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열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BS ‘다큐프라임’과 함께 들어본 ‘학내 서열화’

  <서울대저널>은 지난 2월부터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과 함께 ‘공부의 배신(가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공동 제작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좌담회와 인터뷰 일부를 기사로 담아봤습니다.

좌담회 참가자(이름 가나다순)

김건우(경제 14), 김보연(정치 13), 김용모(자유전공 11), 김종철(영어교육 11), 박혜송(언어12), 연희(가명, 윤리교육), 오민식(재료공학 13), 이자영(영어교육 12), 이정은(사회과학 16), 조현(전자공학 13)

  ‘헬조선’으로 요약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학생들 사이에는 ‘필요한 것은 더 이상 공부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공부’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치열한 생존에 내던져진 학생들은 입시 결과와 취업 성적으로 자신들이 속한 학과마저 점수매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최근에는 입학 전형, 출신 고등학교에 따라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지균충’, ‘수시충’과 같은 말은 각박한 서열화에 혐오까지 덧씌워진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서열화를 정말 내면화하고 있을까.

1) 입학 전형에 대해

저널 학내에서 자신의 입학 전형에 대해 평가하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나?

지역균형선발전형(지역균형)으로 입학했고, 학내에서 서열화를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지역균형으로 입학한 학생 스스로가 열등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대학에서 만난 과학고 출신의 친구들은 선행 학습을 상당 부분 해 놓은 상태고 전공 공부에 있어서도 앞서 나간다. 그 친구들에게 차별받은 경험은 없지만 내 스스로가 차별을 만들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끄러웠다.

정은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친구들이 입학 전형을 많이 물어봤다. 정시를 통해 들어왔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감탄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수시충’이라고 비하했다. 내 입장에서는 수시 입학을 위해 스펙을 관리한 친구들이 더 대단해보였는데, 이게 서열화인가 싶었다.

용모 정시라는 말이 주는 임팩트가 있는것 같다. 이름에 바를 정(正)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예전에는 정시 전형에 대해 자부심을 많이 느꼈다. 나 같은 경우는 내신이 굉장히 낮았는데, 지금처럼 자유전공학부가 모든 학생을 수시 전형으로 뽑았다면 나는 자유전공학부에 들어오지 못했을 거다. 나와 같은 사람이 올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게 탐탁찮았고, 그래서 수시가 싫었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 와 복학해서 보니 오히려 수시로 입학한 친구들이 더 잘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 때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혜송 인터넷에서 본 것 말고는 전형에 한 차별을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은 있었다.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과 비교해서 드는 열등감이었고, 특히 1학년 때 그게 심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기가 죽어 나서지 못했다.

2) 소속 학과에 대한 인식

저널 학과별 서열화가 존재한다고 보나?

연희 교사를 진로로 고려하고 있어 사범대에 입학했는데, 사범대라고 밝혔을 때 “서울대까지 가서 교사를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용모 서울대학교에 대해 수능 성적 배치표 이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배치표만 보고 얘기하는 측면이 있다. 입시 결과(입결)만 놓고 보면 학과별로 큰 차이가 없다.

저널 현행 입시제도에서는 수시로 입학하는 학생이 과반이고 그 중에서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입학하는 학생이 다수다. 그럼에도 아직 학과별 입결을 따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용모 전통이 안 없어진 거 아닌가? 다른 대학의 경우 여전히 수능점수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기도 하고.

건우 아무래도 상경계열이 취업이 잘 되기 때문에 입시에 있어서도 인기가 있고, 자연히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점수도 높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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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학생들 사이에서의 서열 의식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EBS

3) 서열화의 존재

저널 입학 전형과 학과에 따른 학내 서열화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자영 있어도 1, 2학년 때까지인 것 같고, 2학년 때부터는 사실상 없는 것 같다. 저학년 때는 입결이라는 수치 때문에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을 위해 복수전공도 하게 되니 그런 의식이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 같다.

용모 1학년 때는 솔직히 할 얘기가 그거밖에 없지 않나? 입학 전형이나 학과로 자기를 정의하려 하는 것 같다.

저널 경제학부나 경영학과의 경우 복수전공 학점 컷이 4.0에 육박한다. 입결이 높은 학과의 복수전공 학점 컷이 높은 것이 서열화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나?

용모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유전공학부에 들어와 일단 경영학과에 진입했다. 적성과는 별개로 다들 좋다고 하고 취업이 잘 된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다. 자유전공학부는 복수전공이 의무인데, ‘하나는 밥 먹고 살 것, 하나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자’는 원칙으로 복수전공은 동양사학과를 선택했다. 경영학을 전공함으로써 밥벌이는 해결됐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대체 뭐 먹고 살려고’라는 말을 하시더라.

종철 처음 영어교육과에 진학했을 때 아버지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영어교육과 나와서 취업 못 한다”고 걱정해서 경제학을 복수전공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 중간에 그만뒀다. 그만둘 때도 주위에서 “좋은 학과를 왜 버리니?”, “취업할 생각 있니?”라고 닦달했다. 상경계라는 타이틀이 갖는 이미지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사범대에서 남학생들은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많이 느껴 컴퓨터공학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기도 한다. 고학년에 올라가서는 다소 덜해졌지만 나 스스로도 1, 2학년 때는 이런 강박관념을 많이 느꼈다.

정은 나는 아직 사회과학계열 학생이고, 2학년 때 전공을 정해야 한다. 수능을 잘 보자 다들 “경영학과를 가겠네”라고 말했고,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하자 “경제학부 가겠네”라고 말했다. 경제학부에 갈 수 있는데 왜 다른 학과를 선택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건우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했고, “당연히 경제학부 가겠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사회과학 전공 수업을 들어봐도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그냥 경제학부를 썼다.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해 경제학부로 가는 사람은 대부분 경제학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타 학과에 흥미를 잘 못 느끼는 상태에서 주위에서 좋다고 하는 경제학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보연 같은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했고 전공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대부분 경제학부로 몰렸지만 나는 입학 때부터 하고 싶었던 전공을 선택했고, 소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모든 학문은 가치가 있고, 따라서 학과에는 귀천이 없다. 문제는 직업을 선택할 때 서열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4) 사회의 시선

저널 의견을 종합해보면, 서열화의 실제적인 근거는 없지만 사회의 요구나 외부의 시선에 따라 그러한 인식이 생겨난 것 같다. 사회에는 왜 특정 학과에 대한 선호가 존재한다고 보나?

정은 결국 입시의 기준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입결에 따라 소위 말하는 ‘좋은 학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고3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나 역시 수능을 본 후 배치표에 따라 사회과학계열에 진학했다. 부모님, 회사, 사회 전반의 기준이 반영된 대학 입시 결과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용모 사회에서 경영학과 학생들을 선호하는 것이 곧 경영학과 학생들이 더 똑똑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기업 등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학과의 서열이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곧 실력 차이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혜송 서울대생들은 자신이 전공하는 학문, 과에 대한 자부심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 타 학교에서 경제, 경영학과의 서열이 높고 입결에 따라 학과들을 줄세운다 해도, 서울대는 그러한 줄세우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않나.

자영 우리가 서울대 안에서 학과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서울대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취업 시장에서 적어도 불이익을 받진 않으니까. 하지만 다른 대학교라면 공대 혹은 경영대 전공 여부가 취업에서 분명 의미한 차이를 불러올 것이다.

상경계 선호 사회가 빚어낸 학과 서열, 학생들은 잘 공감 못 해

  좌담회를 통해 엿본 학생들의 생각에 따르면 학내 서열화는 그 존재가 명확하지 않았다. 학내 서열화의 존재에 동의한다고 말한 학생들도 이것이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인식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오히려 상경계를 선호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익명 인터뷰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A씨는 “예를 들자면, 관련 분야에 뜻이 있어서 농경제사회학부에 지원한 학생이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개개인에 대한 무시는 아니지만 (경제학부와 농경제사회학부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서 “배우는 내용이 겹친다고 해서 농경제사회학부 학생과 비교된다면 좀 억울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열화를 실제로 경험한 학생들도 있었다. 농경제사회학부로 입학해 경영학과로 전과한 B씨는 군대에 있을 당시 학과로 인해 조롱당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밝혔다. B씨는 “농경제사회학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선임들이 ‘졸업하면 농사 짓냐’, ‘모내기 잘하겠다’ 등 조롱을 했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비슷한 경험을 더 많이 할 것 같아 전과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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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설명회에서 배치표를 보며 생각에 잠긴 고등학생들. 

배치표에는 사회와 기업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다. ⓒ뉴시스

  그러나 서열화로 인한 피해나 이로 인한 전과 현상이 일반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농경제사회학부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C씨는 “농경제사회학부의 각 학과마다 인원이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지역정보학을 전하게 됐지만 잘 맞지 않아 전과를 결심했다”며 전공과의 적합성을 고려해 전과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C씨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열의식을 경험한 적은 없는 것 같다”며 학내 서열화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하게 갈렸지만 학내 서열화 현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좌담회에 참석한 학생들 역시 학내 서열화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 대한 대답을 주저했다. 익명 글 작성이 가능한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이따금씩 제기되는 지역균형선발전형에 대한 비판 혹은 공격과 여기에 동조하는 듯한 반응은 일부 학생들 사이에 서열 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설령 이러한 공감대가 학생들 사이에서 실제로 형성돼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현실에서 노골적으로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탓에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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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대학생들이 내면화한 대학·학과 간의 서열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박나은 사진기자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통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의 20대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오찬호 씨는 서울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의 서열 의식이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은 이유가 서울대의 특수성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씨는 “서울대에서 경영대, 공대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이 다른 학교에서 똑같은 코스를 밟는 것만큼 타 학과에 비해 엄청난 메리트라고 하기는 다소 어렵다. 서울대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이 가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 것 역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학과의 통·폐합이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다른 대학에 비해, 학과별 취업 성공 여부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서울대생들은 서열화를 겪을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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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제 이윤 추구를 제1의 미덕으로 삼는 

대한민국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김대현 사진기자

  기자가 만난 서울대생들은 서열화 현상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견지하고 있으며, 설령 서열 의식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더라도 이를 노골적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 창출 여부에 따라 학과를, 나아가 사람을 줄세우는 사회의 분위기는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학과 서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장에서의 성취로 모든 것에 점수를 매기려는 현상에 나 또한 휩쓸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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