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이대로 괜찮겠지?

미노리카와 오사무 감독의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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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의 티저 포스터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일어 원제는 ‘す一ちゃん まいちゃん さわ子さん(수짱 마이짱 사와코상)’이다. 수짱의 이름은 모리모토 요시코. 카페 ‘Fräulein(미혼여성)’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요리를 좋아해서 일이 마음에 드는 편이다. 애인도 애완동물도 없이 혼자 살지만 양이 많아 혼자 먹기 힘든 냄비 요리를 나눠 먹고 숲에 같이 놀러 갈 친구는 있다. 마이짱과 사와코상! 한때 알바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다. 저금은 천 8백 만 원 정도고 월급은 2백만 원이 안 된다. 빡빡하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슈퍼에서 토마토를 살지 말지 고민할 때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대로 할머니가 돼서 일도 돈도 없고 누워서 거동도 못하는데 의지할 사람도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 혼자서 쓸쓸히 죽는 걸까? 내가 한 선택들은 모두 잘못된 걸까?”

   마이짱의 이름은 오카무라 마이코. 회사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나이가 서른넷이니 이제 마이짱은 눈치백단에, 소소한 성희롱쯤엔 흔들리지 않고 웃는 기술까지 터득했다. 유부남과 연애중이라 가끔 그가 놀러 와서 집이 항상 비어있지는 않다. 그런데 힘이 든다. 회사에서 상사 뒤치다꺼리하고 애인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는 게 지친다. 말 잘 들으니까 사람이 쉬워 보이나 보다. 결국 유부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아이를 가진 후에는 퇴사를 했다. ‘그저 노는 임산부’가 됐다. 평온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가끔씩 애를 쓰면 금방이라도 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대로가 좋아. 잘 된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렇게 된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와코상의 이름은 하야시 사와코.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라 자택근무를 하며 엄마와 함께 치매에 걸린 할머니 수발을 든다. 수짱이랑 마이짱을 만나러 외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애인도 없지만, 결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엄마가 혼자 남아 할머니를 돌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사와코상이 집에 음식 배달을 온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 썸을 탄다. 나이가 서른을 넘으면 ‘썸남’ㆍ‘썸녀’는 ‘약혼자’로 통용된다. 썸남, 아니 약혼자가 사와코상에게 부모님을 만나기 전에 임신가능진단서를 떼 오라고 한다. 사와코상은 정을 뗐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선택을 잘못 한 걸까? 그 사람 정말 좋아했는데”

    

 

외로워지는 고민을 하는 나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Sue, Mai &Sawa: Righting the Girl Ship’이다. 의역하면 ‘여자로 살기’쯤 되겠다. 여성들을 위한, 여성들에 대한 영화다. 그리고 그들은 30대다. 그렇지만 그들의 걱정과 고민거리가 낯설지 않다. 혼자 살기 때문에 토마토 하나를 살 때도 신중하게 고민해 본 적있다면, 지하철의 빈 자리를 잽싸게 차지하고 ‘방금 내가 뭘 한거지’하고 생각해 본 적 있다면 당신도 수짱, 마이짱, 사와코상의 일상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원작 만화인 마스다 미리의 베스트셀러 ‘수짱 시리즈’(《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結婚しなくていいですか)》 외 3종)와 비교했을 때, 영화에 원작의 담백함이 그대로 담기지는 않았다.수짱은 연하에 귀엽기까지 한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마음을 훔치는 한편, 마이짱은 피부과에서 난데없이 인생 상담을 받는다. 사와코상의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 말이 없는데, 집에 놀러 온 수짱과 마이짱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너무 달지도 않다. 햇살처럼 따스한 영화지만 어디까지나 외롭고 쓸쓸한 걱정과 고민거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냄비요리를 나눠 먹을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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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비요리를 나눠먹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WWW.suemasa-movie.com

  퇴근길, 계단을 오르며 수짱과 통화를 하는 마이짱 뒤로 교복을 입은 소녀 두 명이 보인다. 가로등 밑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혼자 살고 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수짱과 마이짱은 아직도 교복을 입은 소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수짱과 마이짱의 통화 내용과 비슷할 수도 있다. 단지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바쁘다보니 얼굴을 보고 하는 대화보다 전화통화로 하는 대화가 더 잦을 뿐이다.

 

   그리고 친구에게 숨기는 일이 많아진다. 힘든 일일수록 그렇다. 그 친구가 못 미더운 사람이라, 또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미안하니까 그렇다. 그 친구도 그렇고 세상 모든 사람들 다 힘들 텐데, 그 어깨를 더 무겁게 하기 미안해서 말을 하지 못한다. 또 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몫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힘들 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가령, 마이짱은 수짱이 집에 놀러 와 발견한 애인 손목시계의 방수기능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이거 진짜로 방수될까?”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생각, 짐이 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고령화와 저출산이 골칫거리이고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10년에 일본 공영방송 의 저녁 프로그램 ‘뉴스 워치9’에서 제작, 방영한 ‘무연(無緣)사회 일본’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당시 기자들은 혼자 죽어 거두어줄 사람도 없는 죽음인 ‘무연사’가 전국에 3만 2천 건에 이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어떻게, 왜 무연사가 일어나는 지를 취재했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 팀이 취재 중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소위 무연사회가 만들어진 데에는 고령화, 고용 안정과 가족 유대의 붕괴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프로젝트 팀이 무연사회에 내린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을 믿고, 남에게서 신뢰를 받는 것이다. 남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짐이 되는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러하다. 원작 만화 속 수짱은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한다. “(수발드는 거)힘들겠지. 그렇지만 그것이 민폐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이가 든다는 건 아버지나 어머니의 탓이 아니니까”

   외로움을 느끼고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내 탓이 아니다. 친구들이 걱정과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혼자 견디기 버거울 때 냄비요리를 나눠 먹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소중한 사람들이다. 수짱은 마이짱과 사와코상에게 보내는 편지에 추신을 길게 단다. ‘불안함은 가시지 않지만 먼 미래의 일을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숲에 가는 날 화창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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