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는 항상 억압받고 고통받는 집단으로만 묘사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삶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성소수자’라는 이름만으로는 고유한 서사를 가진 퀴어 개개인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한 인터뷰이가 인용했듯, 성소수자는 누군가의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사람들고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서울대저널>에서 퀴어 개개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태, 레즈비언
Q.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한 블로그 글에 반했다. 알고 보니 쓴 사람이 여자였다. 그 사람이 멋있는 거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부정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자를 좋아했지만 계속 부정하다가 고등학교 때 누가 ‘이쪽이냐’고 묻는 말에 홧김에 인정하게 됐다. 그 이후 커밍아웃하면서 레즈비언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됐다.
Q. 커밍아웃했을 때 듣기 좋은 말이나 싫은 말은.
예를 들어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레즈들한테 ‘넌 여자 역할이겠네’ ‘(관계를) 어떻게 하냐’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어쨌거나 커밍아웃은 일상적인 일인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거기도 하니까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한 대답이 좋았다.
Q. 대학와서 불쾌한 경험이 있었나.
대표적으로는 게이혐오, MTF트랜스젠더 혐오가 많은 거 같다. 다른 정체성은 애초에 가시화가 되지 않아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또 인권교육 같은 데서 어떻게 배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술자리에서 ‘여기 아무도 그런 정신병자 없을 텐데 왜 조심해야 하냐’는 식으로 비꼬는 경우도 있었다.
Q.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그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단은 법·제도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퀴어들의 일상이 안정된 후에 문화적 변화를 꾀하는 게 현실적인 것 같다.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동성혼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
Q. 주변 성소수자 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다 살았으면 좋겠다. 일상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건데, 성소수자들은 그런 일상을 평범하게 만들기 위해서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게 된다.
#미리내, 에이젠더,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연애에 해당하지 않는다, 괴리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체화를 하게 됐다. 성별 정체성 역시 비슷하게 알아간 것 같다. 보통 사춘기 형성되는 집단이 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Q.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 있는지.
되게 사람들이 연애에 너무 집착하고 모든 것을 연애로 치환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물어보든 술자리에 가면 연애 여부를 묻는다. 그냥 없다고 답하면 넘어가면 되는데 ‘왜 없어’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 당황스럽다.
Q. 커밍아웃 한 적 있는지.
정말 가까운 사람한테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이렇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사람한테만 말을 한다. 주로 친한 사람한테.
Q.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그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당연하고. 결혼하거나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가)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체적 건강일 수도 있고 정신적 건강일 수도 있고 건강 챙겨가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웃음) 힘드시다면 주변에 문 두드릴 수 있는 곳 많다. 큐이즈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들어오셔도 되고.
#벽적, 바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 반에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고, 2학년 때 고백을 했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게 우정과는 다른 감정인 걸 알았고 이에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냥 나는 여자도 좋아하는가보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Q. 커밍아웃 한 적 있는지.
친한 친구들에게는 했지만 가족이나 학과에서는 아직 안 한 상태다.
Q.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이야기한 적 있나.
아직 부모님께서 성소수자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건 듣지 못했지만 틈만 나면 ‘너는 결혼 언제 하냐’, ‘너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이런 식으로 당연히 딸이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셔서 그런 것 때문에 커밍아웃할 자신이 안 생긴다.
Q.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그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식 개선이 제일 필요한 것 같다. 퀴어들도 관련된 문제를 얘기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상담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이런 변화를 위해선 교육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혐오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LGBT에 대한 정의, 사례 등을 잘 알려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Q. 편견 어린 시선으로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스스로한테도 항상 하는 말인데, ‘내 주변에도 LGBT가 있다는 걸 생각하자’는 말이다. 아직 정체성이나 지향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들이 옆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중요하다.
#스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바이섹슈얼, 바이로맨틱, 데미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는 여자도 남자도 있어서 바이로 정체화했다. 데미섹슈얼 같은 경우 퀴어 동아리나 퀴어 커뮤니티 소속으로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알게되면서 데미섹슈얼에 대해 알게됐고 나와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Q. 화장실 등 시설 이용에 불편함을 겪은 적은?
내 경우엔 여성 패싱이 잘 돼서 그렇게까지 문제는 없었다. 젠더퀴어 분들이나 트랜스젠더 분들의 경우 하나의 성별로 패싱이 잘 안 되거나, 패싱이 되더라도 가야 하는 화장실과 안 맞는 경우엔 실제로 불편함이 있는 것 같다.
Q. 성소수자로서 미래를 그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활동반자법이 일단 생겨야 하고 동성혼 법제화, 차별금지법도 됐으면 좋겠다. 여성 패싱된 상태로 취직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 걱정된다. 여성혐오 차원에서도 그렇고 패싱과 관련된 차원에서도 그렇다. 사회생활 잘하려면 여성 패싱이 잘돼야 하는데, 이게 즐겁지 않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이야기하고 힘들지 않을 거라고 전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젠더퀴어·논바이너리를 트랜스젠더로 인정하고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안, 에이젠더, 바이로맨틱, 그레이에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한 번도 내가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6살까진 반쯤 장난으로 중성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가 아니라면 남자라는 생각에 FTM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다가 논바이너리 스펙트럼을 알게 되서 젠더퀴어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2019년 초까진 안드로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겐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로서의 정체성도 없었기 때문에 에이젠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Q. 참기 힘든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는지.
페미니즘 관점에서 불편한 모든 것. 나아가 그것보단 모든 사회 집단에 만연한 유성애 지상주의가 가장 힘들다. 퀴어 집단 내에서도 젠더퀴어에 대한 인식은 낮고 대다수 커뮤니티가 시스젠더 호모섹슈얼, 특히 게이 위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나는 논바이너리인데다 무성애자에 가까운 편이라 나를 설명하려면 수고가 좀 더 필요하다. 그 자체가 힘들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눈먼 혐오는 이제 그러려니 한다. 그들은 적어도 나를 보니까. 하지만 내 존재와 이름을 지우려 드는 것은, 고민하고 헤매 온 시간을 부정하려 드는 것만은 견디기 힘들다. 우리는 다른 범주에 있지 않다. 당신은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잉야, 바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너무 단순하게 여자도 좋아하고 남자도 좋아하게 됐다. 엄청 어렸을 땐 모르다가 여자 쪽을 좋아하는 게 훨씬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Q.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이야기한 적 있나.
정말 끔찍했다. 들킨 거 반 얘기한 거 반이었는데. 부모님이 나를 정신이상이라고 생각하고 대구에 있는 팔공산에 데려가서 절 올리게 했다. 엄마가 특히 성소수자를 쇼 보듯이 구경한다. 지금도 트랜스젠더 분들이 하는 인터넷 방송 많이 보신다. 퀴어프렌들리해서가 아니라 우스꽝스럽고 재밌고 이상하고 그렇다는 이유로.
Q. 커밍아웃 했을 때 듣기 좋은 말이나 싫은 말은.
보통 바이한테 하는 무례한 질문은 여자 남자 동시에 만나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다. 또 개인적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커밍아웃을 너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말하냐는 식의 반응이 상처가 되긴 했다.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사이에서 완급조절이 필요한 것 같다.
Q. 기분 나쁜 편견이나 시선이 있다면.
새맞이 때 회의를 하는데 ‘나는 종교인이고 (동성애 등이)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정 의견이 맞다고 새내기에게 주입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럴 때 성소수자 관련 논의가 후퇴한다고 생각한다.
#키치오렌지, 트랜스젠더 남성, 바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처음엔 일단 여성이 아닌 건 알았다. 2차 성징 이후부터 신체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사회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크게 달라서 불만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까진 여자가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대학 와서 젠더퀴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개념들을 알아보고 공부하다 보니까 바이너리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Q. 참기 힘든 성 역할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는지.
솔직히 다 힘들다. 여성은 어떻다, 남성은 어떻다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힘들다.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대해주지 않더라도 성 역할 고정관념을 특정하지 않으면 괜찮다. 그냥 사람으로 대해주는 거니까.
Q.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확실히 이해받고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 두 번째는 그렇게까지 혐오적이지 않은데 별 생각도 없고 인식도 없는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싶은 것. 제가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수술 끝났냐고 물어보는 애들이 많다. 트랜스젠더를 MTF로만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FTM이라고 커밍아웃하기도 한다.
Q.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이야기한 적 있나.
저희 부모님이 되게 이성적인 분들이셔서 성소수자들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신다. 근데 어머니께 겨우 말씀드렸는데 이게 또 자기 가족 문제가 되니까 ‘꼭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냐’, ‘수술할 거냐’, ‘여자 좋아하냐’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셨다. 이후엔 인정을 안 하시고 아예 그냥 지워버리신 거 같다.
Q. 커밍아웃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주면 제일 좋을지.
아무 신경 안 쓰는 게 제일 좋았다. 또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겠지만 젠더퀴어, 트랜스젠더 등등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해주면 그게 제일 좋은 거 같다.
#황인중, 스물다섯, 게이
Q.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된 계기는.
초6때 어쩌다가 처음 알게 됐다. 정체화한 과정 역시 평범하다. 중학생 땐 디나이얼이어서 게이라는 것을 부정했다. 고등학교 들어오기 직전에야 스스로 인정하게 됐다. 이걸로 고민하는 게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계속 거짓말해야 하는 상황도 답답했다.
Q. 연애할 때 힘든 점은.
스킨십이나 호칭 등 다 눈치 보인 것 같다. 난 별로 눈치 안 봤지만, 애인이 눈치 보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나는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어때’ 이런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의 애인들은 다 눈치를 많이 봤다.
Q. 커밍아웃한 적 있는지.
80% 정도 오픈한 상태다. 친한 친구들은 거의 알고, 안 친한 친구들도 안다. 나한테 금전적 손해를 끼칠 수 없는 사람들은 다 알 거다. 경제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기에 금전적으로 얽혀 있는 사람에겐 말 안 한다.
Q. 커밍아웃 했을 때 듣기 좋은 말이나 싫은 말은.
확실히 싫은 말은 생각났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한 말인데 상대방이 그걸 걱정해서 했든 아니든 결국 드러내지 말라고 한 거니까 그 표현 자체가 부정적 함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또 애매모호한 주어 써서 대답하는 것도 싫다. 대답이 ‘요즘 사람들은 괜찮아 할 거야’, ‘요즘 사람들 별로 신경 안 쓰더라’라고 하면 애매해진다. 나는 상대방에게 얘기하는데 ‘왜 네 얘기를 안 하고, 일반 사람들 얘기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든다.
Q. 편견 어린, 차별적인 시선으로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분노가 치민다. 왜 그렇게 기존의 성 관념에 집착하는지, 왜 굳이 그렇게 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좀 그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훈동, 시스젠더 남성, 게이
Q. 연애할 때 힘든 점은.
항상 데이트하다가도 남들 눈치를 본다. 그 막 사람 없을 때 손 잡다가 골목이 바뀌면 급하게 손 놓고 그런 거. 친구컨셉이다.
Q. 커밍아웃 상대의 반응은.
어머니만 반응이 안 좋았다. 엄마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야기했는데, 계속 부정하시고 되게 충격받아 하셨다. ‘그건 좀 아닌 거 같다’고 말씀하시고. 그 이후로 한동안 계속 싸웠는데 결국 못 이겼다. 앞으로 고쳐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관련된 이야기를 안 한다.
Q. 충남대 내 단체들은 성소수자에 호의적인지.
인권센터가 있긴 한데 실질적인 역할이 학생들에게 와닿지 않았다.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작년 HIV 인권의 날에 인권센터에 강의실 대관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예산등의 이유로 거절당했다. 소극적이고 회피하는 반응이었다. 또 한번은 인권센터에서 혐오 발언과 관련된 세미나를 열었는데 정작 강연 내용은 완전 달랐다. 어떤 변호사가 와서 군대 정신교육 하는 듯한 자료로 강의를 했다. 이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아직도 인권센터로부터 답변이 안 왔다.
학생·소수자 위원회도 없고, 총학생회도 마찬가지로 호의적이지 않다. 2018년엔 총학생회나 총동아리연합회에서도 ‘우리 학교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기에 시기상조다’라는 식으로 가동아리 등록을 거절하기도 했다.
#고려대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 사람’ 집담회
빌리 젠더퀴어
앤디 시스젠더 남성, 호모섹슈얼
모나미 시스젠더 여성, 호모섹슈얼, 호모로맨틱
보리 에이젠더, 호모섹슈얼, 데미로맨틱
왕자 시스젠더 여성, 호모섹슈얼, 호모로맨틱
벤또 시스젠더 남성, 호모로맨틱, 그레이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모 스무 살 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니다’라고 깨닫고 헤어진 뒤 각성을 했다. 그러면서 퀴어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됐다.
왕 그동안 단 한 순간도 남자를 좋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성애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벤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됐을 때부터 ‘굳이 여자를 좋아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친구한테 못 느끼는 감정을 남자친구한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체화했다.
빌 처음엔 게이로 정체화하다가 점점 ‘나는 남자라는 성을 지정받아서 여성을 만나고 가족을 꾸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불현듯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한테 느낀 감정이 연애감정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됐다. 내 역사를 다시 쓰고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스스로를 남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사례가 있었던 것 같다. 여성성, 남성성이 뭔지 묻게 되고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젠더퀴어로 정체화를 하고 있다.
보 얼마 전까지 스스로를 시스젠더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로 패싱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으로 패싱당하는게 간편해서 머리를 기르고 다녔는데 최근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렇다고 남자로 패싱당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여성성, 남성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여자로도 남자로도 판정받는 게 싫어서 젠더퀴어라고 생각하다가 에이젠더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앤 중학교 1학년 때 이성애자가 아닌 걸 알게 됐다. 어떤 남자애한테 여성한테는 절대 안 생기던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다. 디나이얼도 아니었지만, 게이로 정체화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다. 젠더퀴어인가 트랜스젠더인가 그런 생각도 했었고, 결국 젠더퀴어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은 건 남자인 게 불편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빌 나는 그냥 트랜스젠더가 아니니까 시스젠더라고 하는 게 아니라 깊게 고민한 후에 시스젠더로 정체화했다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어본 것 같다.
Q. 참기 힘든 성 역할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는지.
모 ‘여자애가 여자애다워야지’라면서 다리 오므리고 앉으라는 말이 싫다.
벤 ‘남자애가 화장을 왜 하냐’는 말도 싫다. 요즘엔 그런 편견이 없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보 오랫동안 벽장이었어서 조금이라도 퀴어인 티가 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스테레오 타입을 고수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옷을 고를 때도 녹색이나 파란색이 좋아도 분홍색 옷을 고르고, 털털하다는 말에 약간 거부감을 느끼고 그랬던 것 같다. 여자라면 응당 이래야한다는 편견을 지키려다 보니 좋아하는 걸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빌 군대를 아직 안 다녀왔는데 ‘군대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 이런 말도 거부감이 든다.
Q. 커밍아웃 한 적 있는지.
왕 부모님 빼고 다 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진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벤 저는 커밍아웃이라는 말을 안 좋아하는 편이다. 굳이 내가 게이인 걸 왜 밝혀야 하는지 그런 생각이 든다. 이성애자들은 그런 거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는데. 커밍아웃보다는 상대가 내 성적 지향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연중에 표출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친구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가족한테는 못 말하겠다.
앤 커밍아웃을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보통 상대가 성소수자 인권에 확실하게 포용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한다.
Q. 미디어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 상에서 이야기하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많아졌다.
왕 이쪽에서만 알고 있던 문화를 꺼낸다든가 퀴어들끼리 소통하려고 만든 은어 같은 걸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 우리 문화가 아니게 된다.
모 조회수를 위한 어그로라는 건 알겠는데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즈비언 클럽 위치가 어디냐는 둥, 거기 가면 어떻다는 둥 이런 이야기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빌 그래도 가시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선 좋다. 애증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모 한 레즈비언 커플 유튜버가 있는데 항상 발언도 조심하시고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깨는 것 같아서 좋다. 항상 한 명은 머리 짧고 다른 한 명은 머리 길고 그런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니까.
왕 많이 노출되는 거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게이에 비해 레즈비언은 미디어에 노출 자체가 많이 안 됐다. 트랜스젠더도 마찬가지고.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벤 작년에 열심히 활동하면서 제일 마음 아팠던 말이 ‘네가 지금 네 행복을 위해선 스스로를 숨겨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게 현실이다. 좀 더 당당하게 살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보 퀴어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그 혐오가 당연한지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말 남기고 싶다.
빌 성소수자들에게 ‘살아서 만나자’고 말하고 싶다. 일단 자기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이걸 이겨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뭐가 됐든 간에 살아서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퀴어 축제를 하는 거기도 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생존신고 하는 느낌으로.
왕 미래세대 퀴어를 위해 ‘성공하자’, ‘힘내자’고 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으니까. 대신 ‘건강하자’, ‘행복하자’고 말한다. 그게 최고인 것 같다.
빌 할 수 있으면 후원하자. (웃음) 물론 가능한 경우에만.
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네 종교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
#숙명여대 퀴어모임 ‘큐훗’ 집담회
화분 바이섹슈얼
기믹 논모노아모리 콰젠더, 콰팬로맨틱, 콰팬섹슈얼
Q.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알게 된 계기는.
화 중학교 때 아는 언니한테 고백하고 사귀면서도 레즈비언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여자랑 사귄다고 생각했다. 대학 와서 ‘남자를 만나보라’는 소리를 듣고 남자친구를 만나봤는데 남자랑도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체화했다.
기 처음에는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다가 정체성이 많이 변해왔다. 10년 이상 고민하다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기도 하면서 지금의 정체성을 찾게 됐다.
Q. 동아리 내에선 주로 어떤 활동이 이뤄지나.
화 성소수자 모임이 중앙동아리로 등록이 안 돼있다. 등록하려면 회원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이게 되게 위험하니까. 그래서 동아리방이나 공간이 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강의실을 대여해서 주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가끔 모르는 분이 찾아오거나 외지인이 잘못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서 당황한 적이 있다. 이런 점이 무섭다.
Q. 성소수자에게 대학은 어떤 공동체인가.
기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긴 한데, 퀴어동아리에 들어오지 않거나 다른 인권 동아리에 소속되지 않은 경우에는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혼자서 그 폭력을 다 겪어내야 한다.
Q. 대학 내 인권센터나 상담센터 등에 방문하신 적이 있는지.
화 친구가 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나 시선이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고 말씀하셔서 더 힘들어했다. 학교에서 상담시설을 운영할 때 관련 교육을 하거나 그런 것 같지 않다.
Q. 성소수자 혐오 유인물, 강의, 발언, 표현 등을 본 적 있나.
화 한번은 단체명 없이 동성애자 에이즈 어쩌고 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하고, 최근엔 트랜스젠더 혐오나 입학 관련해서 단체명을 걸고 입장을 게시하는 대자보도 있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혐오 발언이 당당하게 전시된다는 게.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화 올해 숙대에 처음 입학하게 된 퀴어 신입생분들에게 학교 내에 연대하는 사람,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같이 바꿔나갈 수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 퀴어라고해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지해줬으면 좋겠다. MTF나 FTM뿐만 아니라 논바이너리, 젠더퀴어에 대해 더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런 교육이 공식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런 관심이 여론이 되고 여론은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퀴어들을 타자화하는 것도 혐오의 일종이고 범죄의 영역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했으면 좋겠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IS’ (큐이즈) 집담회
콩시 시스젠더, 레즈비언
만리향 시스젠더, 게이
낙뢰천 에이젠더,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
Q. 커밍아웃 한 적 있는지.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낙 최근 들어서 그냥 굳이 숨기지 않으려는 편이다. 이게 학교 안에선 괜찮은데 외부에선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서 학원에서 만났던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는데 ‘네가 아직 때가 아니라서’, ‘좋은 사람 못 만나서’라는 답을 들었다. 아무래도 에이섹슈얼이다 보니까 이런 무지에 의한 공격을 당한다. 또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여성 패싱을 당하고 있기도 하고 (보통) 에이섹슈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퀴어라고하면 레즈비언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콩 요새는 커밍아웃이 생활이다. 예전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일은 19살, 입학하기 직전 여자와 연애하다 헤어졌는데 직후에 남자와 연애했다. 전 애인이 화가 나서 대나무 숲에 아우팅을 했다. 먼저 당시 활동하던 밴드에서 퇴출당했다. 과 동기들과 번엠을 가서도 술 마시고 나서 ‘우리 중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거 아니냐’, ‘너랑 이 정도 놀아줬으면 되는 거 아니냐’, ‘나였으면 군대 갔다’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되게 많이 상처를 받았다. 1학년 때기도 했고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못 했고 요청할 곳도 없었다. 이후 거의 1년간 휴학했다. 그런데나중에 복학하고 보니 ‘나였으면 군대 갔다’고 한 동기가 단과대에서 학생회를 하고 있었다. (휴학한 후에) 이런 피해를 겪었다고 하기엔 너무 과거의 일이 되버렸다. 나한텐 계속 진행되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놔버렸다. 학교생활까지 포함해서.
Q.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이야기한 적 있나.
만 부모님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시다.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셔서 없다고 하니까 대학교 2학년 때쯤 ‘너 호모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는데 귀찮아서 말 안 했다’는 식으로 거짓말했다.
Q. 성소수자 동아리에 가입한 계기는.
콩 살아남으려고.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내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살려고 가입했다.
낙 그 전까지 주변 퀴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더 만나고 싶었다. 알고 보니 많았지만.
만 다른 커뮤니티에서 퀴어를 만났는데 온통 술 마실 생각밖에 안 하고 관심사가 달랐다. 편하게 학교에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가입하게 됐다.
Q. 동아리에 들어와서 좋은점은.
콩 어쨌든 큐이즈에 있으면 ‘적어도 혼자가 아니구나’, ‘이야기했을 때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구나’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나쁜 경험이 있어서 단과대라는 공간을 싫어하는데 그래서 이 공간에 더 많이 오고, 편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런 안전함이 좋은 것 같다.
낙 그리고 다양한 전공생을 안심하고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농담 안 하고 거의 모든 단과대 사람을 한 명씩 알게 됐다.
콩 그러면서 교수나 수업시간, 학과 분위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듣고 전공 서적도 많이 얻고 그렇다. 성 소수자라는 공통점에서 개인을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니까 안정감도 크고 서로 신뢰가 생긴다.
Q. 동아리 내부의 독특한 문화가 있나.
낙 다른 학교와 성소수자 모임과 달리 활동명과 이름을 같이 쓰는 게 큐이즈만의 문화다.
콩 활동명과 이름을 부를 때 각각 반응도 다르고, 호칭이 주는 친밀감도 다른 것 같다.
Q. 다른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가 있나.
만 자체적으로 학기마다 세미나를 진행한다.
콩 작년엔 ‘드랙’이라는 문화에 대한 세미나도 진행하고 무성에 세미나도 열었다. 잘 모르는 분야의 경우 연사님들을 모셔서 같이 강의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동아리 내부에 당사자가 있는 경우엔 당사자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신입 분들이 오실때 마다 ‘이 공간은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성이 함께하는 공간이라서 상대에 대한 인위적 추측을 삼가해 달라’라고 부탁드린다. 또 언니·오빠·형·누나 같이 성별을 내포하는 지칭어들도 사용하지 말자고 약속하기도 한다.
Q. 성소수자에게 대학은 어떤 공동체인가.
콩 그나마 안전한 건 맞는 거 같다. 물론 학교마다 편차가 크긴 한 것 같다. 그래도 맨몸으로밖에 던져져 있는 것보단 학교 안에 있는 게 조금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성소수자 모임이 있어서 특히나 그렇다.
낙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공론화해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Q 새터, 술자리, 엠티 등등 대학 행사 과정에서 겪은 문제나 불편함이 있는지.
만 새내기시절 새터 때 남자방 여자방 서로 갈라진 후에 선배나 동기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 세 명 고르는 게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학우가 없으니까 그냥 착한 친구를 골랐다.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해서 다음 해에 바로 없앴다.
낙 연애 관련해 고통받는 게 참 많다. 특히 이상형을 묻는 것.
콩 술자리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추측성 발언이 난무한다. 그중에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안 만난다.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 유명한 말인데, 퀴어는 당신의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고 옆에 있는 이웃일 수도 있다.
콩 성소수자는 지금 사회에서 항상 편견이나 차별이나 혐오적인 행태들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냥 유감이다. 되게 많이 유감스럽다. 계속 무언가에 날을 세우고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그래서 성소수자들에게 정신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건강하게 잘 살아서 내일 또 봐요’라는 인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으면 좋겠다.
낙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힘들겠지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일그러졌다고 해도 끝까지 가보자고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다들 지금 있는 나를 더 아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