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교과서를 통해 ‘도시화’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 중학생 때였을 것이다. 도시화는 현재에도 매우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적 현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시 인구는 매주 1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1950년대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는 전 세계를 통틀어 86개였으나 2015년에는 550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세계 농촌 인구는 2020년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할 추세다. 이처럼 급격한 도시 인구 유입의 원인을 교과서는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이에 따른 도시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라 설명한다. 이에 따라 도시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이 있으며 도시와 촌락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교과서의 해당 단원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교과서는 도시화의 커다란 문제인 슬럼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슬럼이란 주거환경과 삶의 질이 낮은 쇠락한 도시 지역을 일컫는 말로, 수많은 투쟁의 현장인 철거촌과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구 도심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2003년 UN-해비타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도시 인구 중 37%가 슬럼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37.8%)과 비슷한 수준이다. 슬럼 거주자들은 불안정한 주거 환경 및 각종 질병과 재해의 위험에 시달린다. 사회학자 마이클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에서 전 지구적 도시화와 이에 따른 슬럼화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한다.
농촌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도시로 내몰리다
저자는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산업화 없는 도시화’ 사례를 들며 이들 국가에서 도시화가 급격하게 일어난 이유는 농촌이 몰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세계은행과 IMF는 개발도상국에게 차관을 내주는 조건으로 경제 개방과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했다. 이는 농업 보조금 축소와 농업 시장 개방으로 이어졌고, 제3세계 농촌을 파멸로 이끌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진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도시를 향했다.
이렇게 도시로 유입된 인구 중 상당수가 도시에서 슬럼을 형성했다. 이들은 도심의 낙후된 건물에 세입하거나 불법 증축, 간이 숙소, 소규모 판자촌 등에 정착한다. 공유지나 무소유지를 불법 점거하거나 노숙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도시 변두리에 판자촌을 형성해 도시 확장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거 형태 속에는 소유주와 세입자는 물론이고 무허가 주택 세입자, 불법 점거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상납을 받는 정치가, 폭력조직, 경찰 등 다양한 갑을관계가 얽혀 있다.
그러나 슬럼에 거주하는 도시 빈민들은 도시에서도 여전히 내몰리는 처지다. 슬럼과 도시 빈민들은 ‘진보와 사회 개선’을 가로막는 ‘인간 방해물’로 여겨져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퇴거당하곤 한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재개발 정책으로 경찰 혹은 용역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국제 행사라도 개최되면 도시 미관을 이유로 쫓겨나는 일도 다반사다. 한국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및 수도권에서 72만 명이 강제 퇴거를 당했다. 저자는 ‘강제 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는 한 가톨릭 NGO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를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라 평한다. 이에 앞선 1971년에도 성남시 개발로 광주대단지사건이 있었다. 지난 2005년 부산시가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노숙자들을 강제로 시설에 수용하는 안을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제 퇴거를 피하더라도 슬럼에서의 삶에는 여러 위험이 따른다. 많은 슬럼 지역이 지반이 나빠 홍수나 산사태 등의 자연 재해에 취약하다. 위생 문제와 주변 산업 시설의 오염 물질 배출로 각종 질병의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화장실이 부족해 야외에서 용무를 처리하면서 주민 간 갈등도 잦고, 여성들은 성범죄에 노출된다. 가옥이 불에 타기 쉬운 자재로 만들어졌고 인구밀도가 높아 화재 위험도 높다. 얼마 전 화재 사고가 일어난 ‘강남 판자촌’ 구룡마을에서도 지난 6년간 11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해결되지 않는 슬럼 문제
그러나 이런 슬럼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요원하다. 50, 60년대에 여러 국가에서 도시 슬럼 주민들에게 저렴한 신축 주택을 공급하려 시도했으나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있던 중앙 정부의 주택 공급은 세계은행과 IMF의 신자유주의 경제 강령에 의해 더욱 줄어들었다.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정책은 “모든 종류의 정부 주도 프로그램을 축소하도록 요구했고 주택시장 민영화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구나 정부의 공공주택은 도시 빈민의 현실적 생활양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도시 빈민들은 도심의 시장, 공장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고, 집안을 일터로 사용할 때가 많은데 상당수의 공공주택에서 이러한 현실이 간과된다. 이로 인해 빈민들 다수가 새로 지은 공공주택보다 기존 슬럼을 선호한다. 정부가 빈민들을 위해 제공한 주택 혜택이 실질적으로는 중간계급에게 돌아가는 일이 흔하다.
90년대 이후 국제기구들이 정부를 거치지 않고 NGO를 통해 제3세계 슬럼을 원조하는 움직임도 있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NGO의 영향을 ‘부드러운 제국주의’라고 평한다. 세계은행은 빈곤 축소와 ‘파트너십’을 의제로 내세우면서 NGO를 포섭해 반세계화 운동에 맞서 메시아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NGO는 자금을 제공한 국제기구의 의제에 종속되고 다시 지역 공동체들은 이들 NGO에 종속된다. NGO는 독립적, 민주적 기구로 자리 잡기보다는 기존 좌파가 차지했던 사회 공간을 차지해 도시 사회운동 전반을 관료화, 탈급진화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것은 지역 주민이 아닌 NGO다. 실제 도시 빈민 다수의 재정착과 주거 마련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 슬럼 개선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인 것으로 선전되고 국제적 명성을 얻곤 한다. 저자는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 소토가 주장한 ‘토지등기 제안’의 예를 든다. 데 소토는 제3세계 도시 빈곤의 원인을 투자와 일자리 부족이 아닌 재산권 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빈민이 가난한 것은 재산의 형태가 비공식 부동산으로 이용하거나 자본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지 등기를 통해 정부는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슬럼에서 막대한 자본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정책은 수많은 도시에서 슬럼 사회를 분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정책으로 슬럼 내에서도 주택 소유자와 세입자들, 혹은 등기된 재산에 대한 세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심화시켰고, 슬럼의 결속력은 약화됐다. 일부 국가에서는 슬럼 내의 슬럼이 출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정부와 NGO의 시도가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동안 지주와 개발업자의 도시 빈민 착취는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주, 혹은 투기꾼이 토지를 독점하고 폭리를 취한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과 부패 정치가가 개입되는 일도 흔하다. 빈민에 의한 토지 무단 점거를 묵인했다가 이들이 토지를 개발하면 쫓아내는 방식으로 빈민을 도시 개척에 이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신자유주의로 인해 제3세계 전역에서 국내 제조업과 농업이 급속도로 붕괴하면서 제3세계 빈민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실업률과 불완전고용이 크게 늘어났고 임시직 및 비공식 노동의 임금은 하락했다. 중국과 인도의 몇몇 도시는 크게 성장했으나 부호가 생겨난 만큼 도시 빈민도 양산됐다. 중국 도시에서는 농촌 출신 이주자에게 인종차별 수준의 차별이 가해진다. 90년대 상하이 이주자들은 건설 현장 노동이나 잡역 같은 일밖에는 구할 수 없었고 건설 현장 막사나 값싼 여관, 혹은 거리를 전전했다.
인도 방갈로르는 IT산업으로 발전한 도시로 5성 호텔과 골프장을 갖췄고 수십 개의 공과대학이 위치한 도시지만 빈민들은 변두리 슬럼으로 쫓겨나 살고 있다. 방갈로르 인구 600만 명 중 200만 명이 슬럼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방갈로르 인구 절반이 식수 공급이 안 되는 환경에 살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계속 성장 중이지만 다른 부문에서 고용 전망은 어둡다. UN-해비타트 보고서 《슬럼의 도전》의 결론처럼 ‘도시는 성장과 번영의 중심이 아니라 미숙련, 무방비, 저임금의 비공식 서비스업 및 무역에 종사하는 잉여 인간의 처리장이 되었다.’ 슬럼은 단순히 주거 문제를 넘어 노동, 인권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문제다.
구룡마을을 통해 돌아본 한국사회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세계의 슬럼 현황과 슬럼에 거주하는 도시 빈민의 삶을 알린다. 도시는 그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부자와 빈민의 공존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약 1,200가구의 판자촌 구룡마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국내 최대 판자촌이 국내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 중 하나인 강남에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인데, 강남의 높이 솟은 고층빌딩과 구룡마을 판자촌의 시각적 대비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상징 그 자체이다.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판자촌 철거를 벌이자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모여들며 형성됐다.
책에서 언급된 슬럼의 문제들 중 상당수는 구룡마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 상하수도, 도시가스 공급조차 어렵고 주민의 80%가 열악한 공동 화장실을 사용한다. 재개발을 둘러싸고 주민 간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보상을 노린 투기업자들의 위장전입이 빈번하다. 특히 크고 작은 화재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 11월 9일에도 화재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118명이 집을 잃었다.
구룡마을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강남구청에 화재 예방 조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남구청에서는 주민들이 강남구의 개발 방식을 수용해야 조치가 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보내왔다. 지난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모든 거주민 가구에게 임대 주택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구룡마을 공영 개발 계획을 추진했으나 서울시와 강남구가 개발 방식을 두고 대립하면서 개 발사업이 중단됐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서로의 이익을 고집하는 사이 거주민들의 의사와 안전권은 소외되고 있다.
구룡마을은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수많은 불평등의 상징과도 같다. 이러한 구룡마을 거주민들의 주거환경이 여태껏 개선되지 못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슬럼’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약 1,200가구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판자촌이다. 마을의 허름한 풍경과 화려한 타워팰리스가 대조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룡마을은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던 마을이었다. Ⓒ최서현 촬영기자