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말라’는 포스트잇

  아직 중앙도서관 터널에 ‘인문대 카톡방 성폭력 고발’ 자보가 붙어있을 때였다. 세 장짜리 자보의 마지막 장 한 귀퉁이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가 “카톡 내용 보며 웃지 마세요”라는 말을 적어둔 포스트잇이었다. 반대편, 가장 왼쪽 자보에는 포스트잇을 보며 웃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대단히 유쾌히 웃고 있진 않았고, “쟤네(가해자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왜 사냐”쯤 되는 대화를 곁들여 가해자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포스트잇은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자보 세 장의 가로 길이는 2미터 50센티 쯤. 작은 포스트잇이 눈에 띄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왜 누군가는 웃을 수 있었고, 누군가는 ‘웃음’조차 용납할 수 없었을까.

  자보 앞에서 웃을 수 있었던 사람은 이 사건과 자신이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 사건의 가해자도 아니고, 해결해야할 책임도 없으며, 이 같은 사건의 피해자가 될 거란 상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가해자의 행동은 잘못됐으나 여느 범죄가 그렇듯 개인의 일탈이었고, 우연한 잘못이었을 뿐이다. 가해자를 엄하게 징계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공동체 문화나 일상의 언어가 잘못됐음을 물고 늘어지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에겐 이런 사건이 일어날리 없으며 있다 해도 비웃어 넘길 수 있다.

  또한 이 사건이 충분히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만이 웃을 수 있었다. 누구도 방화범이나 살인범 같은 흉악범의 이야기 앞에서 웃지 않는다. 가해자의 범죄가 웃어넘기기엔 너무 끔찍하고, 우리가 피해자의 처지에 공감하면 차마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보를 앞에 두고 웃은 이들은 이 사건이 웃지 말아야할 만큼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공동체 어느 한 편에는 이 사건을 웃어넘길 수 없었음은 물론, 웃는 사람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있다. 그들에겐 이 일이 자신에게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이들은 이미 일상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성적대상화 발언들을 듣고 겪어왔다. 그리고 성적대상화 발언들은 이들에게 어느 흉악 범죄만큼이나 심각한 인권침해로 다가왔다. 자보에 붙은 포스트잇은 그런 이들 중 하나가 붙였을 것이다.

  연세대와 서강대에서도 유사한 카톡방 성폭력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카톡방 성폭력이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경험을 통해 증명돼 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웃지 말라’는 포스트잇이 그저 예민한 누군가의 우려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인문대 X반 사건에는 한 명의 내부고발자도 없었다. 단지 시민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8명의 사람들이 한 카톡방에 우연히 모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이런 대화들을 자신과는 무관한 일 혹은 그럴 수 있었던 장난으로 여겨왔기 때문은 아닐까. 자보와 함께 사라진 포스트잇을 대신해 다시 말한다. “카톡 대화 내용 보며 웃지 마세요.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분명한 인권침해 사건입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 기사

“나쁠 거 없어, 모두 마술이니까”

다음 기사

[속보]서울대병원 진단 논란 속 ‘백남기 농민 추모 대회’ 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