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예약시스템부터 캠퍼스 마스터플랜까지, 학내 시설 이용 실태를 점검하다

  꼭 강의가 아니더라도 회의, 동아리 활동, 문화 행사 등 대부분의 학생자치활동은 캠퍼스 안에서 이뤄진다. 학생에게 ‘캠퍼스’라는 공간의 원활한 사용이 중요한 이유다. 이렇게 학생의 복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공간 관련 문제는 매해 꾸준히 제기된다. 학생들은 강의실, 세미나실, 연습실, 공연시설, 체육시설 등 다양한 공간을 예약하고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관악 캠퍼스 내 시설 이용,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돼야 할까.

학교 시설인데 왜 쓰지를 못하니

  현재 서울대학교 본부는 개별 단과대와 학과에 시설 관리 권한을 일부 위임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강의실과 세미나실은 단과대나 학과에서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2020년 4월 10일 기준 마이스누 포털에서 바로 예약할 수 있는 강의실은 8군데 남짓으로 공학관·신공학관·종합교육연구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강의실 예약은 학과 사무실을 거쳐 이뤄지고 있다.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서는 편하게 예약하기 어려운 구조다. 해당 학과나 단과대의 구성원으로 예약 조건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말이나 늦은 저녁 시간에는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하는 사람이없는 빈 강의실임에도 불구하고 예약 절차로 인해 활용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다. 인문계열 A씨는 “반방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행사나 회의를 열 때마다 과사무실 조교님에게 예약을 부탁드려야 한다”고 밝혔다.

  연습시설 이용도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연습실 규모와 개수가 주로 지적된다. 중앙 공연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았던 B씨는 “학생들의 수요에 비해 연습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며 “연습실의 규모가 작을 뿐더러 절대적인 개수도 부족해서 축제나 공연시즌에는 연습실 확보가 어렵다”고 밝혔다. B씨는 “연습실 예약에 실패할 경우 학생회관 거울이나 두레문예관 지하에서 연습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동아리연합회 정규성(철학 17) 회장은 “각 단과대의 영향력이 강하다 보니 애초에 본부가 공간문제에 손을 대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학교의 행정이 일원화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세미나실 일부를 연습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등 유연하게 공간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공연 시설의 경우 들쭉날쭉한 대관 수요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지원과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학생단체의 문화관 대관 일수는 대강당 30일, 중강당 31일, 전시실 37일에 불과하다. 풍산마당의 경우 모든 단체의 대관일을 합쳐도 총 사용일이 29일에 그치는 상황으로, 공간 활용도가 더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공연시설 예약이 쉬운 건 아니다. 이용자들의 수요가 몰리는 시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지원과 이나경 선임주무관은 “이용자들의 수요가 특정 기간에 몰려 해당 기간에는 시설 예약 및 이용에 불편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학내 체육시설 예약 시스템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종합운동장·보조운동장·종합체육관·테니스코트·농구장 등 대부분의 체육시설은 스포츠 진흥원에 소속된 공간이다. 체육시설의 예약은 스포츠 진흥원이 운영하는 자체 사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홈페이지에서 바로 예약할 수 있는 공간은 테니스코트뿐이며, 이외의 시설은 온라인 예약 후 스포츠 진흥원을 직접 방문해 사용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부 야외 시설 사용 시 부과되는 조명비 또한 스포츠 진흥원 사무실이나 경영대, 자하연 농협에서 직접 수납해야 한다. 체육관이나 체육문화 연구동의 경우엔 홈페이지에서 예약 현황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미비한 전산화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이를 이용하는 학생들이다. 스포츠 진흥원 채이배 조교는 “현재로서는 홈페이지에 추가적인 시설예약기능이나 온라인 결재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홈페이지 개설을 통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체육시설 이용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이용 시간이 대개 이른 아침이나 밤 시간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체육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한데 학내 공식 운동부와는 달리 우선예약권을 갖지 못하는 동아리의 경우는 원하는 시간대가 예약되지 않기를 빌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용 가능한 시간을 찾아 밤늦게 예약을 하게 되면 별도로 조명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부담된다.

일상적 불편 뒤에 숨은 구조적 문제

  학내 구성원들이 느끼는 소소한 불편 뒤엔 ‘공간 관리’라는 거대한 의제가 자리한다. 더 이상의 부지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건물을 어떻게 지어서 누구에게 배정할 것인지를 정하는 방법부터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건물 신축이나 재건축이 결정되는 과정에 이런 요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기획과 백인홍 사무관은 “신축이나 재건축의 경우 각 단과대에서 먼저 계획한 후, 위치·규모·예산·기획설계안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 본부에 심의를 요청하면 설계공모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의견을 수합하고 반영하는 창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고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 기부금 건물은 이런 절차마저도 따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부자가 기부협약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본부나 단과대학에서 어떤 조건으로 협약을 정하는가에 따라 절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사전 논의나 공감대 형성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따로 입찰을 거치지 않은 채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사례도 생긴다. 조항만 교수(건축학과)는 “이렇게 세워진 건물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캠퍼스의 난개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하며 “건축 기부금 사용 및 관리에 대한 절차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간관리 시스템인 CAFM

(Computer Aided Facility Management)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CAFM은 2004년에 도입된 공간관리 시스템으로 캠퍼스 내 공간 관련 자료를 데이터화, 전산화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공간관리를 위해 적절히 활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CAFM은 각 단과대별로 배정된 공간 정보를 모아 연구실·강의실·학장실·행정실 등을 제외한 초과 공간을 계산하는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조항만 교수는 이런 데이터 자체가 공간 활용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각 건물의 활용도를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공간 배정에 변동이 생길 경우 수동으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업데이트 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다”며 “CAFM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캠퍼스 계획 수립을 위한 캠퍼스 마스터플랜 연구에도 한계점이 존재한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이란 5년 주기로 이뤄지는 학내 공간 연구로, 건물의 신·증축과 더불어 종합적인 캠퍼스 관리를 위한 자료 제작을 목표로 한다. 조항만 교수는 마스터플랜 책임자가 없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담당부서가 없어 장기 계획 수립과 통합적 공간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해외 대학의 사례를 제시했다. 일부 해외 대학의 경우 캠퍼스 공간을 재구획하는 과정에서 의견 수렴과 계획에만 10년 이상을 쏟고, 해당 대학이 속해있는 지자체와도 꾸준히 소통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다양한 채널에서 의견을 수렴함과 동시에 한 명의 건축가가 마스터플랜과 건축을 담당하기에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공간 관리 및 증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스터플랜을 홍보하고 관리하는 플랫폼 개발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필요한 이유다.

열린 공간을 위한 변화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선 CAFM 이상의 시스템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항만 교수는 “방범의 목적으로 쓰이는 지문 인식 기술이나, 인간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한 모션 센서 등을 활용하면 해당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공간 활용도를 훨씬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악 과정에서 시설의 노후도가 각 건물마다 다르고, 관리 방식과 주체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시설 관리주체 통합이다. 서울대학교는 본래 하나의 학교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단위의 교육 기관을 한데 묶은 국립대학 법인으로 시작했다. 조항만 교수는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에 하나의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영주처럼 각자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전체 구성원의 이익에 맞게 공간을 조정하기 어려워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관리주체가 다르다 보니 각 단과대별 유휴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인력이나 예산에 따라 시설 관리의 질도 크게 차이나는 상황이다. 조 교수는 “공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 일관된 방향으로 마스터플랜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한다며 관리주체통합을 공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소통창구다. 공간관련 문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학내 구성원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논의해 나가야 한다. 이런 움직임을 가능케 하려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모을 기구나 플랫폼이 필수적이다. 가령 카이스트에서는 ‘문화시설자치위원회’ 같은 총학생회 산하 기구를 통해학내 문화시설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동아리연합회 김희지(철학 15) 부회장은 “공간 관련 문제를 다루는 회의에 학생들의 참관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사안을 다룰 때는 학생들의 참여권 보장과 함께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위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항만 교수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간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작정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신축하는 것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절대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구성원 사이의 합의다. 조항만 교수는 “결국 대학이라는 공간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본이고, 구성원들의 인식과 목소리가 없으면 이런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간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제는 근시안적 관점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본부와 단과대, 학생들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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