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3일 교육부는 중·고등학교의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내용의 확정고시를 발표했다. 지난 7월에 새누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의사를 표출한 이후,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심화됐다.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역사학 관련 교수들이 교과서 집필 거부 및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국정화 반대집회가 곳곳에서 진행됐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저널>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이자 한국사 교과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를 전공한 정용욱 교수(국사학과)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논란이다. 국정제는 어떠한 제도인가?
A. 검정제의 경우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의 전반적인 방향과 기준에 따라 교과서가 집필된다. 이후 교육부가 이를 심사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허가해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국정제의 경우 제작부터 출간까지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한다. 특히 교과서가 집필된 이후 정부에서 가필(加筆)을 할 수 있는데 집필진은 아무런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편찬의 주체인 정부가 교과서의 저작권을 갖게 되는 제도다.
Q. 국정화를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무엇인가?
A. 우선 국정교과서 자체가 역사교육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 역사교육은 다양한 해석과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는 하나의 해석만을 강요한다. 이렇게 되면 역사가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기 쉽다.
다음으로 국정제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교육과 학문의 권리를 침해한다. 헌법에서는 교육의 전문성,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역사학자와 역사교사와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국정화는 세계시민의 보편적 기준에도 어긋난다. 2013년 국제연합 특별조사관이 정기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국가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역사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제가 실시된다면 가장 큰 피해는 학생들이 입게 될 것이다.
Q. 국정화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대다수의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돼 서술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 고려 ▲어린 학생들의 긍정적인 역사인식을 위해 통일된 역사교육 필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교과서 사용 등의 논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우선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에게 교과서를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심지어 여당에서는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는 엉터리 주장까지 하고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해당 교과서를 통과시켜준 교육부 장관과 관리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해야 하지 않겠나. 정부에서 요구하는 취지 중 하나가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기르는 것인데 이걸 어기면 절대로 교과서 검정을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맥락을 제거한 채 특정한 단어나 문장을 문제로 삼고 있다. 자신들이 요구한 집필기준에 따라 편찬된 교과서를 편향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 아닌가. 편향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교과서가 편향돼 보이는 것이다.
다음으로 분단국가라는 논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동독은 국정제였고 서독은 검정제였다. 분단국가라고 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로운 역사교육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대비하는 올바른 교육이 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백지가 아니다. 중·고등학생들 역시 판단력과 사고력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러 가지 방식을 제시한 후 어느 것이 옳은지 찾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박탈한 채 어느 하나로 강요하는 게 올바른 교육은 아니다.
그리고 국정화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정한 게 아니다. 교과서 편찬제도는 하루아침에 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국정제가 시행되는 동안에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있었다. 80년대 중학교 교과서의 경우 근현대사 비율이 20% 정도였는데, 이후 연구가 진행되고 발전하면서 근현대사 서술 비중이 높아졌다. 국정화 틀 내에서도 나름대로 노력을 해온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는 2003년에 근현대사에 한해 검정제로 전환됐다. 검정교과서는 2007년에 정해져서 2011년부터 쓰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교과서 사용했다’는 논거는 잘못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돌리려는 정치적 술수라고 생각한다.
Q. 현재 우리나라의 검정제를 평가한다면?
A. 현재 우리나라의 검정제는 준국정제나 다름없다. 정부가 서술 내용을 집필기준에서 상세하게 정하고 있고 이중, 삼중으로 심사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자들은 보다 자유로운 발행제를 원한다. 검정제를 넘어서 인정제나 자유발행제로 가자는 것이다. OECD 선진국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 교과서 논쟁이 국정제와 검정제로 양분됐는데 발전적인 논의가 되려면 ‘어떤 교과서 편찬제도가 한국사회의 역사교육을 위해 가장 바람직할까’가 주제가 돼야 한다.

Q. 역사교육연대회의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문화적 권리 분야의 특별조사관 보고서’를 소개했다. 국제연합에서 권고하는 역사 교육의 기본적 방향은 무엇인가?
A.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는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라는 파키스탄 출신의 사회학자가 문화적 권리에 관한 특별조사관을 맡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그의 보고서는 2013년 국제연합 정기총회에 제출된 것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역사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조사하고 역사교육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다뤘다. 결론의 첫 번째 문장은 “국가가 학교에서 하나의 역사적 서사를 장려하는 것은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문장은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은 교육받을 권리와 문화를 향유할 권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해석에 입각해 비판적 사고능력을 함양하는 역사교육이 인권의 차원에도 부합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Q. 국정화가 실시된다면 일본의 역사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에 대응하는데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A. 외교적 차원과 국제적 시민운동 차원에서 우려된다. 국정교과서는 국가주의적 이념을 강조하기 쉽다. 한·중·일이 제각각 편협한 국가주의를 내세우게 된다면 각국의 역사전쟁은 훨씬 더 격화된 형태로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혹시라도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게 된다면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현재 일본은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한 역사 왜곡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교과서에 포함시키도록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그 예다.
또한 시민운동 차원에서 보자면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적·문화적 성취는 동아시아 사회의 국제적 시민연대로 발전했다. 그 중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2000년에 도쿄에서 국제여성전범재판이 열려 천황을 전범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한국의 역사인식 확대와 과거사 정리가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고 국제적 시민운동으로 발전한 사례다. 국정화가 되면 그러한 시민운동 역시 위축될 것이라 생각한다.

Q. 현재 북한, 베트남, 그리스, 터키 등의 국가는 역사 과목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러시아는 사회주의 때 국정제를 실시했지만 검정제로 돌아왔다. 최근 베트남은 국정제를 포기하고 검정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스나 터키는 국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2만 명뿐이라교과서 발행 비용을 국가가 담당해야 해서 국정제를 실시한다.이러한 국가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독재가 강화되는 나라에서 국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Q. 정부에서는 국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국정화 이후의 대응방침은?
A. 개인적으로 교과서 읽어보기 운동을 제안하고 싶다. 현재의 국정화 논란은 ‘교과서 없는 교과서 논쟁’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일방적으로 교과서를 비난하니까 국민 가운데 일부는 교과서가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교과서들은 한국사를 한 번 공부하기에 내용이 괜찮은 편이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학부모, 학생들과 함께 교과서를 읽어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Q. 정부에서 예비비 편성일(10월 13일) 이전인 10월 5일부터 비밀리에 국정화를 추진하는 태스크포스를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교육부의 태스크포스 운영은 현재 국정화 논란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절차적인 위법을 조직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설사 국정화를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여론이 과반 이상인데도 국정화를 강행하려고 하는 배후에는 강한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국정화 강행은 역사의 독점과 사유화를 통한 과거 기억의 조작이다. 지금이라도 역사교육 문제는 역사전문가에게 맡기고 개선방안 역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Q.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이 사안은 역사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인권,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다. 학계를 전부 좌파라고 매도하는 일은 독재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색깔론’과 같은 비합리적인 논리들이 사회를 구성하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한다. 국정화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