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를 진단하다

병명은 정권의 기생

 지난 2월 ‘독립예술영화관모임’은 ‘독립예술영화관을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와 영화제의 상영작품에 대한 등급분류면제 추천제도 개정 등 자유로운 영화 활동을 저해하는 ‘외압’과 ‘검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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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관을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께’, 고려대학교 내 영화관 ‘KU 시네마 트랩’에 게시되어 있는 호소문이다 ⓒ선창희 기자

 1월, 영진위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독립예술전용관 지원정책 변경안은 상영작과 상영일수를 제한하는 단서조항을 포함했다. 한편, 올해까지 약 5년간 집행위원장(위원장)을 맡아 온 이용관 위원장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 후 부산시 고위직 관계자들로부터 사퇴를 권고 받았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2월에는 ‘2015 의랏차차 독립영화’ 영화제에서 상영 예정이었던 작품 3편이 돌연 상영 취소되었다. 이미 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을 받은 영화들인데 영진위가 추천 취소 처분을 하면서 상영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등급 분류를 받아야 극장에서 상영이 가능하지만 면제추천을 받으면 상영등급 분류를 받지 않아도 상영이 허락된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졌고, <한겨레>에서는 현 정부를 유신정부에 빗대기도 했다. 이에 대응해 영진위는 웹페이지에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제도 및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 관련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영화 진흥 위원회의 입장’을 밝혔다, 영진위는 ‘2015 의랏차차 독립영화’ 사건이 “극장과 위원회 양측의 행정실수다. 동 제도 운영의 개선을 위한 검토 및 의견수렴 중”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그 어떤 방안도 확정되어 위원회가 발표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언론은 이내 잠잠해졌으나 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비롯한 14 개 국내 영화단체들은 이에 대해 반박문을 발표했다. 면제추천제는 적어도 현장 영화인들이 생각하기에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제도이기 때문에 개정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독립예술전용관 지원정책 변경안은 1월 23일에 있었던 간담회에 참가한 대다수의 관계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글이었다. 무엇보다 (2015년 영화발전기금)사업공고가 나가야하는 3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확정된 사업안이 없다는 사실은 영진위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진위 위원장은 “긴장은 해소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영화계와 영진위 사이의 불화는 명백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에 <서울대저널>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영진위의 15년을 돌아봤다. 

용어해설

다양성영화영진위가 2007년 개발한 용어다. 영진위가 ‘다양성영화’로 선정하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예술영화 인정 심사에서 인정한 작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등 시장점유율 1% 이내인 영화형식의 작품, 직전 3개년 평균 기준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영진위의 제작지원/배급지원 작품, 당해 연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한국영화.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독립영화, 예술영화와 같이 흥행성, 영리성을 추구하는 상업영화와 거리가 먼 영화들을 상영하는 곳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 기조 아래 설립된 영진위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을 여러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영화진흥기본계획 등을 수립•시행하고 영화발전 기금을 운영하는 한편, 한국영화진흥 및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와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이 외에도 영진위는 한국영화의 국제교류를 관리하고 관람객 수를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박스오피스(영화상영관입장권통합전산망, KOBIS)를 운영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영진위의 전신은 ‘영화진흥공사’다. 영화진흥공사는 1999년 김대중 정권 아래 ‘영화진흥위원회’로 개명되고 구조상 민간 합의체로 개편됐다. 영진위 위원 9명은 영화인들의 추천과 합의를 통해 선정되고, 위원장은 9인의 위원들 중에서 선임되었다. 검열 또는 탄압의 대상이었던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는 국고 지원과 제도적 배려의 대상이 되었다. ‘독립영화전용관확대를위한시민모임’의 원승환 이사는 이를 “매우 혁신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1936년 프랑스에 설립된 시네마테크가 외쳤던 구호이자 국민정부 문화정책의 기조였다. 영진위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지원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공동으로 협의체를 꾸리고 2002년에는 미디액트를 개관했다. 미디액트는 영화 관련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영상 기자재를 제공하여 창작활동을 도와 시민영상창작과 독립영화제작 활성화를 꾀하는 비영리 공공미디어센터다. 영진위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체의 전용관과 전국 곳곳의 작은 예술영화전용관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예술영화전용관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참여정부는 이전 정부가 일궈놓은 밭에서 큰 수확의 가능성을 봤다. 2005년 국내에 개봉한 독립영화 그리고 예술영화를 포함한 다양성영화는 100편이 조금 못 됐지만 2007년에는 205편의 다양성영화가 개봉했다. 연 매출이 200억이 넘지 못했던 다양성영화시장이 커지면서 2007년에는 약 420억의 매출을 기록했다. 대구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동성아트홀은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대구경북시네마테크를 설립한 후 동성아트홀을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만든 남태우씨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007년 그때가 최고치에 이르렀어요. 이거 너무 잘된다, 1억 정도 씩은 지원을 해야겠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있었죠.” 그러나 동성아트홀은 올해 2월 자금 부족으로 폐관을 했다가 지역 대형 병원에 인수되어 정부의 지원 없이 4월에 재개관했다.

새로운 정권과 함께 등장한 불신과 불화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각 극장에 지급돼야 하는 지원금의 8할에서 9할이 상반기에 지급되고 하반기에 잔여금이 극장의 실적에 따라 차별 배분되는 식이었다. 정부에서 지출하는 총 액수는 같다. 하지만 매출 성적이 좋은 극장은 잔여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원받았고 매출 성적이 좋지 않은 극장은 그만큼 덜 받았다. 지역의 예술영화전용관들에게 영진위의 지원은 운영에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구동성아트홀은, 매출로는 1년 관리비도 충당할 수 없는 여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영사와 매표,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존하는 방법으로 매년 적자를 면해 왔다. 

 오래 지나지 않아 2010년에 ‘영화진흥위원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1천 영화인 선언’이 있었다. 예술영화전용관지원사업 외에도 영진위의 운영 전반의 문제를 제기했다. 선언문에 의하면 영진위는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을 위탁할 단체를 공모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업주체의 사업성과와 정책에 대한 세밀한 평가 없이 무리하게 공모를 진행했다. 또한 공모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과 문제점이 나중에서야 드러나며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공모제를 통해 선정된 운영자의 무능함 또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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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인 1천인 선언 

ⓒ<코리아필름>koreafilm.co.kr

 김조광수 대표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새로 장소를 이전한 독립영화전용관은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없다”는 점을 짚었다. 당시 영진위에서는 상영할 영화를 직접 지시했는데 “감독들은 영진위가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며 본인의 영화를 상영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있다고 언급했다. 또 영상미디어센터에 대해서는, 예전에 미디액트가 강좌를 개설할 때와 달리 수요가 매우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 이용배 비상대책위원장은 선언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파행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반미영화 만든다고, 좌파 감독들이 나오는 곳이라고 해서 뭉텅이로 지원을 축소시키고 원장 안 뽑고, 그렇게 운영할 수 있습니까?” 한국영화아카데미는 80년대부터 영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2010년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의 태반이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 또는 졸업생의 작품이었다. 

영진위, 초심으로 돌아가야

 2014년 경상남도의 유일한 예술영화전용상영관 거제아트시네마가 폐관했다. 예술영화전용관지원 대상 선정에서 탈락한 후 개관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전용상영관인 동성아트홀이 폐관했다. 지난 10여 년 간의 심사와 전혀 다른 평을 받고서 예술영화전용관지원 대상 선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동성아트홀은 영진위의 지원금 없이 개관을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3월 17일 영진위가 발표한 ‘2015년 영화발전기금 사업계획 최종안’에 의하면 영진위는 지역독립영화전용관 신설을 위해 기존에 지원했던 2개 독립영화전용관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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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성아트홀 내부 ⓒ남태우 제공

 영화계에서는 ‘지역의 영화문화 진흥이 목적이라면, 상영관 신설이 아니라 지역문화와 어우러져 자리를 잡은 기존의 상영관들을 키우고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영관들을 최대한 많이 살피는 것이 옳지 않은가’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외 12개의 영화단체들은 5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독립영화의 배급·상영이 여전히 힘겨운 현실에서 독립영화전용관의 지원 축소는 독립영화의 제작·배급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며 “이런 상황임에도 영진위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의 지원 대상 영화관 수를 축소하는 등 독립영화 진흥을 가로막고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독립영화전용관확대를위한시민모임’ 원승환 이사는 “영진위를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이용하려고 하는 정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진흥정책은 한국의 영화산업이나 영화문화, 국민의 문화생활의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 자체가 본래 영화진흥정책의 목적과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2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이 개정된 후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기구로서 9인 위원회가 모두 문화관광부 장관의 위촉을 받게 되었다. 즉, 민간의 합의체적 성격을 잃었다. 이후로 전문성이 없고 영화계에 대한 영향력이 없는 인사들이 위원에 임명되었다. 

 프랑스 시네마테크는 설립 30여년 후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서 장소를 이전했다. 1968년 2월, 재무부는 시네마테크의 운영에 간섭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이며 시네마테크의 공동설립자 앙리 렁로(Henri Langlois)를 해고했다. 시네마테크가 정권에 종속된 것이다. 당시 권위적인 정부에 대항하여 분개한 학생들 위주로 시위가 행해졌다. 프랑스 68혁명을 촉발하는 계기였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났다. 초심으로 돌아가되 영진위의 시간이 거꾸로 가지는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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