 막상 해보니까 그게 일상이 되는 건 한순간이더라.
현지 – 맞아. 예전엔 즉흥적인 삶을 살았다면 이젠 내가 어느 나라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고 살지를 고민하게 돼. 이게 내 선택을 제한한다는 느낌보단 어느 정도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좋을 때가 많아. 그리고 그 선택이 환경과 동물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대해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민재 – 많이 와닿는 말이야. 이슬아 작가가 쓴 <아무튼, 비건>의 김한민 작가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읽었는데 정말 공감됐어. 내가 스스로 내 선택지를 제한한다는 게 행복할 때도 많더라고.
현지 – 아, 맞다. <서울대저널>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저널 사람들 배달음식 많이 시켜 먹는 걸로 아는데, 여러분이 지금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쓰인 플라스틱, 정말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지구에 남아있어요. 이거 꼭 넣어줘. (웃음)
민재 – 정말 공감해. 나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학내 배달음식 문화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를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엎어진 적이 있어. (웃음) 한국에 돌아가면 사명감을 갖고 변화를 만들어볼게!
현지 – 저널에서 이런 거 해줬으면 좋겠어. 바쁠수록 많이 시켜 먹잖아, 그러니까 플라스틱 사용 실태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면서 저널에서 만들어낸 쓰레기들을 2주간 모아보는 거지. 해보세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작은 행동도 바꾸지 못한다면 그건 신념과 대의를 저버리는 거라고 생각해. 저널은 기사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작은 반향이라도 일으키려는 곳이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