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서울대저널>이 인터뷰한 시간강사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시간강사 구보 씨는 학기말이 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채점에 성적 입력에 각종 회의에 과 행사까지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할 정도다. 얼마 전에는 방학 중 진행될 프로젝트를 맡게 돼 연구 논문 준비도 해야 한다. 구보 씨는 잰걸음으로 걸으며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그러나 논문을 쓸 생각도 하기 전에 그는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시간강사’라는 족쇄 때문이다.
구보 씨 같은 서울대학교 시간강사의 시급은 8만원이다. 시급은 강의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수입으로 돌아온다. 3학점을맡은 구보 씨의 경우 월 96만원이 그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구보 씨는 강의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일한다. 수업준비부터 학생면담, 채점 및 성적 입력, 각종 회의 참여와 과행사 준비까지 하다보면 실제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이러한 강의 외 노동의 대가는 구보 씨의 급여에 계산되지 않는다. 구보 씨는 그가 실제 노동하는 시간을 모두 고려한다면 급여가 최저 임금을 겨우 넘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보 씨의 사정은 시간강사들 중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지방 사립대학에서 일하는 그의 동료 강사들의 시급은 3~5만원에 불과하다. 거기다 담당 강의 시간까지 짧으면 한 달에 50만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것이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동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학교에서 강의를 여러 개 맡아 돈을 번다.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하러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것도 마다하지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수입을 보충해야 한다. 이마저도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 비전업이라는 이유로 시급이 절반으로 깎인다.
하지만 구보 씨의 동료들처럼 강의를 여러 개 뛰면 강의 준비나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대학에서 강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학위, 연구실적, 교육경험을 두루 갖춰야 한다. 그중 강사 임용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게 연구 실적이기 때문에 시간강사도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활동을 위해서는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의 두세 개를 뛰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연구를 할 시간이 모자라다. 그렇다고 연구에 몰두하자니, 당장의 생계와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걱정된다. 학생들에게 좋지 못한 강의평가라도 받게 되면 해고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강사라는 한 몸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역할은 서로 모순적인 것 같다. 구보 씨는 강사가 된 이래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걱정하는 버릇만 늘었다.
학기말이 됐는데도 학과 행정실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구보 씨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오늘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다음 학기 강의는 못 맡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의를 맡지 못하면 당장 학원에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강사들의 계약 연장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이뤄진다. 전화가 오면 재계약을 하고, 전화가 오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는 식이다. 통보는 주로 학기말에 이뤄진다. 때문에 학기말이 다가오면 구보 씨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구보 씨는 학교로 향하는 길에 불안함, 기대, 초조가 섞인 마음으로 휴대폰을 여러 번 확인했다. 퇴직금도 없는 구보 씨에게 재계약 통보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목숨이 달린 시간이다.

▲ 한 시간강사가 학생회관 식당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연출사진> ⓒ박나은 사진기자 학교에 도착한 구보 씨는 이내 학생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넓은 캠퍼스에서 시간강사에게 허락된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구보 씨는 보통 자동차나 학생 식당 혹은 카페에서 다음 강의를 준비한다.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교내 편의점에 가기도 한다.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질문이라도 하면 어디로 불러야할지 난감해진다. 교내 카페에서 질문을 받으면 주변 소음 때문에 방해가 되지만, 연구실이 따로 없어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학생식당에 들어선 구보 씨는 조용한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학생식당의 텔레비전에서는 자영업자들의 경제난에 대한 뉴스보도가 흘러나왔다. 구보 씨는 얼마 전 친구를 통해 들었던 한 강사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친구의 선배는 30대부터 쭉 강사 일을 하다가 도중에 강의가 폐강돼 국밥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 10년 후에도 시간강사겠어?’하며 내심 자신을 위로했던 구보 씨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구보 씨 나이대의 친구들은 벌써 여럿 결혼식을 올렸다. 구보 씨는 결혼을 생각하기는커녕 축의금을 내는 것도 부담이다. 식이 있을 때마다 드는 교통비까지 합치면 벌써 강사 월급의 큰 부분이 사라진다. 강사 일을 하면서 구보 씨는 1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결혼을 꿈꾼다는 것부터가 사치라고 생각하게 됐다. 더구나 구보 씨는 건강보험도 없다. 직장은 있지만 4대보험이 없는 것은 노동은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것과 어떻게 다른 걸까? 구보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역가입자로 가입해 10만원 남짓한 건강보험료를 내는 것은 구보 씨에게 또다른 서글픔이다.
수업 준비를 마치고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는 구보 씨에게 농성장이 눈에 띄었다. 구보 씨는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본 음대 시간강사 대량 해고 사태를 떠올렸다. 기사를 보면서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본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치밀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구보 씨는 문득 천막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분들의 용기가 부러워졌다. 강사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처우에 대한 불만이 컸지만 한 번도 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 당장의 강의를 얻는 게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보다 중요했다.
섣불리 목소리를 냈다가 그나마 맡고 있는 강의마저 잃을까 두려워 농성을 하는 건 엄두조차 못 냈다. “강의만 아니면….” 구보 씨는 생각을 정리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강의실로 발걸음을 향하는 길에 구보 씨는 다시 한 번 휴대폰을 확인했다. 기다리던 전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대신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내일은 세상을 떠난 고 △△△ 강사의 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추모식에 참여해 주세요. 장소는….” 구보 씨는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