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톡방’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한 인간을 단지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성적 대상화’의 결과였다. 성을 대상화하는 행태는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서울대저널>은 성적 대상화에 대한 인식과 성적 대상화가 일어나는 대화의 원인 및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학부생 인터뷰를 실시했다. 인터뷰는 ‘인문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과 성적 대상화에 문제의식을 가진 남성 4명과 여성 3명, 총 7명(A~G)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인터뷰이의 신원보호를 위해익명으로 진행됐다.

‘인문대 단톡방 성폭력 사건’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A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많이 실현됐다고 생각하며 여성혐오(misogyny)가 만연하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우리 사회의 성(性)인식이 생각보다 뒤처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B 묻힐 수도 있던 사건이 공론화되고 공동체적 해결이 모색된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의 이름으로 붙은 자보에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된 것은 안타까웠다.
D 인문대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충격적이었다.
E ‘친구한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과거라면 ‘남자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공론화가 이뤄진 것이 다행이었다.
이번 사건을 어떤 이유에서 성폭력이라고 인식하는가?
A 가해자와 피해자가 특정됐고 피해자는 상당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C 대상의 특정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성적 대상화 자체가 거론되는 대상을 존중하지 않고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기 때문에 성폭력이다.
D 가해자들은 성을 매개로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객체화시키고 여러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희롱했기 때문에 명백한 폭력이다.
F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차별과 부당한 대우는 모두 성폭력이며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적 대상화는 대상화된 당사자들에게 어떤 피해와 상처를 입히나?
C 같은 공동체의 일원인 가해자들이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소모적인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F 자신의 신체가 분절돼 평가를 당했다면 이를 피하기 위해서 옷차림을 조심하게 되는 등 행동의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피해자뿐 아니라 이 사건의 영향을 받은 다른 모든 여성들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G 반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더더욱 수치심과 배신감, 상실감 등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A 이번 사건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 인식이 가장 문제적이다. 이번 성폭력 사건이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B 공동체의 회복이 핵심이다. 반 공동체의 이름이 공개되고 알 만한 사람들은 사건 당사자들이 누군지 다 알게 됐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옳은 방향이었을까. 사건 당사자는 물론이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까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D 사회적으로 남성은 주체, 여성은 객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젠더권력 문제가 중심이 돼야 한다. 먼저 ‘남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라는 신화가 해체돼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역사적으로는 진보의 결과였듯, 여성을 객체화하는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성찰하는 담론이 필요하다.
E 이번 사건의 원인이 개인적 일탈인지 또는 사회구조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건 당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본인이 특정인을 성적 대상화한 일상의 대화 또는 단톡방에 참여하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했는가?
A 작년에 반수를 했고 지금도 그때의 남자 카톡방이 있는데 신입생 때부터 외모평가는 많았다. 친구들이 전역하고 나서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방식으로 ‘○○가 자취방 구했다는데 집들이 갈래?’라는 등 노골적인 이야기가 늘었고 ‘신고당하면 망할 각’이란 말도 나왔다.
B 남고 친구들끼리의 카톡방에서는 만연하다. 연예인을 주로 성적 대상화하고 그 수위가 매우 높다. 이런 대화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학내에서 이런 대화는 없지만 주위에서 ‘남자가 이런 일은 해야지’라는 등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C 이전 남자친구가 친구들과의 카톡방에서 나와 가졌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했었다. 그는 나를 성적 대상화한 것에만 사과했을 뿐 성적 대상화 자체는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여자들도 수위는 낮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농담’을 한다.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저지하기는 힘들다.
E 남고를 다닐 당시 여성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음담패설은 많았다. 재수학원에서는 같은 학원에 있는 여자들의 외모평가는 물론이고 보다 성적인 이야기도 했다. 이때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하고 그 친구들과 거리를 뒀다.
G 카톡방에서 ‘섹스하고 싶다’ 등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 말은 있었지만, 특정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발언은 없었다.

한동철 PD는 ‘프로듀스 101’ 제작 취지를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일보
성적 대상화를 하는 대화가 만연하다고 생각하는가?
A 만연하다. 카톡방 성폭력 사건 이후 반수 시절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대다수가 ‘음담패설이나 성적 대상화는 그냥 다 하는 것 아니냐’ 정도의 인식이었다.
B 서울대라는 집단이 좀 특수할 뿐 성적 대상화는 만연하다. 다른 대학의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술자리에서 전 여자친구와의 성 경험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친해지기 위한 방편 정도로 성적 대상화를 생각하는 것 같다.
C 어느 정도는 남녀 상관없이 그렇다. 남자 친구들이 내 앞에서 말조심 하는걸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어떤 인문대 친구는 ‘인문대에선 외모평가를 못 한다’, ‘그런 말하면 대자보 붙는다’ 등 꼰대 분위기가 싫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D 우리 사회는 성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 되는 반면 성을 매개로 누군가를 객체화시켜 희롱하는 경우는 흔한 것 같다.
G 주변에서 성적 대상화에 관한 대화를 거의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연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성적 대상화로 인한 피해자가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런 대화는 어떤 계기에서 시작되고 사람들이 이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남자끼리 뭐 어때’라는 인식이 있고 그저 재밌으니까 농담소재로 사용한다. 그런 집단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정도의 의식개선이 필요하다.
B 남성집단에서 성적 대상화는 유머 코드로 수용된다. 성적 대상화를 하는 발언에 ‘ㅋㅋㅋ’로 응답하거나 누군가는 불편해도 티를 내지 않기 때문에 발화자는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고 느낀다. 여기서 정색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성적 대상화가 유머로 통한다는 자체가 성적 대상화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C 누군가를 함부로 말함으로써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느낌, 일종의 권력을 누리는 것 같다. 설령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도 눈앞에 없다면 약자기 때문에 더 심한 말을 할 수 있다. 잘못된 남성성도 영향이 있다. 성적 대상화를 사회적으로 ‘그래도 된다’고 허락한 느낌이고 성적 대상화 자체가 더 멋진 남성임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 같다.
D 불평등한 젠더권력이 원인이다. 야동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야동도 남성이 강간 피해자인 경우는 없었다. 남자는 원래 성욕이 강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반면 여자는 야동을 보거나 성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상한 눈초리를 받고 순결을 요구받는다. 또한 누군가를 대상화하는 것은 자신이 그보다 우위에 있거나 그로부터 얻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 집단에서 단순한 재미로 여성을 대상화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발언을 함으로써 모종의 우월감도 느끼지 않을까.E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는 말처럼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기 때문에 개인적 일탈로만 보기는 힘들다. 성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남성일 경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반면 여성은 ‘걸레’로 비하되기도 한다.
G 가장 큰 원인은 가해 학생의 잘못된 성 윤리다. 잘못된 발언이 카톡방의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제지당했다면 좋았겠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생각에 그랬을 것 같다.

빠르고 편리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카카오톡이지만 가해자들은 이를 이용해 일상적인 성적 대상화를 자행했다. ⓒ한민희 사진기자
성적 대상화를 하는 대화가 일상보다 단톡방에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B 그렇다. 현실 대화는 내가 대꾸하지 않을 경우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카톡방에서는 개개인의 반응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무시하기도 쉽다.
C 카톡방에선 얼굴을 마주보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익명성이 생기고 현실에선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기도 쉽다.
D 개인적으로 하기 힘든 말도 단체 카톡방에선 더 편하게 나오고 사진과 동영상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성적 대상화를 더 쉽게 한다고 생각한다.
E 단톡방이든 현실 대화든 성적 대상화는 만연하고 그 구분은 의미 없다.
성적 대상화와 그것이 야기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 및 공동체가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D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기저에 있는 권력관계를 고찰해야 한다.
E 자기가 느끼는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개개인의 노력이 요구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 차원의 토론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F 방관하는 것 또한 대화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그런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B 소모적인 논쟁들로 성폭력과 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퇴색된 것 같다.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못한 일이다. 또한 반 공동체의 실명이 공개됨으로써 사건 당사자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피해가 생겼다. 공동체 내 성폭력은 항상 공동체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면 좋겠다.
C 적어도 어떤 주장을 하려면 자기 안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도 결백하지는 않다. 자신부터 바뀔 수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D 농담과 장난으로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제기된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부했으면 좋겠다.E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인권을 이야기할 때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것이 공동체적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반작용일 수 있지만 이를 최소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